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제1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 희곡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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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공모 수상작 ⑤: 희곡 부문 가작

해적

이기성(소재,14)

등장인물

선원1
선원2
선원3
선원4
선원5
바보
선장
부선장

1장
선장은 뱃머리에서 서있다. 선원들은 일려로 앉아서 노를 젓는다. 부선장은 선장과 선원들 사이에서 선원들을 지켜본다. 바보는 선원 옆에서 서투른 솜씨로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바보: (연주를 멈추고) 신사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들의 초라한 뱃이야기를 들으러 이 자리까지 와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 제 이름이요? 죄송하지만 그건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극을 만드신 분께서 누구에게도 제 이름을 밝히지 말라 하셨거든요. 음, 사실은 저도 제 이름을 모릅니다. 어린 시절 앞으로 넘어져 뒤통수가 깨져버린 그날부로 제 이름을 들어도 들어도 기억해 낼 수가 없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절 부르고 싶으시다면 저를 ‘사자메뚜기사기꾼호랑이사과거짓말오른손참나무속임수양고기바다도둑놈참외’라고 불러주세요. 그것이 이 극이 끝날 때 까지 저의 이름이겠습니다. 자, 그럼 오래 기다리신 여러분을 위해 제가 노래 한번 불러볼까요? (아코디언을 연주하려 한다.) 아니, 이놈의 더러운 쥐새끼들, 어디서 나타난거야? (발로 바닥을 쿵쿵 찧으며) 이놈, 이놈, 이놈! 젠장, 한마리가 아니잖아. 이놈, 이놈, 이놈!

선장: 이놈들아! 노를 저어라, 더 쎄게, 더 쎄게 저어! 점심밥을 먹기 전에는 저 멀리 큰 바위 근처까지는 가야한단 말이다. 에이, 이런 계집애 같은 놈들, 써먹을 구석이 없구나.

선원1,2,3,4,5,: 영차, 영차.

부선장: 선장님 말씀이 안들리나?머릿속에 밥 먹고 똥싸는 생각 밖에 없는 것이냐? 네놈은 이 배에 타지 말고 집에서 애들 젖이나 주는 편이 나았겠군. 그 편이 더 세상에 도움이 됐을거야. (웃음)

선장: 좋다, 휴식. 점심밥 먹고 다시 바로 노를 젓는다. 알겠나?

선원1,2,3,4,5: 예, 선장님!

선원1: (선원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여기 빵 하나, 자네도 하나, 자네도. 부선장님은 둘. 선장님은 하나, 둘, 셋, 넷.

선장: (하나 더 가져가며)오늘은 특별히 더 배가 고프니 하나 더 먹도록 하지. 불만 있나? 없을 테지. 자리로 돌아가. 이봐, 부선장. 자네 먹는 꼴을 보아하니 입맛이 없나보군 그래?

부선장: 선장님, 저는 요즘 이 배의 앞날을 생각하면 빵이 넘어가질 않습니다. 어제는 잠자리에 누워 앞으로 이 배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하나를 생각하며 뒤척이다 보니 글쎄 동이 트지 않겠습니까? 전 입맛이 없으니 선장님께서 배가 고프시다면 제 빵이라도 더 드시겠습니까?

선장 : 하하, 자네 역시 눈치가 빠르구만 그래. 아주 맘에 들어. 역시 이 배를 생각하는 건 자네밖에 없어. 나머지 놈들은 죄다 쓸모가 없으니 원. 자네가 항상 내 옆을 지켜줘서 든든하기 짝이 없구만. 내가 죽는다면(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서도 안되지만)이 배의 선장은 자네야. 자네가 적임일세.

부선장 : 아이고, 선장님. 무슨 그런 말씀을. 선장님이 없어지신다면 저도 바다에 빠져 크라켄의 먹이가 되겠습니다.

(선장과 부선장, 서로 부둥켜 안고 운다.)

선원4 : 저기, 부선장님.

부선장 : 뭐야?

선원4 : 다름이 아니라, 현재 모든 선원들이 굶주림과 피로로 지친 상태입니다. 오늘 하루는 이쯤 해두고 마무리 하는 게 어떠십니까?

부선장 : 네놈은 노도 제대로 젓지도 못하면서 틈만 나면 게으름을 피우려고 갖은 잔머리를 굴리는구나. 너의 그 꽤씸함 때문에 오늘은 작업시간을 한 시간 더 늘리겠다. (선원4의 빵을 뺏으며)그리고 넌 말라서 빵도 조금만 먹어도 되겠지. 나머지는 내가 먹겠다. 돌아가봐.

선원2 : 죽을 맛이다. 발바닥에 흙모래 묻혀보기도 전에, 해적들한테 포탄 맞아 죽기도 전에 이 배에서 배곯아 먼저 죽겠구나.

선원3 : 하루에 주는 건 겨우 빵 몇 조각, 그리고선 우리에게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손에서 노를 놓지를 못하게 하는구나. 난 오른쪽 손목과 왼쪽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아. (신음한다.)

