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은 작가들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을 소재로 소설을 써왔다. 당시 정부의 검열을 피해 황석영 작가가 ‘대리인’으로서 출판한 시민들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시민들의 증언을 꼼꼼히 모아 5월 광주를 재현한 임철우 작가의 <봄날>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소설들은 5.18을 ‘기록’과 ‘재현’으로 다뤄 왔다. 기존 작가들의 이러한 전달방식에는 5.18에 대한 왜곡과 은폐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반면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에서 1980년의 광주를 ‘기록’이 아닌 등장인물의 ‘기억’으로서 표현하고, 사실을 강조하기보다는 소설의 허구적 특성과 기법을 이용해 5.18을 표현한다. 과거와 현재,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넘나들며 기존 소설과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소년이 온다>는 장별로 동호와 주변인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에 서로 다른 서술자를 채택하고 있다. 소설 속 서술자는 동호 주변의 누군가가 되기도 하고, 계엄군 총에 맞아 죽은 시민의 영혼이 되기도 한다. 그때 당시의 시민과 학생들,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과 죽은 이의 영혼 등 다양한 서술자가 등장하여 시체더미가 수북한 5월의 광주와 그 날 이후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동호는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총격과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 관리 일을 돕게 되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다. 2인칭 서술자와 주변인을 통해 동호가 겪는 일들이 묘사되고, 독자는 이와 함께 동호의 행동을 바라보고 느끼게 된다. 2인칭, 또는 주변인에 의한 서술과 한강이 그리는 특유의 현재형, 대화체의 서술을 통해 독자는 5월의 광주를 더 강하고 생생하게 바라보게 된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한강, <소년이 온다> 중
작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 속 5·18 군인들의 총구 앞에 선 동호와 학생, 시민들을 통해 ‘인간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실마리를 찾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23살 교대 복학생은 장갑차와 헬기로 무장한 군대가 시민군을 진압하면 도청을 지키는 사람들은 죽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강렬한 양심이 압도’해 도청에 남는다. 복학생은 ‘죽음이 두렵지만 어쩌면 도청을 지킬 수도 있고, 그러면 평생 동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낙관’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진 않나 추측한다.
헌혈을 하러 병원에 간 은숙은 부상자들이 려들어오자 시신을 닦고 안내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은숙은 진압군이 오기 전날 밤 도청에 남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죽음이 두렵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렇게 죽음으로부터 도망친 은숙은 그날 밤 떨면서도 도청에 남은 동호의 마지막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빌어먹을 생명’이라 칭하며 삶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강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인간의 고귀함, 서로를 껴안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 이 뜨거운 공존이 인간의 본질”이라며 5.18 당시 신군부가 저지른 잔혹한 만행 속에 나타난 시민들의 깨끗하고 무서운 양심이 진정한 인간성이라고 말한다.
‘기록’을 넘어 현재의 ‘기억’으로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5월이 지나고 학교와 상점은 다시 문을 열었다. 유난히 방학은 늦었지만 방학하는 날까지 은숙은 날마다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은숙은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분수에서 물이 나오는 사실을 은숙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인 ‘작가’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믿을 수 없었다. 은숙과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을 말한다. 그렇게 소년이 왔다. 우리가 그 비극들을 끌어안고 기억함으로써 1980년 ‘그 무더운 여름을 건너오지 못했던 동호’가 다시 우리에게 왔다.
소설 속 ‘작가’(한강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는 광주를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런 ‘작가’에게 2009년 용산 망루 화재는 1980년 5월 광주의 재현이였다. ‘작가’는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접하고 ‘저건 광주잖아’라고 중얼거린다. 한강은 1980년 5월의 광주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수없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