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죄는 줄(제2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 소설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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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공모 수상작: 소설 부문 가작

옥죄는 줄

장현수(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전투화 끈을 본다. 자살 방지 매듭이 보인다. 자살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의미로 만드는 매듭. 하지만 아무 쓸모 없다. 난 스르륵 매듭을 풀었다. 어차피 시기만 다를 뿐 결국 다가올 운명이었다.

‘이거 소대장님이 찜해놓은 나무인데’

우리 부대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를 보며 중얼거렸다. 선로 점검을 위해 소대장님과 부대를 돌아다닐 때 소대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저기 저 나무 보이지? 저기 새까만 나무는 정보과장님이 찜해 놓았고, 여기 이 나무는 내가 찜해놨다. 너도 자살할 때 어느 나무 사용할 건지 정해놔.”

당연히 농담으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대장님이 미리 선택한 나무에 목을 매는 것에 부담가질 필요가 없었다.

난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고, 탄창 조끼와 헬멧을 벗었다. 반질거리는 머리에 맺힌 땀방울이 새벽바람과 만나 내 머리를 식혀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과 별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이어서 나무를 바라보는데 가장 아래에 있는 가지마저도 내 키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발판이라도 가져왔어야 했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밟고 올라갈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아봤다. 다행히 나뭇잎으로 뒤덮인 비탈길 아래에 버려진 사다리를 발견했다. 망가진 사다리를 질질 끌고 와서 나무에 기대고 위태롭게 올라섰다.
몇 번 떨어지는 바람에 팔다리를 조금씩 긁혔다. 네 번 만에 드디어 내가 봐뒀던 나뭇가지 끝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내 몸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튼튼했다.
풀어놨던 전투화 끈으로 커다란 매듭을 만들고 내 목과 가지에 걸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있는 부대를 쭉 둘러봤다. 길 곳곳에 갈라진 틈이 보이고, 각종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이제 더는 아무것도 청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깐 생각에 잠겨서 조그맣게 퍼지는 내 입김을 바라본다. 내가 만약 제정신이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난 시골 출신이다. 우리 마을, 옆 동네, 읍내와 같은 단어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곳이었다. 동네를 거닐면 물에 잠겨 있는 벼들과 검은 햇빛 가리게 아래에 인삼을 키우는 걸 쉬이 볼 수 있었다. 소나 염소를 끼우는 곳도 있었는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분뇨 냄새가 진동했다. 동네 개들은 날 보면 반가워하면서도 거칠게 짖어댔다.
아이도 별로 없는 그런 곳에서 내가 하고 놀 수 있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TV도 인터넷도 되지 않은 곳에서 난 독불장군 누나와 고집만 센 어린 동생과 하루하루 벌레와 싸우고 풀을 꺾고 나무를 때리며 지냈다.

어느 날 누나는 놀라운 걸 발견했다며 나와 동생을 끌고 갔다. 누나를 따라 옆 마을 뒤쪽 산을 넘으니 거대한 저수지가 있었다. 우리 삼남매는 신이 나서 저수지에 돌을 던지기도 하고 물장구도 치며 놀았다.
어느덧 하늘이 붉게 물들 때 즈음 누나는 또 보여줄 게 있다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저수지 왼쪽으로 누나는 발길을 옮겼다. 경사가 져 있고, 가시가 박힌 나뭇가지들이 저수지 물까지 닿아있었다. 누나는 조심스럽게 가시를 피해 나뭇가지를 붙잡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내디뎠고 나와 내 동생도 누나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며 나아갔다. 경사가 많이 진 길을 나무에 거의 매달려서 한 걸음씩 옮기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곳에 도달했다. 누나는 낑낑대며 어떻게든 가보려고 했다.

“아까는 분명 지나갔는데.”

“누나 이제 돌아가자. 나 손 아파.”

누나는 고개를 홱 돌려서 나와 동생을 쳐다봤다. 누나의 눈꼬리가 씰룩이고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다음에 오면 되지. 돌아가자. 막내야 뒤로 돌아서 가봐.”

그런데 동생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나 못하겠어. 어떻게 해?”

“아니 그냥 뒤돌아서 가라고.”

“나 못하겠어.”

누나의 다그침에 동생은 급기야 울기 시작했다.

“엉엉, 못한다니까. 누나는 나한테만 뭐라 그래.”

얘를 데리고 온 게 잘못이었다. 자기 스스로 할 줄 아는 거 하나 없이 언제나 누나나 나한테만 의존하는 녀석은 언제나 짐일 뿐이었다.

“야, 니가 쟤 좀 어떻게 해봐.”