선원1:이봐, 다들 모여봐. 선장이란 놈 말이야, 진짜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선원4:(잠시 침묵 후)뱃길만 조금 안다 뿐이지, 너무 많이 먹어.

선원5: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먹긴 하지

선원2:그리고 잔소리가 너무 많아.

바보 : 재미없고 시시해.

선원3:일도 너무 많이 시켜.

선원1: 나도 더 이상 노를 못 젓겠어.

선원2:그럼 어떻게 하지?

선원4:죽여야지.

바보 : 죽이다니, 나를? 미안해. 제발 한번만 살려줘. 빵도 안먹고 노도 열심히 저을게. 아코디언도 더 쎄게 불어볼게. 뿌우, 뿌우. 목숨만은 살려줘.

선원4:무슨 소리야. 선장 말이야, 선장. 저런 놈을 살려둘 순 없잖아.

선원3:너의 말이 맞다. 저런 놈은 우리의 선장이 아니라 해적놈과 같아.

선원2 : 부선장도 마찬가지야. 선장을 등에 업고 우리들을 매일 때리고 한 조각 뿐인 빵도 뺏어가지. 선장을 죽인다면 그놈도 함께 묻혀야 맞아.

선원1:그래, 그러자. 놈을 죽이자. 시체는 바다에 빠뜨리고 나중에 마을 사람들에겐 해적한테 살해당했다고 하면 그만이야. 다들 같은 마음인거지?

선원5 : 아니, 난 아니야. 미안하지만 난 이 일에서 빠지겠어.

선원1 : 아니 왜? 저놈들의 횡포와 탐욕을 그대로 두고만 볼거야? 그게 좋다는 건 아니겠지 설마?

선원5 : 물론 나도 맘에 들진 않아. 하지만 저놈들을 죽여서 그 다음엔 어쩔꺼지? 계획은 있는건가?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어. 이렇게 살면 되는 거야. 하지만 또 자네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하여도 좋아. 나는 그저……

선원4 : 관심이 없는 거겠지. 우리들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에 대해서 말이야. 좋아, 참여하고 싶지 않다면 빠져도 돼. 억지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동참하라고 하진 않겠어. 다들 일어서. 무기를 손에 쥐고. 가자, 돌격!

(선원들이 손에 칼을 한자루씩 쥐고 선장에게 달려간다. 선장의 몸을 칼로 찌른다.)

선장:아아, 나는 죽는다.

부선장 : 선장놈이 죽었다. 그토록 바라던 선장놈이 드디어 죽었다. 이 배의 선장이 되기 위해서 네놈의 부츠밑바닥 모양이 내 등가죽에 자국 박히는 순간까지도 참아왔다. 이 뱃머리에 올라서기 위해 네 등에 칼을 꼽는 상상만 수십 번을 한 나였다. 그러나 나를 새로운 선장으로 만들기 위해 이 기특한 선원들이 내 대신 저 욕심많은 악한 놈을 죽여주었구나. 옳지, 그래. 이리와라, 나의 사랑스러운 선원들아.

(선원4, 부선장의 뒤에서 칼을 박는다. 부선장, 고꾸라진다.)

선원3:됐다, 성공이다. 우리의 악당 놈들이 목숨을 다했다. 이제 이 구멍 뚫린 더러운 시체들을 바다에 내던지면 끝이야.

선원4:다같이 들어. 하나, 둘. 으쌰.

(선장과 부선장의 시체를 바다에 빠뜨린다. 선장의 모자만 갑판 위에 남는다.)

선원1:모자만 남았구나.

선원2 : 이 배의 모자야

바보:마법의 모자다! (모자를 쓰고 괴성을 지르며) 태풍아, 몰아쳐라. 배야, 뒤집어져라. 바다야, 갈라져라.

선원3:(모자를 뺏으며)이건 단순한 모자가 아니야. 선장의 자격이 있는 사람만 쓸 수 있는 왕관이지.

선원5:그럼 그게 누구지?

선원4:얘기 할게 있나? 선장을 죽이자고 가장 먼저 말한 이 몸이지.

선원1:하지만 화두를 꺼낸 건 나잖아?

선원3:선장의 몸에 가장 먼저 칼을 쑤셔 박은건 나인걸?

바보 : 내가 쓰러지는 놈의 두 눈을 보았어. 나를 다음 선장으로 임명한다고 했어. 그의 두 눈이 그렇게 말했다고. 지금도 들려, 그의 목소리가!

(자신이 가장 선장에 어울린다며 모두 말싸움을 한다. 소리가 점점 커진다.)

선원5:그만! 이대로라면 오늘은 고사하고 한 달이 지나도 결정이 안나겠군.

선원4:그럼 어떻게 하지?

선원1:어떻게 한담?

바보:그냥 모자를 버리자! 싸움은 그만두고 화해의 키스를 하는거야. 일단 나부터.(입을 내민다)

(정적)

선원3:투표를 하자!

선원1,2,4,5:투표?

선원3:그래, 투표. 가장 선장으로서 이 배를 잘 이끌 것 같은 사람에게 투표를 하는거야. 이것이야말로 가장 평화롭고 민주주의적인 방법이지. 어때? 더 좋은 의견 있나?

