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세우는 데 늦다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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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주은 선생님이 희망반(초등5,6학년 수준반)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음운의 변동이었다.

임영길 씨는 64세의 택시 기사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광주 전역을 누비며 손님을 모신다. 퇴근 손님이 가장 많은 저녁 7시, 그는 운전대를 놓고 연필을 잡는다. 매일 밤 만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그는 ‘희망야학’의 학생이다.

30년 전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오래된 교실들

매일 밤 식지 않는 배움 향한 열기

희망야학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을 위한 학교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밤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이 열린다. 학생은 탈학교 청소년부터 여든두 살의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30여 명의 대학생 교사들이 모여 학교를 운영한다.

언뜻 보면 학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건물에 ‘광주희망야학’이라는 초록색 간판이 걸려있다. 건물 내부 또한 외관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짙다. 나무문은 아귀가 맞지 않아 수업 소리가 새나간다. 교실에 들어서자 석유 냄새가 풍긴다. “냉․난방 설비가 열악해 아직 석유 난로를 쓰고 있어요.” 먼저 학교에 도착해 교실을 청소 중이던 한 어머니가 말했다. “시설이 어떻게 좀 바뀌어야 할 텐디. 여기가 역사가 있는 집이라 옮기기가 어렵긴 할 거여. 옛날에 교장 쌤이 이곳에 단 한 명의 학생만 있어도 수업을 하라 그랬다더라고.”

심주은 선생님이 희망반(초등5,6학년 수준반)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음운의 변동이었다.
심주은 선생님이 희망반(초등5,6학년 수준반)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음운의 변동이었다.

저녁 7시가 되자 하나둘 학생들이 모인다. 이날 희망반(초등 5,6학년반)의 첫 수업은 심주은 선생님(화학,15)의 국어 시간. 교실에 들어가기 전 심 선생님은 “저 수업 잘 못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막상 수업이 시작하자 능숙하게 학생들의 호응을 유도한다. “다 같이 발음 한 번 해볼까요? 해,돋,이. 해도지. 발음 다른 게 느껴지세요?” 학생들은 선생님의 발음을 따라 해 보고선 “맞네, 맞네.”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누구 한 명 졸거나 한눈파는 학생이 없다. 교재엔 삐뚤빼뚤하게 눌러쓴 필기가 빼곡하다. 어스름이 질 때 시작한 수업은 창밖이 어두워지고서야 모두 끝났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을 몰라. 그래, 배움이 이렇게나 좋구나.”

임영길 씨는 지난 1년여 간의 공부 끝에 중학교 졸업장을 안았다. 천금을 안은 것보다 더 기뻤다. 남몰래 펑펑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임영길 씨는 지난 1년여 간의 공부 끝에 중학교 졸업장을 안았다. 천금을 안은 것보다 더 기뻤다. 남몰래 펑펑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임영길 씨는 작년 4월 희망야학에 입학했다. 올해 4월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해, 지난 5월 19일 광주시교육청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지금은 고등반인 청솔반에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1954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다. 당시 시골에서 공부는 부잣집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 역시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이는 평생의 한이 됐다. 임 씨는 “직장에 들어가려면 이력서를 써야 하잖아. 이력서에 첫째 뭐가 들어가야 돼, 학력이지. 그거 쓸 때마다 참 마음이 아팠어”라며 “내 잘못도 아닌데 정말 챙피시럽고. 그래서 내가 배워야 쓰것다는 신념을 가진지가 오래됐어요”라고 말했다.

배워야겠다는 오랜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계기는 아파트 동 대표 선발이었다. “동 대표를 뽑는데 또 이력서에 학력이 들어가는 거야. 그런데 정원 여덟 명 중에 초등학교 졸업은 나 포함해서 둘밖에 없더라고.” 학력과 상관없이 임 씨는 동 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회의감이 들었다. 그는 “정말 이건 아니다. 돈보다, 다른 무엇보다 앞서는 게 졸업장이다”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학력을 취득하는 방법은 방송통신중학교와 검정고시가 있다. 방송통신중학교는 3년간 꾸준히 출석하면 성적과 관계없이 졸업장을 수여한다. 임 씨는 “여태 졸업장 없이 살긴 했지만, 그래도 3년이란 세월은 길죠. 빨리 좀 목표에 도달하고 싶었어요”라며 희망야학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희망야학에선 수준별로 반을 나눠 초중고 검정고시를 대비한다.

