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베누에서 생명 기원의 실마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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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 베누에서 생명 기원의 실마리를 찾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생명은 지구에서만 탄생했을까, 아니면 우주 어딘가에도 생명의 씨앗이 있을까? 생명 기원을 둘러싼 이 오랜 질문에 대한 실말가 최근 소행성 베누에서 생명체의 기초를 이루는 물질들이 발견되면서 드러났다.

지난 1월 29일, NASA의 오시리스-렉스(OSIRIS-REx) 탐사선이 소행성 베누(101955 Bennu)에서 채취한 샘플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Nature Astronomy』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오염되지 않은 원시 샘플을 통해 태양계 초기의 화학적 환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탐색했고 생명 기원과 관련된 중요한 유기 분자들을 발견했다. 이번 연구는 태양계 초기 환경에서 생명의 기초 성분 형성 과정을 밝힌 것은 물론, 생명의 씨앗이 외계에서 지구로 전해졌을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

 

태양계 초기의 비밀을 간직한 소행성, 베누

NASA의 오시리스-렉스 미션은 태양계 형성 과정과 생명 기원을 밝히기 위해 2016년에 시작됐다. 이 탐사선은 2020년 10월 20일 소행성 베누의 표면에서 샘플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으며, 2023년 9월 24일 약 121.6g의 샘플을 지구로 안전하게 회수했다. 베누는 탄소질 콘드라이트와 성분이 비슷한 B형 소행성으로, 태양계 초기 물질을 잘 보존하고 있어 생명 기원 연구에 중요한 대상이다. 과거에도 탄소질 콘드라이트 운석에서 다양한 유기물이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기존 운석이 지구 대기를 통과하면서 오염될 가능성이 컸던 것과 달리, 베누 샘플은 철저하게 보호된 상태에서 채취되었기 때문에 지구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상태에서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베누 샘플은 태양계 초기, 암모니아 기반 화학 반응을 통해 생명체의 근본적 구성 요소가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도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기존 운석이나 소행성 류구(Ryugu) 샘플보다 풍부한 탄소와 질소를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생체 분자 합성에 필수적인 암모니아(NH₃)는 류구 샘플보다 75배나 많았다. 또한 연구진은 일반적으로 태양계 외곽의 차가운 환경에서 형성되는 경향이 있는 질소 동위원소(¹⁵N)가 샘플 내 높은 농도로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베누의 유기물이 태양계 초기 원시 행성계 원반의 얼음과 먼지 속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베누에서 검출된 생명의 구성 요소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베누 샘플에서 DNA와 RNA를 구성하는 5가지 핵염기(A, G, C, T, U)가 모두 검출됐다는 것이다. 핵염기는 지구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DNA와 RNA의 기본 단위이며, 생명의 진화와 증식에 필수적인 요소다. 과거 탄소질 콘드라이트 운석에서도 일부 핵염기가 검출된 바 있지만, 베누 샘플처럼 오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순수한 상태에서 모든 종류의 핵염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를 통해 핵염기가 지구뿐 아니라 우주에서도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지구 생명의 기초 물질이 태양계 외곽에서 형성된 후 운석이나 소행성을 통해 원시 지구로 전달됐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베누 샘플에서 발견된 유기물들은 단순한 탄화수소가 아니라,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 화학적 특성을 지녔다. 특히 연구진은 DNA와 RNA를 구성하는 뉴클레오타이드와 관련된 N-헤테로고리 화합물(Nitrogen-containing heterocyclic compounds, NHCs)이 다량 포함됐다고 밝혔다. NHCs는 다양한 생체 분자들과 연결된 물질이다. 따라서 이 발견은 베누에서 발견된 유기물들이 생명의 기초 성분을 형성하고 복잡한 분자로 진화할 수 있는 환경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저온 환경에서 형성된 유기물, 그리고 물과의 상호작용 가능성