선원1:난 좋다.

선원4:나도 좋아.

선원5:나도 좋아.

바보:나도 좋아. 그럼 투표라는 놈이 선장이 되는 거지?

선원3:(단상에 올라서며)좋아, 그럼 내가 먼저 말하지. 내가 선장이 된다면 난 이전의 선장이 했던 대로 하겠어. 식사시간마다 빵 한 조각씩, 그리고 하루에 6시간의 노 젓기 시간. 어때?

선원5:야 이 멍청한 놈아. 우리가 선장을 왜 죽였는지 벌써 잊은거야? 넌 안봐도 탈락이다.

(선원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선원2는 박장대소를 한다.)

선원4:엣헴. 나는 말이야, 우리 모두의 식사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식량창고가 언제 거덜날지 모르니 모두의 식사량을 빵 반 조각으로 줄일 생각이다. 그리고 모두들 빨리 육지에 다다르고 싶어 하니 노 젓는 시간을 한 시간 늘리도록 하겠어.

선원1:뭐라고? 안그래도 배고파 죽겠는데 반 조각? 야 이 도둑놈아, 네가 반 조각으로 노 한번 저어봐라.

선원5:난 지금 손발이 터져서 물도 제대로 못 마시겠는데, 뭐? 노 젓는 시간을 늘려? 네놈 궁둥짝 맞는 횟수는 내가 기꺼이 늘려줄 수 있다.(선원4의 엉덩이를 발로 쎄게 차며) 들어가 이 자식아.

(선원들이 야유를 보낸다.)

바보:나,나,나. 나도 할거야.(모자를 쓰며)나는 선장이 되어서 모두가 즐겁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하겠어. 그러려면 모두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줘야지. 너는 빵을 좋아하니 오늘부터 식량창고는 네 꺼야. 너는 여자를 좋아하니 계집을 하나 소개시켜줄게. 너는 선장이 되고 싶어하니 넌 선장을 해. 이 배는 네가 가져.(선원1에게 모자를 건네준다.) 어라? 내 모자가 어디갔지? (크게 운다.)

선원1: 좋아, 드디어 내 차례군.너희들 모두 배가 고픈 항해를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노 젓는 것을 싫어하는 사실도 잘 알고 있지. 그렇기에 내가 선장이 된다면 말이지, 식사량을 2배로 늘려주고 노 젓는 시간을 한 시간 줄여줄 것을 여러분 모두에게 약속하겠다.

선원3:노 젓는 시간을 줄인다고? 그럼 육지엔 어느 세월에 도착하는 거야?

선원1:지금 여긴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야. 굳이 노를 젓지 않아도 배가 스스로 바람을 타고 앞으로 잘 나간다고.

선원4:빵을 두 조각씩 배부해도 식량창고에 문제가 없을까?

선원1:그것도 문제없어. 나, 새로운 선장의 식량을 너희와 같이 두 조각으로 한다면 큰 차이는 없을 거야.

선원5: 흠, 여태껏 들었던 공약 중 가장 마음에 들고 신뢰가 가는군.

선원1: 그렇지? 좋아, 그럼 다들 투표할까? (선원3을 가르키며)저 자가 선장이 되길 바라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선원4를 가르키며) 그럼 이 자가 선장이 되길 바라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그럼 내가 선장이 되길 바라는 사람? (선원1,2,3,4,5가 선원1을 가르킨다.)좋아, 그럼 이 몸이 라피트호의 새로운 선장이올시다.

(모두의 박수가 쏟아진다.)

바보: 새로운 선장님이다, 새로운 선장님. 만세, 만세, 만세! 노에서 손을 떼. 신나는 노래를 부르자. 식량 창고를 열어라.

선원3: (빵을 들고 나온다. 선원들에게 빵을 나눠주며)빵 두 조각, 자네도 두 조각, 자네도 두 조각, 선장님도 두 조각. 나도 두 조각.

선원4:새로운 선장님이 아주 일을 잘하시는구나. 빵을 두 조각이나 먹으니 노도 신나게 저을 수 있겠어.

선원5: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선장을 갈아치우는 건데. 그렇지?

선원2:확실히 이전보다는 훨씬 좋구나. 그런데 정말 문제 없는 거겠지? 식량 창고 말이야. 요전에 봤을 때 그렇게 상황이 좋아보이진 않던데. 조금 아껴 먹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선원5:야 이 자식아. 그런 걸 걱정하는 놈이 벌써 빵을 다 먹었어? 선장님이 다 생각이 있으시니까 하시는 거 아냐. 너는 그냥 노만 젓기만 하면 돼.

바보: 맞아, 맞아. 너는 그냥 노를 젓기나 해. 노 젓는 건 나 같은 멍청이도 할 수 있다고. 물론 난 멍청이가 아니야.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가장 똑똑하지. 똑똑한 놈이 가장 먼저 죽는다면 난 탯줄에 목이 감겨 응애 울음 내기도 전에 이미 죽었을거야.

선원4: 이봐, 그렇게 불만이 있으면 자네가 키를 잡아보지 그래? 그럴 것도 아니라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야. 다들 다시 힘내보자고.