누나가 짜증 내며 말했다. 난 한 손으로는 가시나무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동생의 팔을 잡았다.

“지금 쥐고 있는 거 놓고 뒤로 돌아.”

하지만 동생은 울기만 할 뿐 내 말을 듣지 않았고 한참을 실랑이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뒤에서 누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 둘 다 집에 가서 보자.”

난 억울했다. 동생 때문에 누나한테 맞게 생겼으니. 동생한테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손과 팔이 아파지고 종아리도 당기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동생 발을 가볍게 찼다. 동생이 넘어지고 잡고 있던 가지를 놓쳤다. 쭉 미끄러지더니 저수지에 빠졌다. 빠르게 물속에 가라앉는 그 애에게 나와 누나는 헤엄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와 누나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갔고 어른들을 불렀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어둑한 밤이 돼서야 소방관이 오고 물속에서 동생을 끌어냈다. 퉁퉁 불어서 사람 같지도 않은 모양이 너무 무서웠다.
엄마는 동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주려고 했던 책가방을 보자기에 고이 싸고는 장날에 팔아버렸다.

누나는 내 동생을 죽인 괴물이 되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있었다. 부모님은 부지런하게 매일 술을 마시고 누나를 때렸다, 농사일은 쉬더라도 누나에게 주먹질과 발길질 하는 건 쉬지 않았다.
누나는 처음에는 잘못했다고 빌기도 했고, 울기도 했고, 소리도 질렀다. 하지만 점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부모님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난 집 밖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서 모든 게 잠잠해질 때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가면 누나가 반쯤 감긴 혼탁한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폭행과 폭언이 일상이 되어버릴 때, 내가 그 괴로움과 슬픔, 비참한 마음에 적응했을 때 즈음에 누나는 집에서 밧줄에 자신의 목을 매단 채 발견됐다. 배까지 나와 있는 기다란 것이 혀라는 걸 직접 보고서도 믿기 힘들었다.
엄마, 아빠는 울며 슬퍼했다. 누나가 동생을 죽였다며 혀를 끌끌 차던 동네 어른들도 찾아와서는 누나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렇게 슬퍼할 거면 왜 그랬던 건데.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너무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어릴 때의 경험은 그림자가 되어 내 인격을 조종했다. 난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되었고 머릿속은 죽음으로만 가득 찼다. 군 신체검사에서는 이런 내 상태를 파악하려 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것을 굳이 알리려 하지 않았다. 난 신체와 정신이 아주 훌륭하고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은 덕분에 현역으로 입대를 할 수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훈련소 생활이 끝나고 자대에 왔다. 오래돼서 썩어들어가는 게 보이는 침상에 선임들만 가득한 생활관. 내가 들었던 동기 생활관이나 침대 같은 것은 없는 열악한 부대였다. 동기도 없이 자대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만난 맞선임은 내게 친절하게 대해줬다. 흔히 말하는 에이급으로 부대 내에서도 평이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대 생활을 한 며칠 뒤 맞선임이 날 야외건조장으로 불렀다.

“야. 너 뭐냐?”

“잘 못 들었습니다?”

난 사교성 좋은 그 선임이 정색하는 걸 처음 봤다.

“내가 여기 와서 처음으로 털렸어! 너 때문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몰랐기에 죄송하다는 말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선임이 말하는 데 듣는 척도 안 하네. 하, 참.”

“아닙니다.”

“선임이 편하지? 친구 같지?”

“아닙니다.”

“내가 만만하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나 한 대 치고 싶지? 별것도 아닌 게 나댄다고.”

“아닙니다.”

“진짜 말이 안 나오네. 최소한 죄송한 기색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진짜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표정을 잃어버린 나에게는 미안한 얼굴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날 이후 대대 전체에 내 소문이 퍼졌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먹으며 더 부풀어지고 커졌다. 난 매일 선임들이 날 어떻게 볼지 신경 쓰기 시작했다. 내가 한 행동이나 말 중에 문제가 될만한 것을 일일이 헤아렸다. 매일 100개가 넘었다. 날 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혐오와 경멸을 느낄 수 있었고,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 걸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그동안 내 마음속을 유유히 떠다니던 괴물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고 무게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더욱더 구제 불능의 인간이 되어갔다.

오늘 근무는 02시부터 04시 탄약고 근무였다. 새벽. 누군가 날 격하게 흔들고 있었다.

“너 미쳤냐?”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원래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서 15분이 지나있었다. 난 허겁지겁 전투복을 입고, 전투화를 신었다. 시계를 다시 확인하니 15분이 더 지나있었다. 헬멧과 조끼를 들고 나갔다. 허겁지겁 가니 상황병이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아, 이제 왔습니다. 네. 곧 투입될 겁니다.”

