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Steady State Approximation, 이산화 작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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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GIST 출신 SF 작가 이산화의 첫 장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가 재출간됐다. 한국 SF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지금, 그 중심에서 활동하는 이산화 작가를 만나봤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의 재출간 표지.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는 사이버 펑크 소설로 2018년 출간된 이산화 작가의 첫 장편이다. 새 표지와 수정된 원고로 재출간되었다.

작가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것저것 쓰고 있지만, SF를 메인으로 작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8년 SF 어워드 우수상을 수상했고 작년에는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로 장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회원이며 2대 운영이사직도 맡았었습니다.

 

첫 장편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가 많은 사랑을 받아 재출간됐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는 첫 장편이니만큼 제게 굉장히 뜻깊은 작품입니다. 특히,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으로 SF에 입문하게 됐다고 감상을 보내줘서 기뻤죠. 처음 <오류가 발생했습니다>가 출간된 것이 2018년인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한국 SF 시장이 많이 커졌습니다. 작가도 많아지고 독자도 많아지고. 그런데도 첫 작품을 기억해주시고 찾아주시니 감사한 일이죠.

 

말씀해주신 것처럼 한국 SF는 지난 몇 년 사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한국 SF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나라의 SF와 비교해서 한국 SF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작가마다 그리고 작품마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한국 SF가 나름대로 전성기를 맞은 것은 “한국어로 된, 한국 작가가 쓴, 한국인이 등장하고 한국을 배경으로 한 SF”를 드디어 출판 시장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서라고 생각해요. 한국 SF 작품이 그동안 계속 쌓여왔고, 이제 빛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SF의 전성기에 활동하고 계신 기분은 어떠실까요?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SF 작가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죠. 당시 SF 팬덤이 하던 농담은 “한국 SF는 작가와 팬을 합쳐서 500명뿐이다”라는 말이었어요. 한국은 SF의 불모지라는 이야기였죠. 그런 상황에서 쓰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작가들이 많았고, 그래서 시장이 커졌고, 계속 SF 작가로서 일할 수 있게 되었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그런 예상치 못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계속할 수 있게 된 SF 작가의 길,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소설은 중학교 때부터 계속 썼어요. 엄밀히 말하면 작가가 되고 싶다고 계속 생각해왔죠. 별개로 과학도 좋아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SF를 쓰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굳어진 건 GIST에 들어와서였어요. 들어와 보니 저보다 과학을 잘하는 사람이 엄청 많고, 세상엔 저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 중에 과학을 하는 사람은 드물 것 같더라고요. 그럼 그게 내가 더 잘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GIST에서의 경험이 작가 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일단 GIST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는 과학기술원이었고, 이시연 교수님의 수업에서 많은 자신감을 얻기도 했어요. 물론 문과를 갔으면 교양 수업에서 그렇게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적어도 과학을 하는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이걸 가장 잘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 때부터 꾸준히 썼고, 석사를 졸업할 때쯤에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죠. 학교 생활 중에는 철학이든 한국 문학이든 이것저것 쌓을 수 있는 지식들이 있었어요. 제가 하는 일은 남들이 신기해할 만한 소재를 모아야 하는 일이고, 그때 쌓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은 유용했죠.
GIST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나 지지해주셨던 교수님들까지, 전부 작가가 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 작품 중에는 연구자의 경험이 녹아든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확실히, 연구자들의 이야기는 제가 GIST는 학부에서 석사까지 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이야기죠. 연구자 생활을 하면서 예상했던 어려움과 예상치 못한 어려움 모두를 겪었어요. 이게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좌절도. 그렇기에 미디어에 보이는 과학자가 아닌 실제 과학자, 진짜 연구현장을 봤기에 쓸 수 있던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사실 작가라는 존재는 모든 경험을 소재로 쓸 수 있어요.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쓰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소재로 삼을 수 있죠. 제게 있어서는 연구소 생활이나 과학도로서의 삶이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첫 단편이 <증명된 사실>인 것으로 압니다. 비하인드가 있을까요?

말하자면 제 초기 단편 대표작이죠. <증명된 사실>의 단편집 후기에서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 원래는 훨씬 짧은 단편이었어요. 저한테는 대학 때부터 사귀어 온 애인이 있는데, 그 단편을 읽더니 이건 “아이디어가 굉장히 무섭다”라며 확장해서 쓸 것을 권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좀 더 발전시켰고, 그 결과 작품이 잘 되었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작가 활동 계획이 있으실까요?

저는 항상 작가로서의 결심 같은 것을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로 해둬요. 지금은 굉장히 오랫동안 “Steady State Approximation”으로 유지되고 있어요. 반응이 이루어지는 동안 중간생성물의 농도가 일정하다고 가정한다는 의미의 화학 용어죠.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일이 일어나겠지만 저는 항상 이대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꾸준히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하던 대로 말이죠.
지금 작가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편이에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꿈을 이룬 셈이죠. 그러니 앞으로도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스트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보단 덜 방황할 거라고 생각해요. 연구의 길을 갈 친구들은 알아서 잘할 테니, 그냥 가끔은 소설도 읽으라고 하고 싶네요.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다른 길이 없는 게 아니에요. 다른 길을 간다고 지금까지 배우고 노력한 것이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학교에선 주변에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만 보여서 다른 길이 안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나와 보면 정말 다양한 길이 있거든요. 그러니 미래를 너무 일찍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네요. 지금껏 해 온 것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지우지는 말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