선원2,3,4,5:영차, 영차, 영차.

선원1 : 자, 오늘은 이걸로 마무리다. 약속했던 대로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침대로 돌아가봐도 좋다. 오늘 하루 모두들 수고했다.

선원2 : 선장님, 근데 선장님께서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여기 바람이 전혀 불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육지까지 도달 할 수 있을까요?

선원1 : 자네 말대로구만. 그치만 오늘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내일은 오늘 분만큼 더 크게 불어주겠지. 걱정 말고 가서 쉬도록 해.(선원들과 선장, 퇴장.)

바보 : 쉬도록 해, 쉬도록. 선장님께서 휴식을 보장하셨으니 바람이 불던 불지 않던 그의 약속대로 쉬면 돼. 식량창고에서 쥐새끼들이 빵을 갉아먹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지만 상관 없어. 왜냐하면 선장님께서 매 끼 두 조각의 빵을 약속해주셨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배부르게 노를 저을 수 있고 더 쉽게 노를 저을 수 있는거야. 혹시라도 그에게서 바다의 먹이가 되어버린 선장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야. 그는 이전의 선장과는 확실히 다르니까 괜찮아. 눈도 두 개, 코도 한 개, 입도 한 개지만 그는 이전의 선장과는 다르니까 괜찮아. 어떤 점이 다르냐고? 음…… 아, 그의 오른쪽 콧구멍 밑에 점이 하나 있어. 그 점이 달라. 그러니까 그를 믿어. 그를 믿어. (암전.)

2장
선원1, 뱃머리에서 선원들을 지켜보고 있다. 는 노를 젓는다. 바보는 아코디언을 서투른 솜씨로 연주한다.

바보: (연주를 멈추고) 신사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들의 초라한 뱃이야기를 들으러 이 자리까지 와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 제 이름이요? 죄송하지만 그건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 제 이름이 ‘사자메뚜기사기꾼호랑이사과거짓말오른손참나무속임수양고기바다도둑놈참외’가 아니냐고요? 혹시 제가 이 얘기를 언제 해드린 적이 있던가요? 전 여러분을 처음 보는 것만 같은데. 이상하군요. 그럼 혹시 저기 있는 선장이 선원들의 폭동에 의해서 칼에 찔려 죽는 것도 아시나요? 뭐라고요? 그건 아까 전의 이야기라고요? 이상하네, 내가 아는 선장과 다른 놈인가? 아하, 코 밑에 점이 있는 걸 보니 다른 선장이군요. 이렇게 헷갈릴 땐 노래나 부르는 게 제일 좋지요.(아코디언을 연주하려 한다.) 아니, 이놈의 더러운 쥐새끼들, 어디서 나타난거야? (발로 바닥을 쿵쿵 찧으며) 이놈, 이놈, 이놈! 젠장, 한마리가 아니잖아. 이놈, 이놈, 이놈!

선원1: 이놈들아, 모두 조용! 긴급 회의를 실시하겠다. 이번 회의의 안건은 바로 ‘선장에게 더 많은 식사가 필요하다’이다. 의견 있는 사람?

선원2:아니, 선장님. 그건 선장님이 말씀하셨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처음엔 저희와 똑같은 양을 나눠먹는다고……

선원1:내가 두 조각씩 먹는다고 했지, 몇 번을 먹겠다고는 말 안하지 않았나? 그리고 자네들 일은 몇 가지지? 겨우 노를 젓는 것 한 가지 아닌가. 그에 반해 나의 일은 실로 과하다 못해 두 손과 두 눈으론 부족할 지경이다.

선원2 : 도대체 무슨 일이 그리 많으십니까?

선원1:말로 하자면 사흘 밤낮을 샐 정도지. 망보기, 지휘하기, 키 잡기,식량 계산하기, 별자리 관찰하기, 망원경 꺼내기, 망원경 펼치기, 망원경 들여다보기, 망원경 닦아내기, 망원경 접기, 망원경 넣기, 숨쉬기, 코 파기, 눈알 굴리기, 눈 깜빡이기, 눈알 닦기… 아이고, 지친다, 지쳐. 네놈이 나를 숨차 죽이게 하려고 일부러 물어본거구나?

바보:으아, 선장님은 실로 무시무시하고도 무거운 업무를 담당하시는구나. 망원경 관련된 일만 도대체 몇 개야. 하나, 둘, 셋… 아아, 어지러워.

선원1:아무튼, 내일부터 나의 식사는 아침식사, 아침 늦은 식사, 점심식사, 점심 늦은 식사, 저녁식사, 잠자리 식사, 총 6번을 하도록 한다. 식량창고 담당은 이를 잘 계산하여 나에게 빵 두 조각씩 가져다 줄 것. 이상!

선원2:선장님은 우리와 같은 양의 식사를 하실 거라고 믿었는데, 뭔가 뒤통수 맞은 기분이야. 너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선원3:이봐, 선장님이 다 생각이 있으셔서 하시는 거겠지. 자네가 부선장이라도 되는 거야? 왜 이렇게 선장님을 못 믿어? 선장님이 식사를 더 하신다 한들 우리가 빵을 두 조각씩 먹을 수 있는 건 마찬가지잖아.

