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 작가 한강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한강은 노벨상 수상 후 첫 공식 석상에서 “많은 분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작가 한강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시로 등단했고, 2005년 단편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이어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국내 저명한 문학상을 휩쓸며 국내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2016년 5월 《채식주의자》(2007)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지난해 11월 프랑스 메디치 외국 문학상, 올 3월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메디치상 심사위원단은 한강을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한강의 작품 세계
한림원은 한강을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생애의 유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작가”라고 소개했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육체와 영혼, 삶과 죽음의 간극을 고유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장을 통해 현대 산문의 개척자가 됐다”라고 평가했다. 한강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룬 대표적인 두 작품은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소년이 온다》(2014)는 5월의 광주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숨진 동호의 친구와 끝내 목숨을 잃은 동호,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림원은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통해 ‘증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한다며 “신원 미상의 주검, 묻힐 수 없는 주검을 보며 ‘안티고네’의 기본 모티브를 떠올리게 된다”라고 소개했다. 노벨문학상 위원회 안나카림 팔름 위원은 이날 발표에서 “《소년이 온다》는 인간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얽혀 있으며, 그 트라우마가 어떻게 여러 세대에 걸쳐 인구 집단에 남아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라며 한 작가의 매우 부드럽고 정확한 산문은 그 자체로 잔인한 권력의 소음에 대항하는 힘이 됐다고 평가했다.
《작별하지 않는다》(2021)는 제주 4.3 학살 사건 전반을 다룬 이야기다. 한림원은 “응축된 듯 정확한 이미지로 현재에 대한 과거의 힘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집단적 망각 상태를 드러내고 트라우마를 공동 예술 프로젝트로 전환하려는 친구들의 끈질긴 시도를 추적”한다고 언급했다.
한강과 광주의 봄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 되는 광주, 전남 지역이 들썩였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기적이다. 문학과 예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한강 작가가 가장 고통받은 존재들의 고통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섬세하게 귀 기울여 온 것을 세계 문학계가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제 5.18도 함께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아파하는 사건이 됐다”라고 말했다.
5.18 희생자 유가족들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난 10월 11일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 군의 어머니 김길자(84) 씨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에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5.18 막내 시민군’으로 불리는 문 군은 초등학교 동창 양창근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 시위에 참여했다. 문 군은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옛 전남도청 진압 작전 때 친구 안종필 군과 함께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한 작가가 소설을 쓰기 전 만나러 온 적이 있다”라며 “그동안 5.18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광주가 노력했지만 큰 성과가 없던 상황에서 한 작가가 크게 도움을 주니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라고 심정을 털어놨다.
오월어머니집 회원들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10월 16일 오월어머니집 회원 10여 명은 한강에게 응원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전달하기로 했다. 5.18 당시 자녀와 배우자, 형제자매 등을 잃은 회원들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강의 작품이 전 세계에 알려지며 5.18이 알려질 수 있어 기쁘다”라며 “한 작가나 작품 관계자들과 협의해 5.18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소년이 온다》 속 문장처럼 광주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재조명되기를, 오월의 정신이 폄하되거나 혐오 받지 않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