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이 시작됐다. 그중 고난도 공정을 이끌 수준급 전문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GIST 등 지역 거점 기관이 거론된다.
광주에 들어설 삼성·SK 메가 팹, 2030년 첫 칩 생산 예정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 중 하나인 ‘호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이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되며 사업 추진을 시작했다. 광주 군 공항 부지 일대 약 250만 평(826만㎡)이 호남권 반도체 첨단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되면서 사업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기반이 마련됐다. 지정된 부지뿐 아니라, 인근 광주 첨단 3지구 및 도심 융합 특구와 연계돼 서남권 최대 규모의 첨단 산업 거점으로 조성된다.
이번 프로젝트의 전체 투자 및 사업 규모는 국내 주요 대기업과 연계해 수백조 원대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메모리 메인 팹(FAB) 2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조성 등에 약 4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연계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메모리 메인 팹 2기와 함께 1GW 규모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 현재 부지확보 및 인프라 조성을 거쳐 2030년 6월 최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 준공을 목표로 단계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클러스터 조성이 갖는 기술적 특징은 단순한 제조 공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비수도권 단지들이 주로 제품을 조립‧포장하는 단순 후공정(패키징)에 집중됐던 것과 달리, 이번 프로젝트는 반도체 웨이퍼를 직접 가공하고 회로를 그리는 최첨단 전공정 팹 구축을 핵심으로 삼는다. 이와 함께 차세대 산업의 핵심인 AI 반도체 개발 기반과 가상공간에서 공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 혁신 허브 등 첨단 기술 인프라가 함께 들어선다. 결과적으로 호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초미세 공정과 고난도 설계 기술을 갖춘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71만 고용 창출의 전망 속, ‘인프라·정치 갈등·인재 유출’ 난제
호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을 본격화하면서 지역 산업 생태계에 가져올 긍정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첨단 기술 산업의 ‘남방한계선’으로 불리던 경기 기흥‧용인‧평택 라인을 깨고 반도체 산업의 지도가 서남권으로 넓어지는 흐름이다. 청년 인구 유출로 고심하던 호남권 지자체들은 이번 클러스터가 단순 제조 인력을 넘어 고연봉의 엔지니어와 연구원이 정착하는 ‘기술 중심 도시’로 지역을 탈바꿈시키고 국가 균형 발전에 이바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규모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도 크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관계자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약 71만 명의 고용 유발 효과와 1,627조 원의 생산 유발액이 전망되며, 기존 지역 산업 구조를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호남권이 가진 주요 경쟁력으로는 전력과 용수 공급의 잠재력이 꼽힌다. 최첨단 전공정 팹 1곳을 가동하는 데는 하루 평균 수십만 톤의 공업용수와 막대한 전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한다. 전력 측면에서 호남권은 전국 태양광 발전 설비의 약 40% 이상과 신안 해상풍력 단지 등 풍부한 재생에너지 발전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요구하는 ‘RE100(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 달성에 유리한 입지다. 용수 측면에서도 총저수량 4억 5,700만 톤의 주암댐과 섬진강 수계 등 호남권의 풍부한 수자원 인프라를 바탕으로 반도체 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우려와 난제도 함께 제기된다. 가장 먼저 정치적‧행정적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광주 군 공항의 임시 분산 배치를 둘러싼 제1전투비행단 기능 저하 우려, 주한미군 공여지 반환 협의 등 복잡한 행정적 절차가 변수로 작용한다. 타 지자체들의 견제와 여야 정치권의 예산 확보 과정도 난제로 꼽힌다. 가장 큰 우려는 인재 유치와 정주 여건의 한계다. 경기 남부(수원‧판교) 이남 지역으로의 근무를 기피하는 일명 ‘반도체 남방한계선’ 현상으로 인해 석박사급 고숙련 엔지니어와 연구진을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 교육‧문화‧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비해 열세인 상황에서 대기업 유치만으로 핵심 석박사급 인재들을 지역에 머물게 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수년간 국내 반도체 전문 인력 부족 규모가 8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초미세 공정과 AI 반도체 연구 인프라를 실제로 운용할 핵심 인력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클러스터 정상 가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전력망 넓히고 지역 간 협력해 한계 극복
앞서 지적된 인프라 구축의 불확실성과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 인력 확보의 한계라는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교육‧연구 기관이 다각적인 해법 마련에 나섰다. 전력과 용수 공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송배전망 확충 문제는 국가 차원의 전력망 정비계획과 연계해 해결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체제 아래 두 지역 간 초광역 연대를 통해 정주 여건 조성 및 인프라 분담에 관한 행정적 갈등을 풀어가겠다는 구상이다. 행정‧인프라적 해법과 더불어 인재 공급 체계 개편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따르면 설비 및 공정 엔지니어 등 약 2만 3천 명 규모의 전문 인력 양성 계획이 수립된 가운데, 기술 난도가 높은 최첨단 전공정 팹과 AI 반도체 연구를 담당할 전문 인력 수급은 과제로 남아 있다. 단순 제조 인력을 넘어 고부가가치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현장에 투입될 석박사급 연구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인 GIST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GIST는 그간 쌓아온 산학 협력 인프라와 성과를 바탕으로 실무형 인재 양성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해 6월 글로벌 반도체 설계 자산(IP) 기업인 Arm과 협력하여 5년간 1,400명의 실무 인력을 키우는 ‘GIST-Arm 스쿨’을 출범시켰으며, 삼성전자와의 협력으로 채용 연계형 반도체공학과를 운영하며 대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 경험을 축적해 왔다. 나아가 개별 대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광역 교육 연대 모델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현재 교육계와 산업계가 공동으로 추진 중인 ‘서울대-전남대-GIST-대기업(삼성‧SK) 연계 반도체 계약학과’ 설립안이 대표적이다. 지역 학생들이 광주에 머물면서도 우수 대학의 교수진 강의를 원격‧방문으로 수강하고, 대기업 연구소와 GIST의 첨단 인프라를 교차 활용해 학위를 취득하는 방식이다. 이에 더해 GIST, 전남대, KENTECH 등의 핵심 교육 자원을 통합하는 가칭 ‘호남 반도체 연합공대’ 체제 구축으로 기초과학부터 현장 공정 기술, 반도체 전력 에너지를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AI와 반도체의 융합이 핵심 과제다. 광주 클러스터에 들어설 생산 시설은 SK하이닉스의 데이터센터와 삼성전자의 국가 AI 컴퓨팅센터가 결합한 지능형 반도체 특화 단지로 기획됐다. GIST는 AI 대학원 역량과 반도체 연구 인프라를 접목해 차세대 신경망처리장치(NPU) 및 지능형 메모리(PIM) 반도체 설계‧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창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연구실의 성과를 대기업 팹으로 연결해 사업화하는 산학협력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임기철 총장은 “광주 반도체 팹은 한국과 세계 반도체 역사를 새로 쓸 기회”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호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성공적 안착은 인프라 조성과 함께 GIST 등 지역 거점 기관들의 인재‧기술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는 것에 달렸다. 오는 2030년 광주 군 공항 부지에서 첫 번째 반도체 칩이 성공적으로 양산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