선원4:이 친구 말이 맞아. 그래서 자네가 손해본 게 있느냐고. 내가 몇일 전에 식량창고를 지나가다가 봤는데 아직도 빵은 충분히 많아. 그리고 식량창고가 걱정되면 자네가 빵을 덜 먹으면 되겠어.

선원2:그건 아니지. 다들 두 조각씩 먹는데 나 혼자 한 조각은 억울하지. 그치만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선원5 : 미안하지만 날 너희들의 말싸움에 끌어들이지 말아주겠어? 난 선장이 매일 여섯끼를 먹던 육십끼를 먹던 별 신경 쓰지 않아. 먹고 싶으면 먹으라 해. 난 매일 빵을 먹을 수만 있으면 되니까.

선원2 : 자네는 정말 관심이 없군 그래. 자네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안되겠나? 아무리 그래도 하루에 여섯 끼는……

선원4:그만, 그만 말해 이제. 자네와 대화하고 있으면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야. 오히려 벽을 보고 얘기하고 싶어 질 정도라고.

바보:무슨 벽? 돌로 만든 벽? 나무로 만든 벽? 흙으로 만든 벽? 종류에 따라서 어느 정도 말이 통할 수도 있잖아. 다이아몬드로 만든 벽이 가장 단단할라나? 땡땡땡! 틀렸어. 무엇보다 단단한 것은 우물을 만들 때 쓰는 벽이지. 혹시라도 개구리가 밖으로 튀어나가면 안되잖아? 매일 똑같은 하늘만 보고 살게 해야 올라올 생각을 못하지. 암, 그렇고 말고.

선원1:노를 저어라. 더 쎄게.

선원2,3,4,5: 영차, 영차, 영차.

선원1 : (선원3을 가르키며) 이봐, 자네. 식량창고에 가서 빵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와봐. 아마 아직 많이 남아있을거야. 가는 김에 배 내부도 점검하고 오고.

선원3 : 예, 선장님. (창고를 확인하러 퇴장, 곧 돌아와 선원1에게 귓속말로) 선장님, 큰일입니다. 식량창고가 거의 바닥났습니다. 이대로라면 몇 주도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선원1 : 뭐?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식량창고가 바닥을 보인다니?

선원3 : 정말입니다, 선장님. 식량창고 구석에 쥐구멍이 있는 걸 방금 발견했습니다. 방금 구멍을 막아 뒀지만 이미 쥐새끼들이 빵을 갉아먹어서 얼마 남진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선원1 : (한참을 고민한다.)알았다. 넌 이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마. 그 어떤 소문도 퍼뜨려선 안돼. 자네, 이 배에 지금 부선장 자리가 비어있는 것은 잘 알고 있지?

선원3 : 예, 선장님.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선원1 : 알다시피, 선장의 자리는 책임이 큰 만큼 할 일도 많지. 요즘들어 내 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단 말이지. 다시 말해, 부선장에 적임인 사람이 필요해. 자네는 내가 선원이었을 때부터 많은 시절을 함께 해오지 않았나. 내 생각엔 자네 보다 부선장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고 봐.

선원3 : 선장님, 그 말씀은……

선원1 : 쉿, 다른 사람이 듣겠어. 그냥 이 정도로만 알아두게. 가서 다른 선원들이 날 계속 믿고 따르게끔 도와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그 말이야. 그리고 이 빵 부스러기를 선원들 중 가장 뚱뚱한 놈의 상의에 좀 뿌려두게. 물론 이 식량창고에 대한 것은.

선원3 : 전 아무것도 못 봤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원3, 자리로 돌아간다.)

선원1 : 모두 집합! 너희들 중에 누군가가 식량창고에 있는 빵을 훔쳤다.한 명의 도둑놈 때문에 우리 모두의 식량이 상당 부분 없어진 상태이다. 바다유령이라도 튀어나와 마법을 부린 것이 아니라면 도둑놈은 너희들 중 한 명임에 틀림없다.

선원2 : 선장님, 요 근래 쥐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혹시 쥐가 우리 몰래 갉아먹은 것은 아닐런지요?

선원1 : 쥐구멍은 식량창고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지?

선원3 : 예, 맞습니다. 쥐구멍은커녕 벌레구멍 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범인은 이 배 안에 있는 자들 중 한 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원4 : 이봐, 그거 뭐야. 옷에 묻은 그거, 빵 부스러기 아니야?

바보 : 나요? 난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 몸 어디 빵 부스러기가 있지요? 이건 빵 부스러기가 아니라 비듬입니다. 더러우신가요? 더러울 것 없습니다. 이것도 제 몸의 일부인걸요. (선원1과 선원3을 가르키며)당신들 몸에는 나보다 더한 것이 묻어있군요.그것도 당신의 일부인가요? 그렇다면 나보다 더 자주 씻으셔야겠습니다. 물로 쉽게 씻기진 않겠어요. 비누칠로 싹싹 힘줘서 씻으면 조금 하얘지긴 하려나요?
선원5 : 아니, 이게 뭐야. 난 식량창고에 가본 적이 없어. 이건 오해라고. 다들 왜 날 그렇게 보는거야?

