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특집기획- 신고립주의 미국, 앞으로의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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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

미국 45대 대선 트럼프 당선 특집기획

신고립주의 미국, 앞으로의 세계는

“트럼프임에도 당선되었다”

“다들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11월 22일 지스트대학 박상섭 교수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트럼프에 관해 이야기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대선 당선에 대해 근대국가와 국제관계에 대한 전문가인 지스트대학 기초교육학부 박상섭(국제정치학) 교수를 만나봤다. 박상섭 교수와의 대면 인터뷰를 한국개발연구원(KDI) 겸임연구위원으로도 있는 지스트대학 기초교육학부 김희삼(경제학)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와 합쳐 구성했다.

-45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의외의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는데,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상섭(이하 박): In spite of Himself, ‘트럼프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트럼프임에도’ 당선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트럼프라는 후보자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미국 대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탈세 의혹과 과거의 여러 개인적인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었다. 당선이유가 후보자의 매력보다는 미국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에 있지 않나 살펴봐야 한다.

김희삼(이하 김): 기득권층이 몰랐던 백인 소외계층의 잠재된 분노에 정치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트럼프의 주력 지지자는 저소득, 저학력 백인이다. 이들은 타 인종에 대한 우월감을 갖고 살아왔지만, 실업과 가난에 처하면서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고 기존의 정치 경제 체제를 혐오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통한 국제분업체계의 심화는 특히 전통적 제조업 분야에서 저학력 노동자의 일자리를 개도국으로 이전시켰다. 경제의 금융화와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한 돈놀이는 막대한 부를 월가와 국제투기자본에 집중시켰다. 기술진보는 저학력, 저숙련 인력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해왔다. 결과적으로 빈부 격차는 심화 되어왔다. 특히 백인이면서 가난한 경우에는 더욱더 불만이 강했는데, 도널드 트럼프는 이것을 간파했고, 저숙련 일자리를 파고드는 멕시코 이민자 등 구체적인 공격 대상을 백인불만계층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트럼프를 찍겠다고 밝힐 수는 없었던 숨은 지지층(이른바 Shy Trump)을 과소평가했던 주류 언론의 안이한 예측과 젊은 층 중심의 SNS 공간 여론을 믿었던 것이 이번 대선 결과의 충격을 더해준 셈이다.

박: 힐러리가 너무 일찍 안도한 것도 있다. 백인 중산층을 좀 더 공략하고 대변하려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트럼프가 소외된 백인들의 불만, 또는 자신의 당선을 통해 표현된 미국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불만을 해결할 수 있을까. 트럼프는 최근 정권 인수위에 기존의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월가와 기업의 인사들을 대거 포함하기도 했다.

박: 어렵다.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가 멕시코 이민자, 기존의 정치권 등 공격할 대상을 스마트하게 정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제시하지는 않았다. 파시즘처럼 막말과  마초이즘을 통해 유권자를 시원하게 해줄 수는 있었겠지만 실질적으로 대변하겠다는 그룹은 마땅히 없어 보인다. 클린턴에 대한 반감으로 당선되긴 했지만 러스트벨트(Rust Belt, 미국 제조업 등을 위주로 하는 지역)를 대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 트럼프는 이민자 추방, 노후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을 통해 전통적 제조업, 건설업 등에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선전하여 표를 얻었다. 그러면서 본인은 월가에서 후원금을 받는 기성 정치인과 다르다고 주장했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 실리콘밸리 기업들과도 선을 그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공약은 세계화와 기술진보에 따른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 즉 누진적 조세와 재분배 강화, 복지 확대 및 재고용 촉진 등과는 맞지 않은 모순된 정책들이 많다. 그가 중용하려고 하는 인물들을 보건대 아마도 사회갈등이 심화될 것이고, 이러한 사회혼란과 경제정책의 실패를 겪은 후에야 미국은 내부적으로 국민적 각성과 함께 더 나은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박: 공화당과 정책적인 입장에 차이가 나기는 한다. 정부지출을 늘리겠다고는 하는데 정책을 제시할 때 아귀가 맞질 않는다. 예를 들어 오바마케어를 줄이겠다고 하는데 지출을 늘리겠다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정책이다. 트럼프를 보기보다는 트럼프에게 정책을 제시하는 전문가 그룹이 형성되어야 어떤 정책을 펼쳐나갈지 알 수 있겠다. 다만 헨리 키신저가 “트럼프는 빚진 사람이 없다”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가 기존 정치인과는 달리 월가와 기업들에게 도움받은 것이 없어 좀 더 자유롭게 정책을 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중심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사실상 좌초되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전과는 달리 세계개방에 적극적이었던 미국이 오히려 신고립주의 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신고립주의 정책, 또한 이러한 정책을 앞으로 지속해서 펼쳐나갈 것인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박: 자기들은 비용을 안 들이고 세계적인 시장에서의 이득만을 보겠다는 것인데 국내 정치적으로는 지지를 얻어올 수단일 수 있지만, 오히려 미국이 유지되던 금융, 과학기술에서의 강세를 오히려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고립주의로, 고립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75년도 닉슨 쇼크 때처럼 다른 나라들이 강하게 불만을 가질 정도로 미국만 이득을 보는 불합리한 관세정책이나 갑작스러운 정책변화가 있다면 오히려 미국에 심각한 해가 될 것이다. 국내정치를 위해 일부 품목(자동차 등)의 관세를 어느 정도 높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의 산업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김: 트럼프 당선 이전에도 세계경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점차 유명무실화되고 미국 중심의 리더십이 약화되는 다극 체제 양상을 보여 왔다. 트럼프 당선 이후 상대국들을 압박해서 교역조건을 유리한 방향으로 재조정하려는 시도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압도적 군사력을 기반으로 이른바 세계경찰로 역할해온 미국이 트럼프 당선 이후 스스로 역할을 축소하려는 경향은 보일 수 있다. 미국이 과거와 같은 대장 역할을 혼자 하기에는 살림이 예전 같지 않고, 중국이 경제적으로 엄청 커졌고, 일본도 재무장화를 하고 있어서, 미국은 그들의 여력 범위에서 국제관계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한국이 다 감당하라는 요구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말 그대로 고립주의라기보다 역할 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세계경제와 국제관계에서 중국의 구심력과 리더십은 꾸준히 높아질 것이다.

박: 중국이 세계의 중심국가(이전 미국과 마찬가지로)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커질 필요가 있다. 지금도 대국(大國)이지만 평균적인 문화, 교육, 경제의 수준이 좀 더 올라와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내부적인 불평등 문제, 시민권에 대한 논의 등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중국으로서는 외부로 뻗어 나가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내부적인 문제도 시급한 상태이다. 구조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매우 밀접하고 그리 쉽게 역학관계에서의 변화가 생기기 어려운 관계인 점도 있다.

박상섭 교수는 인터뷰 끝에 지금이 매우 중요한 세계 변동기라고도 강조했다. 또한 외부적인 요인이 내부적인 리더십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중국, 미국 같은 대국과는 다르게 한국에서는 국제관계가 내부 리더십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내부 리더십을 세워 국제관계에서의 격랑을 잘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김수호 기자 soohoda0501@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