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용서를 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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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어린 사과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 기억하기 어려운 어린 시절부터 퍽 아름다운 가치로 포장되어 왔던 일들이 사실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걸 이제야 어렴풋이 느끼게 된 것을 보면, 사람들이, 또 글들이 만든 가치라는 것이 꽤나 뜯어내기 어려운 포장이었던 모양이다.

‘남들도 다 써내는 주제이니까’하는 얄팍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미투(#MeToo) 운동에 대해 글을 쓰기로 결정한 것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은 것은 며칠 동안 겨우 세네 줄 써 내려간 글을 다시 지워내면서였다.

사회의 움직임에 편승한, 하루에도 수백 개씩 늘어나는 의미 없는 글들 중 한 편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또 그것이 그간 혼자서 속으로만 감추고 살았던, 그래야만 했던 것들을 밖으로 꺼내는 데에 있었을 용기와 결심에 혹여나 해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요즈음 하루에 한 번씩은 마주하는 사과문이라는 종류의 글들은 목적에는 알맞지 않게 날카롭게 상처를 더 벌려 내곤 하지만, 그 날카로움이 사과와 용서라는 아름다운 가치의 포장을 뜯어내는 데에는 꽤나 제격이었던 것 같다.

당사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한결같았다. 여전히 무책임했다.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어서였을까. 어떻게 하면 회피해볼 수 있을까, 타격을 덜 입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입장 표명’에서 드러났다.

그런 일은 없었다며 부인하거나, 누군가는 지목되기도 전에 자신의 잘못을 축소해 미리 밝히기도 했다. 방식이 어찌 되었든 그간 쌓아 올린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몇 가지 추한 모습을 더 보이고 나서야 ‘진심 어린 사과’나 ‘용서를 구한다’는 인제 와서는 전혀 의미 없어진 말들이 적힌 글들을 발표하곤 했다.

용서를 바라는 것조차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글을 써내는 다만 그 짧은 시간이라도 용서를 구하는, 죄스러운 마음에 집중할 수는 없었을까.

연애 감정이니 하는 구차한 변명이나 늘어놓는 것보다 자신에게, 또 상대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그러나 다행히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가치를 지켜나가고자 한다. 쉽게 화답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지만, 미투 운동이라는 움직임에 많은 사람들은 분노했고, 또 변화했다. 누군가는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는 사회적 구조를 지적하기도 했고, 피해자가 오히려 숨어야 했던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늘었다.

그간 무관심하거나 모르는 사이 사회 분위기에 이끌려다니던 사람들은 이제 기억 속 상처를 꺼낸 이들에게 상처를 숨겨야만 했던 사회를 만든 것에 진심 어린 사과로 용서를 구하고 있다.

#MeToo로 시작한 움직임은 이제 #WithYou로 이어져 계속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움직임 속에서도 ‘아름다운 가치’가 여전히 지켜질 수 있기를, 언젠가 우리 사회가 온전히 용서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