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언론 위기 원인 파악, 새로운 돌파구 고안해야
지난해 11월 22일 더불어민주당 정을호 의원(이하 정 의원)이 대표로 대학언론법을 재발의했다. 호외 출간에 불이익을 받았던 <카이스트신문>, 3월 28일자로 교지편집비 제공이 중단된 동덕여자대학교 자치 언론 등 대학언론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대학언론법 재발의 배경이 된 대학언론 위기를 살펴봤다.
발행 중단, 기사 검열, 지원비 삭감··· 이어진 대학언론 탄압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22년 사이 인지된 대학언론 탄압 사례는 38건으로 ▲지면 발행·배포 중단(19건) ▲기사 삭제·검열(14건) ▲기자 해임·징계(11건) ▲재정보조 중단(5건) 등이다. 지난 2021년 11월 숭실대학교 학보사 <숭대시보>는 코로나19 사태 무리한 대면 수업 추진과 방역 대책, 의문스러운 성적평가 방식 등 대학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자 학교는 <숭대시보> 기자를 전원 해임하고 그해 11월 22일 발행 예정이던 종이신문의 배포를 중단시켰다. 이후 학생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학교는 총장 간담회에서 기자 전원 해임 결정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복직 이후에도 편집권 침해가 계속돼 숭대시보는 ▲대학언론인네트워크 ▲숭실대 총학생회 ▲서울권 대학 언론연합회와 함께 ‘언론탄압대응TF’를 구성해 대학언론 탄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언론 탄압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9일 <카이스트신문>은 12.3 사태와 관련된 호외 출간에 불이익을 받았다. <카이스트신문>은 호외를 출간하며 “본 신문의 발행은 학교 본부와 무관하며, 신문의 내용은 학교 본부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공지를 냈다. 카이스트 측은 인쇄 예산을 제공할 수 없으며 학교 입장과 무관함을 밝혀달라고 요구했으며 이에 학보사 측은 전·현직 기자단 총 58명의 사비를 들여 총 4천 부의 신문을 인쇄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28일에는 동덕여대 교지편집위원회 <목화>가 교지편집비를 지원받지 못하게 되면서 존속이 위협받았다. <목화>는 동덕여대 이사장 행적과 학교의 비민주적 공학전환 추진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러자 학교는 교지편집비를 더는 지급하지 않을 것이지만 지면 발행 및 배포에 대한 승인 제도는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은 31일 성명을 내고 이어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5개 대학 지치언론도 “동덕여대는 학내 언론탄압을 멈춰라”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처럼 대학언론은 학생의 알 권리와 건강한 담론의 장으로서 학내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역할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압박에 노출돼있다. 대학언론인들은 신문의 포 및 발행 과정에서 학교의 허가를 받는 것을 넘어 편집권을 침해받기도 하고, 인건비 및 인력 부족으로 업무 과중에 시달린다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대학언론 자유·독립, 법적 근거 마련” 대학언론법 재발의
사실 대학언론법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방송법과 신문법이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라는 규정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성문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학언론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법적 장치는 부재하다. 따라서 대학언론의 자유 및 독립 보장과 지원 유무는 모두 대학 본부의 자율에 맡겨져 있었다. 이에 대학언론을 위한 법적 근거 필요성이 대두됐고, 2022년 윤영덕 의원이 처음으로 대학언론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문화한 고등교육법 개정안, 통칭 대학언론법을 발의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고 이번 발의는 거기서 수정을 거쳐 재발의됐다. 정 의원은 “언론의 자유는 헌법 제21조에 명시돼 있는 기본권”이며 대학언론마저 학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재발의 사유를 밝혔다.
