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완전한 결백을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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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채식주의자』 중

사진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하는 사람.’ 15년 전, 한 증권회사의 TV 광고에 등장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언급되는 말이다. 우리는 아닐 때 아님을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사회는 이러한 행동을 하는 소수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불편함의 시선뿐만 아니라 비난, 심지어는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도 당신은 많은 이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부조리함을 느꼈을 때, 당당하게 그 상황을 거부할 수 있을까?

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를 통해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상 속 인간에 대한 끈질긴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폭력’, 그리고 이를 벗어나 결백하고자 하는 ‘아름다움’ 사이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

 

세계를 집어삼킨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지난 5월 16일 노벨 문학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맨부커인터네셔널상의 올해의 수상작으로 호명돼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 『채식주의자』는 현대 한국에 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대한 소설이다”며 선정이유를 밝혔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작품의 충격성과 불안정함에 주목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감각적이고 도발적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놀라운 경험”이라고 평했다.

『채식주의자』는 한강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이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 총 3편의 중편들을 엮은 연작 소설이다. “따로 있을 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해지면 그중 어느 것도 아닌 다른 이야기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가 담기는 장편 소설이다”고 작가는 말한다.

  인간에 대한 질문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작가

한강 작가는 1970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 사회》 계간지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이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도 등단한 그녀는 올해 만 46세, 작가 생활 23년을 맞은 중견작가다.

한국 여성작가들은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간다. 특히 한강 작가는 인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관심을 탐구해왔다. 한강 작가는 책을 쓰는 것을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의 깊고 어두운 심연은 어떤 모습인가’를 다룬 작가의 초기작 『검은 사슴』부터, ‘우리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를 묻는 『바람이 분다, 가라』, ‘정말 우리가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희랍어 시간』, 가장 최근에 발간된 『흰』까지 인간의 내면과 광기에 대한 질문을 소설들 전체에서 치밀한 문장과 서사를 통해 제기한다.

  폭력을 거부하는 개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세계

  거적때기를 걷고 들어간 순간 봤어. 수백 개의,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 걸. 어떤 덩어리에선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피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 입고 있던 흰옷이 온통 피에 젖었어. (중략) 갑자기 숲이 환해지고, 봄날의 나무들이 초록빛으로 우거졌어. 어린아이들이 우글거리고, 맛있는 냄새가 났어. 수많은 가족이 소풍 중이었어. 그 광경은, 말할 수 없이 찬란했어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 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 「채식주의자」 중 영혜의 꿈 일부분

어느 새벽, 소설의 주인공인 영혜는 충격적인 꿈을 꾼다. 이후 영혜는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혜는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저항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영혜의 이런 모습을 ‘정신병’으로 치부해 정신병원으로 들여보낸다. 반복된 꿈과 주위의 압박에 지쳐가는 영혜는 결국 모든 음식을 거부하며 아무것도 해치지 않는 식물이 되고자 한다. 광합성을 하는 듯 나체 상태로 햇볕을 쬐고, 병원을 탈출해 비 오는 숲에 서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는 등 자기 파괴의 길을 걷는다.

영혜는 주어진 일상의 조건에서 답답함과 옥죄임을 예민하게 느끼는 존재이다. 현실을 바꾼 것은 꿈이었지만 꿈의 기저엔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짙게 깔려있다. 영혜의 기억 속에 있던 어린 시절 자신을 물었던 개의 비윤리적 죽음, 아버지의 폭력, 남편에게서 얻게 된 공포심과 두려움. 넓게는 세상의 폭력이 영혜의 무의식 속 큰 충격으로 새겨지다 이런 불안정함이 어느 날의 꿈에서 육식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폭력성’을 토해내는 방법으로 채식을 택한다. 세상의 폭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혜는 홀로 결백을 실현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채식주의는 영혜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을 일으킨다.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특히 누구보다 그녀를 이해해줘야 하는 그녀의 가족들은 영혜를 묶고 억지로 고기를 입에 쑤셔 넣는다. 이후 가족들에 의해 정신 병원에 수용됐을 땐 의사와 간호사들이 호스로 미음을 넣고 그녀가 뱉어내지 못하게 진정제로 재워버리는 등 영혜의 ‘육식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의 폭력성을 토해내기 위해 채식을 선택한 영혜에게, 아무것도 해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세상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 폭력을 행사한다.

인간의 욕망과 폭력을 거부하고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했던 영혜,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작가는 영혜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까. “저는 인간의 선함을 간절하게 믿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인간의 존엄성을 굳게 믿고,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폭력이 공존하는 세계에 고통과 슬픔을 느낍니다”고 작가는 한 국내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우리의 인식은 성장했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혹은,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누군가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왼손이 아닌 오른손을 써야하고, 누군가는 다수에 반대되는 자신의 신념을 밝히지 못한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하는 사람’, 우리는 이렇게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쓰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양지희 기자  zzzwlgml159@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