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육성 없이 노벨상 꿈도 꾸지 말라

0
1447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교수가 노벨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만 20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일본이 ‘과학 강국’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과학 분야에서 단 한 번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우리나라로서는 일본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은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한 지 겨우 몇십 여년에 불과하다. 국내 대부분의 국립대학들은 광복 이후에야 세워졌고, 그마저도 시작은 농학이나 상업이었다. 각 대학에 이공계 대학원이 설립된 것은 최소 10여 년 이후라고 생각하면, 또 그 대학원들이 과학보다는 산업기술 위주의 교육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이 순수과학을 제대로 연구하기 시작한 지는 4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연구가 바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 온 교수들이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에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또 그들이 ‘맨손에 막대기’격으로 연구를 시작하여 제대로 갖춰진 환경에서 연구하게 된 것은 이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일 것이다. 결국 한국이 과학을 제대로 된 조건에서 연구를 시작한 지는 2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과학계에 노벨상을 바라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다.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유럽은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연구했고, 이웃 나라 일본의 근현대과학 역사도 100여 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즉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누적 투자량이 소위 기초과학 강국이라 불리는 유럽, 일본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 단순한 투자금은 꽤 많을지 몰라도 시간, 시행착오, 시스템 등은 그들과 비교하기엔 부끄러울 수준이다.

우리 과학계의 학풍 역시 노벨상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노벨상의 지향점인 기초과학과는 거리가 먼 공학 위주의 학풍을 가지고 있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한국은 제조해서 수출해야만 먹고 살 수 있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공학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합리적인 방향이다. 이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공학은 기초과학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성과가 빨리 나는 분야이면서 그 결과가 실용성을 보장해준다. ‘빨리빨리’라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은 순식간에 공학/제조업 강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반면 기초과학의 대부분은 매우 오랫동안 꾸준히 시간, 돈, 노력을 투자해야만 하고 인내를 필요로 하는데, 이는 어쩌면 밑 빠진 독일 수 있다. 그 결과가 실용성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대다수의 결과는 그 잠재력을 기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빨리빨리’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한국은 이를 기다릴 여유나 의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이 여전히 공학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는 아직 존재한다. 하지만 선진국이라 부르기 애매한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려면, 선진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할 만큼의 잠재성장률을 확보하려면 탄탄한 기초과학이 기반이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혼조 교수가 “일본의 기초과학 분야 젊은이들이 힘을 얻기 바란다”며 밝힌 몇 가지 소회는 노벨과학상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란 점을 일깨워준다. “불가능은 없으니 반드시 길이 있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해 왔다”, “시대를 바꾸는 연구를 하려면 호기심, 용기, 도전, 확신, 집중, 지속이 필요하다”, “과학은 다수결이 아니다. 기존 개념을 깨뜨리는 소수파 속에서 새로운 성과가 나온다” 이런 연구 문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졌을 리 없다. 계속된 관심과 투자가 지속된다면 가까운 미래까지는 아니지만 먼 미래에는 한국도 노벨상 수상자를 간혹 배출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Previous article학교와 학생 사이의 갈등 조정
Next article[만평] 남북 정상회담

[편집장] 박세현 (17, 기초교육학부)
경력 :
2017년 2학기 입사
2018년 1학기 정기자
2018년 2학기 ~ 편집장
주요기사 :
[18.04.05]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봐, 별이 된 그가 있을거야
[18.07.23] 대학기숙사 퇴사 제도 변경⋯ 미이행 시 보증금 환수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