질소 동위원소와 더불어 연구진은 탄소-질소(C-N) 결합을 포함하는 유기 분자들의 구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높은 온도가 아닌 저온 환경에서 구조가 형성됐음을 암시하는 화학적 특징을 발견했다. 이는 생명에 필수적인 유기물이 태양계 형성 초기의 극저온 환경에서도 자연적으로 생성됐을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또한, 연구팀은 베누의 모천체가 한때 물이 존재하는 환경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는 샘플에 포함된 산소와 수소의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한 결과, 그 패턴이 태양계 초기 원시 혜성에서 발견되는 패턴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베누 샘플에서 측정된 δD*값은 혜성과 같이 태양계 외곽에서 형성된 천체에서 자주 관찰되는 높은 수준을 보였으며, δ¹⁸O** 값 또한 혜성 기원의 물질과 유사한 범위에 속했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액체 상태의 물에서 형성되는 광물인 탄산염(carbonates)도 확인돼 물의 존재 가능성을 더욱 뒷받침했다.

 

아미노산의 라세믹 상태, 생명체의 입체화학적 기원을 밝히다

연구진이 샘플에서 확인한 총 33종의 아미노산은 좌우대칭인 라세믹(racemic) 상태였다. 이는 L형(왼손잡이) 아미노산만을 사용하는 지구 생명체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베누에서 발견된 아미노산은 L형과 D형(오른손잡이)의 비율이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지구에 도착한 외계 유기물이 이미 L형 아미노산을 선호하는 특성을 가졌고, 이것이 지구 생명의 방향성을 결정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아미노산의 방향성이 지구 환경에서 선택적으로 형성됐을 가능성을 더욱 강하게 시사한다.

예컨대, 지구 환경에서의 광학적 활성 촉매나 편광된 자외선과 같은 특정 화학적 조건이 L형 아미노산의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오랜 우주 환경을 견딘 유기물, PAHs의 발견

연구진은 베누 샘플에서 풍부한 폴리사이클릭 방향족 탄화수소(PAHs)를 확인했다. PAHs는 탄소가 풍부한 물질이 높은 에너지를 가진 우주 환경에서 형성된 후, 오랜 기간 우주의 강력한 방사선에 노출됐음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된 유기 분자다.

이러한 PAHs의 발견은 우주 공간의 가혹한 조건에서도 생명의 기초가 되는 복잡한 유기 분자가 파괴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보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베누와 같은 소행성이 단지 원시 유기물을 운반하는 ‘배달부’ 역할에 그치지 않고, 유기물이 외계에서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진화할 상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미래 연구 방향, 생명의 기원을 밝힐 다음 단계

이번 연구를 통해 지구 생명의 기초 물질이 태양에서 먼 차가운 태양계 외곽에서 형성됐으며, 물과 상호작용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베누와 같은 소행성들이 질소가 풍부한 휘발성 물질과 암모니아, 아미노산, 뉴클레오베이스, 인산염 등 생명 형성에 필수적인 화합물을 지구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냈다.

NASA는 베누 샘플의 추가 분석뿐 아니라 실험실 모의 실험, 향후 혜성 및 왜행성 세레스(Ceres) 탐사를 통해 태양계 초기 유기물의 기원과 진화를 더 깊이 연구할 계획이다. 이러한 연구는 생명의 필수 분자가 소행성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생명의 기원이 지구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욱 뒷받침할 것이다.

태양계 초기 환경과 생명 기원의 비밀을 밝히는 여정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베누 샘플은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며, 유기 분자의 기원과 형성 과정을 깊이 분석하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도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δD(Deuterium to Hydrogen Ratio): 수소 동위원소 비율.
Deuterium(기호: D 또는 ²H): 중수소. 일반적인 수소(¹H) 원자는 양성자(proton) 1개와 전자(electron) 1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수소는 여기에 중성자(neutron) 1개가 추가된 형태. 수소(H)의 동위원소 중 하나.

** δ¹⁸O(Oxygen-18 to Oxygen-16 Ratio): 산소 동위원소 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