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 정책 두고 정부, 의사 단체 정면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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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전문의 한 명이 피켓를 들고 있다. (사진 = 뉴스1)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전문의 한 명이 피켓를 들고 있다. (사진 = 뉴스1)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전문의 한 명이 피켓를 들고 있다. (사진 = 뉴스1)

8월 초부터 의사와 정부가 갈등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여러 의사 단체가 보건 당국이 추진하는 의대 정원 확대,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이하 공공의대) 설립, 한방 첩약 급여화 등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8월 7일부터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주도로 연가를 사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파업을 시작했다. 정부의 보건 정책에 반대하며 24시간 집단휴진에 나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도 14일과 26일 두 차례 전국 의사 총파업을 진행했다.

정부는 26일 수도권 지역 전공의와 전임의들에 업무복귀명령을 발령했다. 정부는 대전협과 의협이 노동조합이 아닌 직능단체이므로 파업권이 없어 이들의 파업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고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민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대응한다”며 원칙적인 법 집행을 지시했다.

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전공의와 전임의 10명을 의료법 제59조2항 위반으로 고발했다. 이에 의협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복지부의 전공의 고발은 공권력 폭거라고 주장하면서 9월 7일부터 3차 총파업을 무기한 돌입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갈등이 치닫고 있다. 양측의 주장을 3가지 쟁점으로 정리했다.

의대 정원 증원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2022년부터 의대 정원을 1년에 400명, 10년간 4천 명을 증원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한국의 인구 천 명당 의사 수가 2.4명으로 OECD 평균인 3.5명에 비해 적다는 점을 들어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특수 전문분야 의사 충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과목 내 쏠림 혹은 기피로 인해 감염내과, 중증외상 등 특수 전문분야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문의 10만 명 중 감염내과 전문의는 277명, 소아외과 전문의 48명, 의사 역학조사관은 23명에 불과하다.

의사 단체는 1인당 의사 수가 의료접근성을 확인하기에 적절한 지표가 전혀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기도 모 대학 의대 예과에 재학 중인 H씨는 “중요한 건 의사 숫자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민이 의사를 쉽게 만나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민 1인당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는 횟수가 OECD 평균 연간 7.1회인데 반해 한국은 16.6회로 전체 중서가장 높은 수치다. 의사 단체는 이를 근거로 한국의 의료이용 접근성이 좋아 의대 증원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의대 정원 증가에 찬성하는 측은 한국의 의사 1인당 연간진료 횟수가 7,080회로 OECD 평균 2,181회의 3배가 넘는다면서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는 진료 건수가 많은 것은 행위별 수가제로 인한 의사들의 과잉 의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의대 설립
21대 국회 개원 이후 여권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공공의대는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이다. 2018년 3월 서남대학교가 부실대학 판정을 받고 폐교하면서 남는 의과대학 정원 49명을 공공의대로 재배치하자는 것이다.

국회에 계류된 법안에 따르면 의료취약자의 분포, 해당 지역의 의료기관과 인력 수 등을 고려해 시·도별로 일정 비율을 선발한다.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서 필수 공공의료를 담당할 의사 양성을 위해 공공의대를 설립한 만큼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는 면허 취득 후 10년 동안 국가에서 지정하는 의료 취약 지역의 공공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근거로 대도시 이외 지역 의사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구 천 명 당 의사 수는 경북 1.4명, 광주 2.5명, 서울 3.1명 등이며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특히 경북 영양은 0.72명으로 16.27명인 서울 종로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H씨는 “10년 동안 지방에서 일하더라도 정년까지는 무려 30년이나 남았으니 의사들이 이후에 어떤 행보를 걸을지도 모른다”며 공공의대 졸업자가 10년의 근무 기간 이후 수도권으로 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 씨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수도권 의료 편중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공공의대 입학생을 선발할 때 시·도지사 개인에게 추천권을 준다는 논란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복지부는 공공의대 졸업생들이 일정기간 공공보건의료 분야에 의무로 복무해야 하는 만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같이 다양한 분야 종사자의 의견을 청취할 것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첩약 급여화와 의료일원화
복지부는 6월 9일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계획을 공개했다. 국민이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 급여 범위를 한방 첩약까지 확대하는 내용이다.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는 첩약 급여화로 보험 혜택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정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의사 단체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첩약을 국민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필수 의료부터 단계적으로 급여화한다는 우선순위 원칙에 따라 환자의 목숨과 직결되고 효과도 입증된 면역항암제에 보험금을 먼저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의료일원화는 의학과 한의학의 이원화된 의료체계와 교육과정을 통합하는 정책이다. 의료일원화에 찬성하는 측은 두 가지 의학계의 갈등이 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국과 일본처럼 의학과 한의학을 통합하면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의사 단체는 의학과 한의학이 엄연히 다른 분야며 한의사의 현대의학에 대한 지식은 일반의보다 적다면서 의료일원화에 반대한다. H씨는 “의료일원화가 결국 한의사에게 의사 면허를 주는 것이며 이는 간호사에게 의사 면허를 주는 것보다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국민 지지 얻을 수 있을까
의사 파업의 길은 순탄치 않다. 부산, 의정부 등에서 환자가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민의 시선이 냉담해지는 중이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을 구제해주지 말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이 동의했다. 한편 의협은 29일 기자회견에서 언론에 대해 의사의 파업과 환자 사망의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지난 6일 성명을 내어 “전공의들의 파업은 환자의 치료가 중단된다는 의미여서 환자들의 투병 의지를 꺾을 수 있다”며 파업 철회를 요구했다. 한국농아인협회가 ‘덕분이라며 챌린지’에서 사용한 엄지를 내린 손 모양은 공식 수화가 아니라며 “농인의 수어를 의사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지 말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의사 단체는 이에 대해 사과했다.

많은 의과대학 학생이 동맹휴학을 선언했고, 특히 본과 4학년 학생 중 다수는 9월 1일에 치러진 의사국가시험(이하 국시) 응시를 거부했다. 여의도 집회, 1인 릴레이 시위 등에 참여한 서울대학교 이필립(의대 본과, 15) 학생은 “의료에 대해 배우고 있어 현 정부의 보건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있다”며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 의사의 의무”라며 동맹휴학에 참여하는 이유를 밝혔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정례브리핑에서 국시가 예정대로 치러진다면서 “응시 취소 의사 확인 연락에 미 회신 시 응시 의사거 없는 것으로 간주, 응시 취소 처리한다”며 강경하게 반응했다.
의사 단체도 정부가 원점에서 전면 재논의하지 않는 이상 타협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필립 학생은 “정부가 의료계의 대화 요청을 거절한 지 하루가 안 되어 정책의 유보를 조건으로 파업의 중단을 요구하니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필립 학생은 작년에 있었던 전문연구요원 축소 논란에 대해 “이공계 학우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며 “적극적인 도움은 요청하진 못하겠지만, 전공의들이 어째서 파업이라는 수단까지 이용하는지, 학생들이 국시를 거부하고 동맹휴학을 하는지 찾아봐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와 의사가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가운데 무고한 환자가 피해를 보는 건 아닐지 국민의 우려만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