선원3 : 사실 저 친구가 어제 새벽 식량창고에서 서성이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별일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럴줄이야…… 자네도 봤지?

선원4 : 응? 아아, 그래. 봤지. 봤고말고. 그날 새벽, 저놈이 식량창고에서 무엇가를 가지고 도망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크기도 빵과 비슷한 크기였던 것 같으니 아마 먹을 것을 들고 도망간 것이겠지. 저 놈이 확실해.

선원5 : 아이고, 선장님. 전 억울합니다. 저는 여태껏 주는 빵만 잘 먹고 일해왔고 선장님에 대해 아무런 욕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불평 불만도 일절 해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저를 범인으로 몰아가시면 안됩니다, 선장님.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자네들도 날 한번만 도와주게, 제발.

선원1 :(선원5를 떼어내며) 네 녀석의 옷에 빵부스러기가 묻어있는데 어찌 계속 발뺌을 하는 것이냐. 몹쓸 도둑놈. 지옥에나 가버리라지. 이 자식을 당장 바다에 빠뜨려라. 올라오려 하면 칼로 놈을 찔러 죽여라.

선원2 : 선장님, 죄송하지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 녀석이 빵을 훔쳐 먹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또한 그것이 비록 사실이다 할지라도 어딘가에 가두거나 묶어두면 될 것을 굳이 죽여야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선원5 :(선원2에게 매달리며)역시 자네밖에 없구만. 내 목숨 살려주는 건 자네뿐이야.

선원1 : 가혹하다니? 저 놈은 식량을 훔쳐 먹은 범죄자야. 자기 한명의 배를 불리자고 나머지 선원들의 배를 굶게 하는 저런 놈을 계속 이 배에 놔둬야 할 이유가 있나? 살도 올랐겠다 바다에 내던지면 많은 물고기들이 배를 불리겠군. 저놈의 몸뚱이는 물고기 밥이 되어 좀 더 좋은 곳에 쓰이도록 하여라.

선원5 : 이봐, 날 위해 뭐라고 좀 더 말해줘. 날 지켜달란 말이야. 내가 지금 물고기밥이 되게 생겼는데 어째서 너희들은 그렇게 태연하게 있는거야.

선원2 : 여기서 자네를 위해 더 말해주었다간 나도 바다 속에서 멀쩡한 몸뚱이로 있게 되지 못할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자네에게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지 않아서 말이야. 자네가 그래왔던 것처럼. 미안하네.

(선원들, 선원5를 데리고 나간다.)

선원1 : 미안하군. 자네에게 잘못이 없단 것쯤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어쩌겠어? 식량은 부족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이것만이 이 배를 목적지까지 데려가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이해해주리라 믿네. 덕분에 입이 하나 줄었으니 당분간은 다시 또 괜찮겠지.

바보 : 선장님, 당신의 입이 제일 크니까 입을 조금만 닫으시면 저 사람을 살려둬도 되지 않았을까요? 아하, 알았다. 저 사람이 뚱뚱해서 마음에 안 들었구나. 아니면 저 사람이 못생겨서? 냄새나서? 음, 잘 모르겠네.저 사람보다 더 냄새나고 못생긴 사람은 버젓이 살아있는데 왜 그 사람은 내버려둔 것일까. 선장님의 마음 속은 정말이지 모르겠단 말이야.(암전)

3장
탁자를 중심에 두고 바보와 선원2가 서로 포커를 치고 있다. 식탁 위에는 각자의 앞에 빵이 한 조각씩 올려져있다.

바보 : 으음…… 아, 모르겠다. 됐어, 내가 졌어. 패가 뭔지 보여줘.

선원2 : 원페어야.

바보 : 원페어? 겨우 그런 패를 가지고 나를 가지고 놀려?

선원2 : 내가 널 언제 가지고 놀렸다고 그래? 네가 알아서 속아준 거 아니야? 난 너보고 속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는 걸? 약속대로 네 빵은 맛있게 먹어줄게. 고맙다고.

바보 : 안돼, 절대 못줘. 너같은 사기꾼에게 줄 빵이 아니야. 다시 해. 다시 해서 또 이기면 그땐 정말로 줄게.

선원2 : (강제로 빵을 뺏으며)이봐,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네가 이겼더라면 난 기꺼이 내 빵을 내주었을 거라고. 오늘을 교훈삼아서 다음엔 사람을 잘 보고 내기를 걸길 바래.

바보 : 아냐, 다시 해. 여기 기다리고 있어. 지금 식량창고에서 빵을 하나 가져올테니.

선원2 : 뭐? 아니지, 아니야. 그건 아니지. 누구도 식량창고에 있는 빵을 자기 마음대로 가져올 순 없어.

바보 : 왜 안돼? 창고엔 빵이 많잖아. 내일 먹을 것을 오늘 먹으면 되지.

선원2 : 그럼 내일 먹을 빵은?

바보 : 내일 모레 먹을 빵을 먹으면 되지

선원2 : 그럼 내일 모레 먹을 빵은?