당직사관님이 눈을 부릅뜨고 내게 다가왔다.

“왜 늦었냐?”

“불침번이 안 깨웠습니다.”

“이게 진짜, 어디서 거짓말이야! 이미 제시간에 깨웠다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난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모든 말은 거짓말이 될 거란 걸 알고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늦게라도 일어났으면 재깍재깍 와야지, 왜 이렇게 늦어?”

“환복하느라…”

“아, 진짜 이게 사람 진짜 화나게 하나. 남들은 5분이면 되는 걸 넌 15분이나 걸리냐?”

나도 나 자신이 왜 이렇게 굼뜨고 느린지 답답하기만 했다. 최대한 빠르게 행동하려고 하는데 몸은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우울함이 짙어질수록 행동은 더 느려졌고, 그에 따라 털려야 할 이유는 더 크고 또렷해져만 갔다.

“일단 빨리 근무 교대하고 넌 있다가 끝나고 와서 진술서 써. 알겠어?”

“네.”

난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 여기서 괜한 소리를 했다가는 나만 곤란해질 거란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탄약고에 도착하니 근무를 서고 있던 안 병장이 날 보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너 내일 보자.”

난 눈을 내리깔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근무 교대한 인원들이 눈에 보이지 않자 같이 근무하는 신 상병이 말했다.

“야, 나 화장실에 갔다 온다.”

“알겠습니다.”

이미 여러 번 있는 일이었다. 신 상병은 탄약고에서 근무할 때는 근처 물자 창고에서 몰래 자다가 근무가 끝날 때쯤 돌아온다. 난 오히려 좋았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게 편했다. 근무자를 감시하기 위해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지휘통제실에서 볼 수 있지만, 아무도 CCTV 모니터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잠깐 멍하니 있다가 아까 안 병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일 보자. 내일 보자. 내일 보자. 난 무언가에 흘린 듯이 탄약고 초소에서 내려왔다. 어디를 가야 할까 잠깐 고민했는데 소대장님이 말해줬던 나무가 떠올랐고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막사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내가 없어졌다는 것을 파악한 모양이다. 지금 있는 나무는 막사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금방 발각될 것이다. 난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나뭇가지에 매달렸다. 내가 이렇게 된 건 어릴 때 그 사건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건 핑계에 불과한 걸까? 난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숨을 못 쉬어서 오는 괴로움만 있는 줄 알았는데 목 근육만으로 온 체중을 버텨야 해서 목뼈가 꺾이는 것 같았고 눈이 터져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도 의식은 멀쩡했다.

삐익-

슬슬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 호루라기 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이어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전투화가 나뭇잎을 짓밟는 소리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무에서 끌어내려 져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와중에 난 눈을 꼭 감고 기절한 척을 했다. 혹시나 구급대원들이 내가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에게 알릴까 봐 두려웠다. 죽었어야 한다. 죽지 못해서 난 또 벌을 받는다. 이런 일을 저지르고 모두 앞에서 또다시 살아가야 한다.

진급을 앞둔 대대장과 작전과장 덕분에 이일은 조용히 처리됐다. 근무 이탈에 대한 징계를 받지 않았고 인사과장은 일단 민간 정신병원에서 당분간 치료를 받고 못 버티겠으면 의가사 전역을 하게 해주겠다는 말로 당장 현역 부적합 심사를 보지 못 하게 막았다. 응급실에 실려 갈 때만 해도 기회가 되면 다시 자살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할 힘이 없어져 버려서 죽는 것도 포기했다.

금요일 19시. 베레모를 쓰고 중대장님 차에 탄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군 생활 힘들지. 잘할 필요 없어 버티면 돼, 버티는 게 잘하는 거야라며 날 격려해주려 했었지만 이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살에 실패한 걸 후회하게 하는 침묵이었다.
병원은 빌라와 2층 상가만 잔뜩 있는 구불구불한 거리를 조금 가면 있었다. 난 앞장서서 걷는 중대장님을 졸졸 따라갔다. 그렇게 접수를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따라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흰색 가운 안에 얇은 티에 노란색 카디건을 하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귀걸이는 하지 않았지만, 귓불에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고 목에는 붉은 보석이 박힌 하트모양의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문득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커피 좋아해요? 라떼 괜찮아요?”

난 제대로 듣지 못해서 네라고 대답했는데 의사는 동의한 줄 알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서 내게 내밀었다. 손에 반지는 끼고 있지 않았다.
의사는 작은 노트와 펜을 들고 날 지긋이 바라봤다. 난 커피가 뿜어내는 작은 방울들만 열심히 쳐다봤다. 의사의 시선이 느껴져서 너무 부담스러웠다. 바늘로 내 머리를 계속 찌르는 것 같았다.