가장 까다로운 과목으로는 영어와 수학을 꼽았다. 그는 “영어도 말할 수 없이 어렵고,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수학”이라며 “들어보지도 못한 x, y가 어쩌고. 아니 그러니까 x가 뭐신디, 무조건 1이다, 이러는 거지”라며 웃었다.

어려운 만큼 자투리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한다. “인자 광주 터미널에 가면 차가 좍 밀려가지고 손님을 태우기까지 1시간 40분이 걸려요. 그 시간에 고등학교 기출문제 책을 사가지고 보는 거야. 머릿속에 저장이 안 되는 거 같아도, 시험 보면 기억이 나. 아, 정말 하면 되는구나 싶지.” 그는 또한 “학교 안 다닐 때는 운전을 하다가 신호가 멈추면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하고 그랬죠. 지금은 플래카드에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핸드폰으로 찍어서 집에 가서 찾아봐”라며 “옛날엔 이런 건 상상도 못 했죠. 지금은 실지로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대견해요. 그래, 배움이 이렇게 좋구나”라고 말했다.

배움의 기쁨은 크다. 종종 택시에 외국인 손님을 태운다. 하지만 이제 의사소통은 문제없다. “어느 정도 기초를 아니까 대화가 되더란 이야기 아녀. 손짓 발짓을 해가며 하니까 되더라. 그랬을 때 정말 날개를 달고 날아가고 싶어. 그 마음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단 말여.” 가족들에게도 자랑스럽다. 명절이 되면 손주 여섯을 집합시켜놓고 배운 것들을 얘기한다. “그러면 손주들이 ‘와 우리 할아버지 최고다’ 하면서 손뼉을 쳐줘요. 며느리들도 ‘우리 시아버님은 술, 담배도 안 하시지, 학교도 다니시지’ 라며 감탄해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사뭇 기뻐 보였다.

그의 최종 목표는 대학 진학이다. 임 씨는 “처음엔 중학교만 졸업하면 되지 않겠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람 욕심이 막상 졸업하고 보니 고등학교도 해보고 싶은 거예요. 제 꿈입니다마는 2년제라도 대학교도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게 이루어질랑가 안이루어질랑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면 이루어질 거라 믿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임 씨는 또한 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전부 대학생이잖아요. 정말 고마워요. 다 자기 학교 공부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빼서 봉사를 하고 있잖아요. 선생님들에겐 아버지 같고, 정말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이야. 근데 (공부를) 못해, 오늘 하고 내일 하면 또 몰라. 그런데도 답답한 것을 내색을 않고 가르쳐줄 때, 선생님들이 너무나도 고마워.”

교육의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가르침의 등불 되어

희망야학은 대학생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이원중 선생님(화학,15)은 “홈페이지 관리나 포스터 제작은 물론이고, 교무회의나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공문도 다 대학생들이 처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원중 선생님은 작년 10월부터 희망반(초등 5,6학년반)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동시에 홍보부장도 맡고 있다.

이 선생님은 “건물이 낡았다는 게 아무래도 가장 어려운 점인 것 같다”며 “그래도 올해는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재정적 어려움은 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수업 진행에 관해서는 “일 년마다 교사가 바뀌고, 학기 중간에 새로운 학생이 자꾸 들어오니까 실제 학교처럼 운영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쉽지 않지만 학생들의 감사 인사를 들으면 의욕이 난다. “한 시간 반씩 수업하고 나면 정말 피곤하죠. 그래도 어머님들이 배우실 때마다 감사하다, 재밌다고 엄청 하시니까 어우, 저도 감사합니다 하고 더 재밌게 가르치게 됩니다.” 또한 그는 “낮에 일하시고 힘드니까 졸면서도 매일 나오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배우고 싶어 하신다는 게 느껴져요”라며 학생들의 열의를 설명했다.

그는 야학에서 가르쳐드리는 것보다 배우는 것들이 더 많다고 말한다. “대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모든 일을 이끌어가는 경험은 흔치 않죠. 가르쳐드리면서 저희도 다시 공부하게 되고. 다른 여러 대학 사람을 만나며 사회생활을 미리 해볼 수도 있죠.” 또한 그는 “배운다고 표현했지만 결국엔 여유나 뿌듯함, 보람을 많이 얻어요. 사람이 큰다고 할까요”라고 말했다.

“봉사는 확실히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함으로써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다들 이 봉사의 즐거움을 느끼시면 좋겠어요. 특히 저희는 공부를 업으로 삼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저희의 재능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곳이 희망야학이라고 생각해요.”

 

김예인 기자 smu04018@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