바보 : 너도 참 바보구나. 그건 그 다음 날에 먹을 빵을, 그 다음 날은 그 다음 주의 빵을, 그 다음 주는 그 다음 달의 빵을 땡겨서 먹으면 해결되는 일이잖아?

선원2 : 창고에 있는 빵은 그렇게 많지 않아. 너도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잖아?

바보 : 알지, 알다마다. 이 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희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걸?

선원2 : 그런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바보 : 글쎄, 뭐가 문제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다들 나처럼 빵을 땡겨 먹으면 되잖아? 배가 고프면 내일 먹을 빵을 미리 먹는 거야. 내일은 또 다시 내일의 내일의 내일의……

선원2 : 그러다 빵이 부족해지면? 식량창고의 모든 빵을 다 먹게 된다면 어떻게 할거지?

바보 :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 이런 자잘한 일에 신경을 쓰다간 금세 머리털이 다 빠져버리고 말거야. 이럴 때 머리를 쓰라고 있는 게 선장님 아니겠어? 선장님의 머리털이 몇 가닥 빠져보이는 건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애초에 복잡한 일도 아닌데 왜 그리 걱정하는 거지? 모두가 배가 고프니까 모두가 빵을 배불리 먹는다. 모두가 행복해진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야?

선원2 : 이봐, 생각하지 않으면 안돼. 이건 중요한 일이라고. 우리들의 항해가, 미래가 걸린 일이야.

바보 : 아, 몰라 몰라. 난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너를 어떻게든 이긴다는 것, 그리고 내 빵을 도로 가져와 배를 채운다는 것 뿐이니까.

선원2 : 정말 넌 바보가 맞구나.

바보 : 때에 따라서 멍청해지기도 하고 똑똑해지기도 하고. 그게 바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지. 내가 지금 바보처럼 보여도 두고 봐. 너희들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을 거야. 아마도 말이야.

선원2 : 됐다. 여기 네 빵 돌려주마. 대신 식량창고에 혼자 들어간다는 소리는 다신 하지 마.

바보 : 야호, 이것 봐. 결국 빵을 다시 돌려받았잖아. 내가 제일 똑똑하다니까.

(나팔소리가 들린다.)

선원2 : 아니, 무슨 일이지?

(선원1,3,4 등장.)

선원1 : 모두 모여라. 긴급회의를 시작한다. 오늘의 회의 주제는 ‘선원들의 식사량을 줄인다’이다. 의견 있는 사람?

선원2 : 아니, 선장님. 저희들의 식사량을 줄인다니요? 누구보다 많이 드시는 분이 선장님 아니십니까? 선장님의 식사량을 줄이시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선원1:물론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배를 책임지고 이끄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나, 선장 아닌가? 내가 배고파서 제대로 뱃길을 보지 못한다면, 혹시라도 해적들의 본거지로 배를 이끌게 된다면, 암초덩어리를 미처 피하지 못한다면 자네가 모두 책임질건가? 응?

선원3:맞는 말씀입니다. 여태껏 빵을 두 조각이나 먹을 수 있었던게 다 누구 덕인데 이제 와서 선장님 탓을 해? 염치가 있으면 그럼 안되지.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바다에 빠진 그 놈의 사지가 지금쯤 어찌됐을까 하고 상상해보면 답은 나오지?

선원4 : 아, 맞네, 맞아. 자네의 말도 맞고 선장님의 말씀도 맞네.다들 맞고 말고.

선원2 : 선장님, 선장님 말씀대로 저희 식사를 줄인다 해도 결국 도착하기 전에 식량이 바닥날 것입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선원1:빵이 없다면 생선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 오늘부터 노를 젓고 남은 시간은 낚시를 한다. 한 시간이 되던 두 시간이 되던 잠시간을 줄여서라도 필히 물고기를 잡도록 하여라. 다섯 마리도 낚지 못한 사람은 빵을 주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도록.

선원2 : 이래서야 예전보다 일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빵도 제대로 먹지 못하겠구나. 이봐, 이게 다들 원하던 거야? 너희들이 원하던 것이 이 모양이냐고?

선원3 : 뭘 중얼거리는 거야. 빨리 낚싯대나 잡지 그래? 굶고 싶은 거야? 아니면 자네 먹을 빵을 나에게 나눠주기라도 할 셈인가?

선원2 : 자넨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선장은 하루에 12조각의 빵을 먹어. 그러면서 우리보곤 식사량을 줄이라고 한다니까? 우리들의 몫을 다 합친 곳보다 많은 양을 혼자서 먹는다고.

선원3 : 아까 말씀하시는 것 제대로 못 들었어? 선장님은 우리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시잖아. 우리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시고 더 많은 빵을 드실 자격이 있으셔. 우리랑 다른 분이시라고. 그분이 없으면 배는 갈 수 없어.

선원2 : 그래, 선장님이 없으면 배는 앞으로 갈 수 없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야? 우리가 없으면 노 저을 사람도 없다고. 지금 우리 꼴을 봐. 식사량은 예전과 같고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하게 됐어. 이게 자네가 원한 것인가?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고 싶어서 반란을 일으켰었나?