“이제 내일이면 주말이네요. 군대는 주말에 뭐해요? 똑같나?”

“쉽니다.”

“오, 그렇구나.”

의사의 목소리는 녹음된 대답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책상 위에 올려진 작은 알람 시계를 보며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빌었다. 무의미한 질문과 대답을 조금 주고받았다.

“일단 항우울제를 처방해드릴게요. 이게 약이 신체에 어느 정도 축적이 되고 체내대사를 조절해야 좀 나아지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보통 한 3개월 정도는 꾸준히 드셔서 약 효과를 느끼실 수 있어요. 그러니 며칠, 몇 주 먹고 효과 없다고 안 드시면 안 돼요. 아시겠죠? 그리고 혹시 부작용 같은 게 느껴지면 바로바로 말씀해주시고요.”

그렇게 난 항우울제를 처방받았고 부대로 돌아왔다. 매주 똑같은 요일, 똑같은 시간에 병원에 갔다. 주로 중대장님과 같이 갔는데 종종 소대장님, 인사과장님 등 다른 간부와 가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은 늘 인사를 하고, 커피를 권했다. 난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아무 소용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도 진료를 받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몇 마디 하기 시작한 것이 점점 길게 변했다. 기계처럼 느껴졌던 의사 선생님이 점점 사람처럼 느껴졌고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처음으로 감정이란 게 싹트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다를 바 없이 똑같았던 날, 난 불쑥 속마음을 털어놔 버렸다. 의사에게는 숨길 필요 없다는 자기 위로를 하면서 말이다.

“저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군인, 그것도 부적응자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불쾌해하고 그래서 더는 나한테 친절하게 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음. 그래요? 저를 사랑한다는 게 본인한테는 어떤 생각이 들게 해요?”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난 아무 말도 않았다. 문득 눈앞에 보이는 커피잔을 들었다. 꿀꺽 한 모금 마신 이후 조금의 조용한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걸 너무 무겁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오히려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에요. 저를 정서적으로 더 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거고, 제가 잘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준다는 뜻이에요.”

난 속으로 부정했다. 내 마음은 치료되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었다.

“치료가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맞아요. 제 역할은 신체 호르몬을 조절해서 우울함 같은 증상들을 완화해주는 약을 처방해주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을 환자분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할 수는 없겠죠. 겪은 일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

그럼 지금 하는 이런 것들 다 쓸모없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말을 이어갔다.

“내면의 상처를 직시한다는 것만으로는 아픔이 없어지지 않지만,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나가는 지는 배우고 익힐 수 있어요. 저는 그것을 돕는 거죠. 정신과에서는 치료라는 게 물론 병을 없애는 것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을 관리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내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선생님의 말을 조금씩 곱씹어봤다. 결국은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장해서 가지고 있던 상처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난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덜덜 떨기도 하고, 기억이 깊숙한 바닥까지 뻗치지 않아 말을 자꾸 더듬었다. 선생님은 참을성 있게 나와 눈을 맞추며 열심히 들어줬다.

“그런 일이 있으셨구나. 죄책감 같은 건 가질 필요 없어요. 본인 잘못이 아니에요.“

선생님은 머리를 한 번 쓸어내렸다.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샴푸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제가 동생 발을 찼습니다.”

“동생이 그렇게 될 걸 알고 그런 게 아니잖아요.”

“누나가 맞을 때 그걸 모른척했습니다. 제가 그랬는데. 누나는 아무 잘못 없는데.”

“어린아이였잖아요.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없었고요. 본인 잘못이 아니에요.“

그녀는 몸을 조금 숙이고 내 눈을 맞추고 단호하게 말했다. 눈을 마주치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점점 차오르더니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럼….”

“동생분이 죽은 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고, 누나 일은 부모님 때문이에요. 그걸 표현할 수 있으셔야 해요. 본인 잘못은 없어요.”

내 부모가 가해자라는 말에 난 순간 울컥했다. 무언가 변명을 하려고 했다.

띵.

알람시계가 가볍게 울렸다. 20시였다. 상담이 끝날 시간이었다. 난 시계를 쳐다봤다.

“원하시면 계속할 수 있어요.”

“아닙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예.”

난 베레모를 쓰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잠깐만요. 이거. 곧 생일이라면서요.”

선생님은 작은 조각 케이크를 주며 말했다. 난 얼떨결에 받았다. 밖에 나가서 중대장님과 차를 타려는데 내가 들고 있는 케이크를 보더니 말했다.

