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IST 화학과 박찬호 교수와 신소재공학과 유승준 교수 공동연구팀의 연구 성과가 국제 학술지 <Small>에 게재됐다. 전극과 전해질의 계면 상호작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공성 탄소 전극을 합성해 수계 슈퍼커패시터의 에너지 성능을 극대화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계 슈퍼커패시터의 한계, 이중 메커니즘으로 넘다
슈퍼커패시터는 이차전지의 한 종류로서 기존의 커패시터보다 훨씬 큰 용량을 가진 에너지 저장 장치다. 용량이 크면 축전량이 크다. 슈퍼커패시터는 기존의 커패시터와 배터리의 중간적 성질을 가지고, 전하의 정전기 현상을 이용해 전기 이중층을 통해 이온층에 전기를 저장한다. 또한 전해액에 임의로 흩어진 이온들이 충전 시 서로 다른 극성을 띠는 전극에 나란히 배열한다.
슈퍼커패시터는 빠른 충·방전 속도와 긴 수명이 장점이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아 실질적인 에너지 저장 장치로의 활용에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장점을 유지하며 에너지 밀도에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더 폭넓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기존 리튬이온배터리는 유기계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화성, 환경 유해성 등 여러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문제가 존재한다. 반면 수계 전해질은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으나, 물 분해 반응으로 인해 작동 전압 창이 좁은 한계를 가지고 있어 높은 에너지 밀도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에 현재까지 수계 시스템을 기반으로 100 Wh/kg 이상의 에너지 밀도를 실현한 커패시터는 극히 드물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수계 슈퍼커패시터의 에너지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특히 에너지 밀도 측면에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수계 커패시터의 전해질에 레독스(산화환원) 활성 물질을 도입하여 전극 표면에서 전기 이중층 형성과 동시에 레독스 반응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한 레독스 슈퍼커패시터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중 메커니즘을 통해 슈퍼커패시터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에너지 밀도를 효과적으로 향상했다. 그러나 레독스 슈퍼커패시터의 성능은 전해질 내 레독스 활성 물질이 전극과 얼마나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하고 흡착되는가에 크게 의존한다. 연구팀이 음극액으로 사용한 펜틸 바이올로젠은 양극액으로 사용한 브로마이드에 비해 분자 크기가 약 10배 이상 커서 같은 전극을 사용하더라도 양극과 음극 간 흡착량에 차이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흡착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음극의 특성이 전체 에너지 성능을 제한하는 병목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 기술적인 한계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서는 음극액으로 사용한 펜틸 바이올로젠의 흡착량을 극대화하면서 전극의 전체 비표면적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펜틸 바이올로젠의 경우 분자 크기가 최대 2 nm에 이르기에 약 2 nm 이하의 크기를 가지는 마이크로포어에는 효과적으로 흡착되기 어렵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2~50nm 크기의 메조포어가 확보돼야 한다. 동시에 전극의 전하 저장 용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넓은 비표면적이 필요하며 이는 마이크로포어 양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따라서 메조포어와 마이크로포어가 균형 있게 조화된 계층적 다공성 탄소 구조가 필요하다. 이 구조는 레독스 활성 물질의 흡착 효율을 높이고, 전극의 에너지 저장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요소를 고려한 다공성 구조의 최적 설계를 통해 전극과 레독스 활성 물질 간 상호작용을 최적화했고, 결과적으로 시스템 전반의 에너지 성능이 향상됐다.
메조·마이크로포어 조화,고성능 전극 구조 구현
기존의 기공 제어 방식은 메조포어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로포어의 손실이 불가피해 전체 비표면적이 감소하거나 구조적 균형이 무너지는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연구팀이 사용한 전구체 설계 전략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접근으로, 구조 형성 과정에서 마이크로포어의 손실을 30% 수준으로 최소화하면서 총 기공 부피 중 약 70% 수준의 메조포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전구체 내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탄소 구조에 중요한 기공 구조적 변화를 유도하는 열 산화 전처리는 활성화 효과에 변화를 불러온다. 열 산화를 통해 탄소 표면의 일부가 산화돼 기존에 없던 메조포어가 부분적으로 형성되고, 이는 전체 구조를 더 열적으로 안정하게 만들어 고온의 활성화 조건에서도 구조 붕괴 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열 산화로 미리 형성된 메조포어는 이후 도입되는 활성화제가 내부로 더 쉽게 침투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하므로 활성화제의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높은 효율의 활성화를 유도한다. 이러한 전략은 활성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과도한 마이크로포어 손실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고, 높은 비표면적과 메조포어의 구조가 조화롭게 유지된 고성능 탄소 소재의 합성을 가능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연구팀은 125 Wh/kg의 에너지 밀도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에너지 밀도 향상의 핵심은 각 레독스 활성 물질의 물리적 특성에 맞춰 전극 구조를 정밀하게 설계하고, 특히 분자 크기가 큰 펜틸 바이올로젠의 전극 내 활용도를 극대화한 데 있다. 이를 통해 음극에서의 반응 기여도를 효과적으로 끌어올리고 양극과 음극 간의 반응 균형 또한 적절히 맞춤으로써 전체 시스템의 에너지 저장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기공 형성 메커니즘 규명, 분석 기술로 돌파구 찾아
연구팀은 탄소의 활성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다양한 온도에서 전구체와 활성화제의 구조 변화를 추적하는 과정이 이번 연구에서 가장 어려웠다고 밝혔다. 또한 열 산화 전처리 유무에 따라 형성되는 KOCN과 KCN의 생성 시점과 반응 경로가 달라 마이크로포어를 유지하며 메조포어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줬기 때문에 이를 XRD, TGA, FT-IR 등을 통해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열 산화 처리만으로 전구체에 메조포어 형성이 유도되고, 활성화 반응이 일어나는 계면까지 변화되는 현상을 통해 전구체의 물리적·화학적 상태가 이후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어 실험 설계의 방향을 재고했다고 언급했다.
질소 도핑 없이도 125Wh/kg 달성, 구조 설계의 힘
이번 연구에서는 0.1 A/g의 낮은 전류밀도 조건에서 125Wh/kg에 달하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달성했다. 실제 에너지 저장 장치로의 적용을 고려하면 고전류 조건에서도 유사한 수준의 에너지 성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전극-전해질 시스템의 개발이 과제다.
이 연구에서의 질소 도핑은 의도적으로 도입한 기능이 아닌 멜라민 기반 전구체의 열처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다. 사용된 전해질이 중성 조건이기에 질소 도핑에 의한 전기화학적 성능 향상 효과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별도의 표면 기능화 기법이나 이중 도핑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다공성 탄소 구조와 정밀한 전극 구조 설계가 에너지 밀도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다.
ESS부터 연료전지까지, 응용 확장성 입증
이 연구에서 사용된 기술은 에너지 저장 장치(ESS)에 가장 먼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제안한 전략은 단순히 계층적 다공성 탄소 구조 구현에 그치지 않고, 기공 구조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확장할 수 있다. 연구팀은 연료전지 촉매 지지체나 배터리 음극재 등, 이온 확산과 반응성이 중요한 다양한 전기화학 시스템에 적용하고자 한다고 덧붙이며 이번 연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