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2025년을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IYQ)’로 지정하고, 지난 6월 9-14일에 독일 헬골란트에서 국제기념학회를 개최했다. 1925년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을 발표하며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운 지 100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양자 이론은 양자컴퓨터, 암호통신 등으로 현실을 재편하는 기술로 확장되고 있다. GIST를 비롯한 전 세계 과학계가 이 기념비적인 전환점을 함께 맞이하고 있다.
양자역학의 탄생: 직관을 부정한 물리학
20세기 초 물리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고전역학은 일상 세계를 정밀하게 설명했지만, 원자 내부와 같은 미시 세계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흑체복사의 자외선 파탄, 수소 원자의 선 스펙트럼, 광전효과 등 기존 고전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잇따르자, 물리학자들은 기존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00년 막스 플랑크는 흑체복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가 불연속 단위(양자 quantum)로 방출된다고 가정했다. 이 가설에서 제안된 공식 E=hν과 양자라는 개념은 양자역학의 출발점이 됐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바탕으로 광전효과를 설명해 빛의 입자성을 입증했고, 닐스 보어는 전자 궤도를 양자화 시켜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고전 역학의 한계를 임시로 메우는 가설에 가까웠다.
새로운 체계가 절실한 가운데 1925년 여름, 독일의 젊은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북해의 외딴 섬 헬골란트에서 돌파구를 찾아냈다. 그는 전통적인 궤도 개념을 버리고 오직 관측 가능한 물리량만을 계산하는 체계를 고안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위치나 속도가 아닌 분광선의 진폭과 주파수를 행렬 형식으로 배열했고, 이를 바탕으로 ‘행렬역학’을 수립했다. 같은 해(1925년) 《Zeitschrift für Physik》지에 “운동학적 및 역학적 관계의 양자론적 재해석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고, 이는 양자역학의 기틀을 세운 논문으로 남았다. 이후 막스 보른과 파스쿠알 요르단이 이를 수학적으로 정교화했고, 이듬해에는 에르빈 슈뢰딩거가 파동방정식을 발표하며 또 하나의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이후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 수학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현대 양자역학의 틀이 완성됐다.
기술이 된 양자
양자역학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스마트폰, 컴퓨터, 의료 영상 장비 등 다양한 기술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양자역학을 활용해 개발됐다. 특히, 트랜지스터의 작동 원리는 양자역학적 터널링 현상과 에너지 띠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도 양자역학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자기공명영상(MRI)은 핵스핀의 상태 전이를 유도하고, 그 반응을 측정해 인체 내부를 비침습적으로 영상화하는 기술로, 양자역학 없이는 구현이 불가능하다.한 때 수식으로만 존재했던 양자역학은 이제 다양한 장비와 제품 속 기술로 구현되어 현대인의 일상에 깊이 자리잡았다.
양자역학이 탄생한지 100년이 지난 올해, 2025년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다. 유엔은 양자역학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양자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자했다. 이는 양자역학이 단순한 이론을 넘어, 현대 과학기술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양자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전 세계적으로 인식하고, 관련 연구와 교육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양자의 미래
지난 100년의 시간이 양자역학의 이론적 토대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응용하느냐가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 과제다. 그 응용은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인류 사회 전체의 구조를 바꿔놓을 만큼 혁명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대표적으로 양자컴퓨터는 고전 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병렬 연산 능력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 신소재 탐색, 기후 변화 예측, 금융 모델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력한 계산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글, IBM, 인텔, 리게티 등은 수십~수백 큐비트 규모의 양자 칩 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며, 특히 구글은 105큐비트 ‘윌로우(Willow)’ 칩을 공개하며 하드웨어 상의 장벽을 넘어가고 있다. 양자암호 또한 정보 보안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기술로 평가받는다. 양자 얽힘과 측정 불가능성이라는 양자역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이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통신 체계를 구현할 수 있으며, 이미 국가 안보, 금융, 우주 통신 등 민감한 영역에서 시범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한국 역시 양자암호 전용 위성과 지상 인프라를 개발하며 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양자시뮬레이션은 고전 컴퓨터로는 처리 불가능한 복잡한 양자계를 실제 양자시스템으로 모사하는 기술이다. 이는 재료과학, 생명과학, 에너지공학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단백질 접힘 문제처럼 생체 분자의 정밀한 동역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 세 분야 외에도 양자기술이 인공지능, 기후 분석, 국가 인프라 보호, 우주 탐사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되어 ‘양자+X’ 융합 기술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양자생물학은 광합성, 후각, 철새의 자기장 인식 등 생명현상의 일부가 양자역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융합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양자기술은 이미 과학을 넘어 산업, 사회, 심지어 생명 현상까지 영향을 미치며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규정한다. 유엔은 “양자과학은 미래 인류의 공동 자산”이라며, 국제적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양자역학의 해
양자역학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는 다양한 기념 행사와 학술 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았던 행사는 지난 6월 9-14일 독일 헬골란트에서 열렸던 국제 양자 학술 워크숍이다. 1925년 여름, 꽃가루 알레르기를 피해 헬골란트 섬에 머물던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을 완성한 바로 그 장소에서 열린 이 학회는 미국 공군·육군 연구소와 독일 연구재단(DFG)이 후원하며 학문적 상징성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물리학자들은 이 자리에서 지난 100년의 성과를 되짚고, 다음 세기의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내 움직임도 분주하다. 한국연구재단과 KIST, IBS 등 주요 연구기관은 IYQ 기념 심포지엄을 준비 중이며,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 체험전시도 전국 단위로 확대되고 있다. 온라인으로는 IYQ 공식 웹포털(https://www.iyq2025.org)을 통해 전 세계 행사 일정과 콘텐츠가 공유된다.
GIST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하여, 5월 한 달간 매주 금요일, GIST는 ‘Quantum Festival’을 개최하여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양자역학의 기초 강연, 양자기술 체험 부스, 퀴즈 스탬프 이벤트 등을 진행했다. 단순한 기념을 넘어서, 양자과학이 미래 세대를 위한 공공 지식으로 확산시키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