선원1:잡담은 그만! 노를 저어라.힘차게, 더 빨리!

(선원들, 말 없이 노를 젓는다.)

선원2 : 제길, 여긴 바람도 불지 않아 배도 앞으로 잘 가지도 않는군. 목적지까지 한참 남았는데 이 정도 속도여서야.

선원3:(선장에게 다가가)선장님, 선장님 말씀대로 아래에서 올라오는 불평 불만은 다 제가 처리했습니다. 저번에 약속했던 부선장의 자리는 제게 주시는 것이 맞으시지요? 선장님, 배가 너무 고픕니다. 제게 빵을 조금만 나눠주십시오. 부선장으로서 좀 더 많은 빵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요?

선원1 : 부선장? 내가 자네에게 그런 약속을 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구만. 아랫것들의 불평을 자네가 관리해주었다는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해서 빵을 더 줄순 없는 일이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나?

선원3 : 선장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분명 저에게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선원1 : 자네가 오랜 항해를 하다보니 드디어 정신이 나갔구만. 빵이 그리도 먹고 싶으면 더 열심히 노를 저어서 자네의 노력만큼의 빵을 먹도록 해. 그 이상은 줄 수 없어. 자리로 돌아가. 어서.

선원3 : 아아, 여태껏 나는 저런 사기꾼에게 속아 저놈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동료들의 등에 칼을 꼽았다.나 때문이다. 동료를 죽인 것도, 이 배를 암초보다 더한 곳으로 내몰아 세운 것도 모두 나의 욕심 때문이다.선장의 이름을 달고 하는 짓은 버러지만도 못하니 그를 따른 나 자신도 부끄러워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온 세상의 저주를 너에게 퍼붓겠다. 네놈의 사지가 갈갈이 찢겨 지옥으로 굴러 떨어지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겠다.

(선원3 바다에 몸을 던진다.)

바보 : 빠졌다. 사람이 바다에 빠졌어. 살인사건이야! 누구지? 선장인가? 선원인가? 아니면 사람을 홀리는 사이렌? 저 자에게 원한이 있던 사람은 당신이야? 아니면 당신? 아니, 내 손에 피가 묻어있어. 내가 죽였나봐.

선원2 : 선장님, 선원이 한 명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배가 고프고 추운 바다에서 한없이 노를 젓다가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선장님, 여기를 좀 보십시오. 당신의 욕심 때문에 몇 명 있지도 않은 귀한 선원이 죽었습니다.

선원1:항해를 하다보면 자주 있는 일을 무슨 호들갑을 떠는 것이야. 이런 일로 죽는 놈이라면 어차피 죽었을 터. 덕분에 먹을 입이 줄었으니 오히려 좀 낫지. 놈의 시체를 뜯어먹으려 상어라도 몰려들면 볼거리가 되겠군.

선원2 : 이 배도, 선장도, 그리고 나도 모두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하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암초도, 바다괴물도, 해적도 아니었어. 멀쩡한 배가 아무 흠집도 없이 침몰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더라면, 바닷배에 오르지 말고 아버지를 따라 양치기나 될 걸 그랬구나.
(포성이 울린다. 함성이 들려온다.)

선원1:긴급사태다, 긴급사태! 해적선이 따라 붙는다. 모두 전속력으로 노를 저어라. 어서!

(선원2,3,4 노를 느리게 젓는다.)

선원1:아니, 왜 이렇게 느린 것이야. 이러다간 눈 깜짝할 새에 잡히겠다. 좀 더 빨리 못가겠느냐!

선원4:선장님, 노를 저을 사람이 부족합니다.

선원3:노를 저을 힘도 부족합니다.

선원2:배를 움직일 바람도 부족해. 나한테 저 마법의 모자가 있다면 바람을 일으킬텐데. 마법도 못쓰는 놈이 무슨 선장이라고. 그치?

선원1:너희들이 원하는 건 다 주마. 좀 더 빨리 저어, 더 빨리. 빵을 원하냐? 내 몫을 떼어주마. 여기 있다, 먹어라. 노도 내일부터 내가 젓도록 하지. 그러니 어서 더 저어라. 어서! 아니, 저길 봐.포탄, 포탄이다. 해적놈들이 포탄을 쐈어! 오, 이미 늦었다. 맞는다.

(포탄이 선원1의 얼굴에 명중한다. 선원1 쓰러진다. 그의 모자가 갑판 위에 떨어진다. 선원3,4 모자를 보고 관객석을 보고 서로를 본 후 모자로 달려가 몸싸움을 한다.)

선원2:선장이 죽었다! 항복이요, 항복. 제발 나를 쏘지 마세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착하고 멍청한 선원입니다. 그런데 당신네는 참으로 잘 사시는군요. 저도 해적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요? 네? 아는 것을 말하면 빵과 술을 주겠다고요? 어휴, 사양입니다. 그놈의 빵은 줬다가 언제 또 다시 뺐으시려고.돈도, 빵도, 술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목숨만 살려주시면 아는 걸 다 말씀드립죠. (선원2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