“부대 안에서는 못 먹으니까 근처에서 먹고 가자.”

“예.”

중대장님은 편의점에서 우유 하나를 사서 내게 줬다. 난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서 눈치를 보며 조용히 케이크를 먹었다.

“이제 확실히 결정하자. 남을지, 떠날지. 어떻게 할래?”

난 잠깐 생각하고 조용히 말했다.

“전역하겠습니다.”

중대장님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현역 부적합 심사는 천천히 진행됐다. 그동안 난 모든 일과와 근무에서 빠져서 정말 유령 같은 생활을 했다. 결국 의가사 전역이 확정됐고 전역하기 하루 전날 중대장님은 포장된 작은 선물 상자를 하나 줬다.

“의사 선생님이 인사도 못 하고 헤어져서 아쉽다고 보낸 거야.”

“예.”

중대장님이 나가고 난 포장을 뜯어봤다. 상자 안에는 손목시계와 편지가 하나 들어있었다. 의미 없는 인사, 안부를 가볍게 훑어 읽었다.

… 소식 들었어요. 저에게는 다소 갑작스럽긴 한데 아마 많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결정한 것이겠죠? 상담할 때 아직도 큰 노력을 하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제는 진실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시는 것 같았는데 이제 만날 수 없다니 아쉬워요. 혹시 저만 그렇게 생각했나요? ㅎㅎ.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긴 해요. 환경이 갑자기 또 바뀌면, 물론 군대가 아닌 집이라서 훨씬 낫겠지만 그래도 변화라는 게 항상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거기서도 병원 잘 다니시고, 좋은 의사 선생님 만나시고 그렇게 치료를 계속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병원에 가라, 상담을 받아라. 이런 걸 제가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권해드리는 것뿐이에요.

사실 저도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그래서 볼 때마다 내 동생이 살아있었으면 딱 저 군인이랑 비슷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상담에서 말씀해주신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에 제가 가지고 있던 상처가 다시 발현돼서 마음을 잘 제어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 다음번 만남에서 근방에 있는 다른 병원을 추천해드리려고 했어요. 이렇게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데 개인감정이 동반되어서는 안 되거든요. 그런데 그럴 필요는 없어졌네요. 혹시 그때 제가 흔들리는 게 보여서 이런 결정을 하신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나름 괜찮은 척 연기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ㅎㅎ

아무튼. 선물을 하나 보내요. 손목시계에요. 그 시계를 보면서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이제 본인을 옥죄는 줄이 죽음으로 가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 끌어당겨 주는 것으로 바뀌면 좋겠어요. 시계 뒷면에는 제 번호를 새겨놨어요. 아시겠지만 직접 연락을 하는 건 곤란해요. 하지만 그렇게 한 이유가 있어요. 만약에 우리가 길을 가다가 혹은 카페에서, 영화관에서 어디서든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일 테니 그때 그 번호로 전화해주세요. 그때 즈음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겠죠? 앞으로 잘 지내고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

그렇게 난 짧았던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세상에 나왔다. 짙은 어둠 속에만 살았던 나는 이런 경험으로 상담이라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어차피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오기만 했던 나이기에 내가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그저 내가 무언가 하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아하셨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난 이 분야가 내게 잘 맞는다고 느꼈다. 책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이미 경험했기에 공부하는 것이 아주 순조로웠다. 물론 점점 심화 지식을 배우고 수많은 상담을 직접 진행하고, 슈퍼바이저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이 과정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몸으로 체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결국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의가사 전역은 내 이력에 독이 되기도 했지만, 독특함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난 의사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상담심리사가 되었다.

땡땡. 문 끝에 매달린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요?”

“카페라떼 하나 주세요. 따뜻한 거로요.”

“네. 감사합니다.”

바깥으로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것이 보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은은한 커피 향 뒤로 달콤함이 혀를 감싸고 뜨거운 온기가 오랫동안 입안을 맴돈다. 내 내면에 만들어진 진료실에서 난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이어간다.

시계를 보니 8시다.

‘상담 끝날 시간이네.’

마음속에서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카운터에 다시 가서 딸기가 올려진 초콜릿 조각 케이크 하나를 추가로 주문했다. 맨 위에 올려진 딸기를 포크로 찍어서 입안에 가져가 우물우물 맛본다. 상큼한 향이 코를 찌르고 이어서 딸기에 묻어있던 크림이 부드럽게 볼에 닿았다.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본다. 세상에 날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달라는 의미인 시계. 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과 함께하니 아무 필요 없다. 난 스르륵 시곗줄을 풀었다.

시계 뒷면에 적힌 숫자를 보며 오늘도 난 우연이 아닌 운명으로 만날 그녀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