또한 지난 4월 11일에는 정 의원 주최로 ‘대학언론의 위기 해결을 위한 대학언론법 입법 간담회’가 국회의원회관 제6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이번 간담회에는 교육부 대학규제혁신추진단과 국회 교육위원회 입법조사관을 비롯해 주간교수, 간사, 전·현직 학생기자,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등 전국 각지의 대학언론인 약 30명이 참석했다. 정 의원은 개회사에서 “대학언론인들이 겪는 심각한 재정 부담과 반복되는 편집권 침해 문제에 대해 교육부가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제도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윤희각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이하 윤 교수)는 ‘한미 대학신문의 편집권 실태’를 주제로 발표하며, “대학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서 대학언론 전반에 대한 현황 파악 목적의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전 세계 대학언론의 롤 모델이던 미국도 구독자 이탈과 광고 및 기부금 수익 악화로 생존의 고민에 빠지고 있다며 “대학언론은 ‘오래된 학생 신문’에서 ‘디지털 미디어 혁신의 캠퍼스 센터’로 전환돼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원지현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의장은 “현재 대부분의 대학언론이 법적·제도적 기반 없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학내 권력 감시와 공론장 형성이라는 본연 책무 수행이 크게 제약받고 있다”며 “38건에 달하는 언론 탄압 사례는 대학언론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각 대학언론인들이 참여해 대학언론 위기 실태와 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박호빈 서울권대학언론연홥회 회장 및 건대신문 편집국장은 대학언론의 위기는 복합적이지만 그 중심엔 독립성의 부재가 있다며 대학언론법 제정이 대학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강화할 것이라 말했다. 한편 실질적 운영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와 후속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 회장은 독립적 재정 운영 기구 필요성과 대학언론 구성원 지원 체계 제도화를 통한 전문성을 강화 및 인력난 해소를 강조했다. 김봄이 전 경기대신문 편집국장도 대학언론법이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예산 지원 항목이 필요하며 법 위반에 따른 처벌 방안과 탄압 조사 단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봉건우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은 법안 통과 시 대학언론이 학생자치와 학교 조직 어느 곳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보다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밖에도 법률안 제작에 기여한 차종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자문위원의 대학언론 위기 극복을 위한 국회 토론회 필요성 제기 등 다양한 의견이 모였다.
정 의원에 따르면 대학언론법은 현재 교육위원회 법안소위에 회부돼있고 간사실과 협의해 안건 상정 일정이 조율 중에 있다. 정 의원은 법안이 신속하고 원활하게 심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대학언론법은 당위성이 충분한 법안이므로 입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무관심과 악순환, 대학언론은 어디로 가는가
한편 대학언론 위기는 편집권 침해 등 자유와 독립 침해에만 있지 않다. 종이 신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62호에서 진행된 <지스트신문> 인지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는 126명, 그중에서도 <지스트신문>을 읽어본 적 있는 사람의 비율은 64.3%다. <지스트신문>뿐 아니라 대부분 대학언론의 사정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 대학언론 중 근 3년내에 인지도 조사를 진행한 사례를 일부 조사했다. 그 결과 <전대신문>이 지난 2024년 6월 인식조사 분석에선 응답자 42.3%가 학내 신문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단대신문>은 2022년도 인지도 조사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응답자가 17명에 불과해 제대로 된 설문조사 결과를 도출할 수 없었다. <건대신문>의 2024년 인지도 조사에서도 신문을 읽어본 적 없는 학생이 응답자의 43.6%였고 학생들은 ‘미흡한 인지도’를 문제로 꼽기도 했다. 한편, 인지도 조사 외에도 많은 기자들이 대학언론 오피니언란을 통해 대학언론에 대한 무관심과 대학언론 위기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었다.
대학신문이 전하는 소식에 구성원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중요한 담론도 소리 없이 흘러가기 마련이고, 자연히 취재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객관적이고 중요한 정보를 전하고 대학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한다는 대학언론의 힘은 사실상 독자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허가 하에 신문을 발행하는 이상 대학언론은 대학에 비판적인 기사나 민감한 주제에 대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독자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대학언론의 행동력은 위축되고, 이는 신문의 질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독자의 무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디지털 시대, 종이 신문 자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지금 이러한 악순환까지 반복되고 있다. 대학언론 위기 극복을 위해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와 같은 단체가 각 대학언론을 연결해 소식을 공유하고 대학언론법 재발의에 힘쓰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 많은 대학언론인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추후 대학언론법이 통과돼 자유와 독립이 법적으로 보장되더라도, 이런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대학언론 위기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고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