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이 가장 큰 요인
지난 4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0%대로 하락하고, 가계 경제가 안정화될 것이라는 통계청의 발표가 있었다. 이 발표대로라면 소비자 주머니를 궁하게 만드는 원흉은 물가상승인 셈이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오른다”는 흔한 불평을 떠올려보면 얼핏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정말일까?
한국이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난 4월 한국은행은 2017년 경제성장률을 2.6%, 2018년을 2.9%로 예년보다 0.7%와 0.4% 낮게 전망했다. 최근에는 세계 경제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한국도 저성장, 저물가 시대를 마주할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소비자들도 저성장을 체감했다. 최근 가장 화두가 된 소비 기준은 ‘가격 대비 성능 비’, 일명 가성비다.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을 얻겠다는 이 소비 경향은, 주머니가 줄어드는 것은 느끼지만 경제적으로 보다 안정적이던 시절의 소비습관을 유지하고픈 소비자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결국 버는 것에 비해 모든 것이 더 비싸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012년도 이후 꾸준히 감소해왔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3.18%였던 연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12년에 2.2%, 2013년과 2014년에 1.3%를 기록했으며, 2015년은 0.7%, 2016년에는 1%까지 떨어졌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물가지수라는 비판에 유경준 통계청장은 “기본적으로 물가는 평균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체감물가는 물가지수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많이 쓰는 물건 가격의 상승에 특히 민감하기 때문에 심리적 요인도 체감물가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을 단순한 물건 값의 상승으로 이해하는 것도 오해를 부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수요-공급-가격 관계를 생각하면 가격 상승이 공급을 초과한 수요의 결과물로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공급이 부족하지 않아도 물가가 오르기도 한다. 화폐의 양이 많아져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즉, 물가상승은 물건이 비싸졌다는 뜻 외에도 돈의 가치가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물가상승은 필연적이다. 간혹 뉴스에서 보는 ‘소비자 물가 하락’과 관련된 보도로 물가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에서 발생하는 은행의 예금과 대출 과정 아래 통화량 항상 증가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 역시 언제나 양의 값을 가지게 된다.
내가 은행에 100원을 예금했다고 가정해보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예금 100원 중 10원 정도를 보관하고 나머지 90원을 다른 이들에게 대출해 준다. 나는 100원을 예금해서 100원 보유하고 있는데 다른 누구는 대출 받은 90원을 새로 손에 쥐었다. 이런 경우 합은 190원, 중앙은행은 ‘신용화폐’라는 이름으로 새로 등장한 90원을 추가로 발행하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화폐를 반드시 더 발행해야 할까? <자본주의>는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하여 이해를 돕는다. 고립된 섬에서 중앙은행이 1만원을 발행한 후, 내가 그 돈을 빌려서 1년 후 이자까지 1만 500원을 갚아야한다고 하자. 과연 나는 열심히 일해서 1년 뒤에 1만 500원을 갚을 수 있을까? 섬에 있는 돈은 1만 원 뿐, 이자로 내야하는 추가의 돈은 중앙은행이 500원을 추가로 찍어내지 않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은행 예금의 이자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돈이 새로이 발행되어야 하는데, 이는 통화량 팽창과 통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소비자로 하여금 물가상승이라는 결과를 체감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의 예금과 대출기능이 필요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통화량 상승으로 인항 물가상승은 피할 수 없고, 물가상승 자체가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을 악화시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비자의 주머니를 줄이는 원인은? ‘가계와 기업 간 소득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증가’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오른다”며 불평하는 이유는 뭘까? 물가 상승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원인은 불평처럼 물가만큼 오르지 않는 월급에 있다. 이는 ‘가계와 기업 간 소득 양극화’나 ‘소득불평등 증가’ 문제로 이어진다.
201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가계소득간 격차는 2007년 20%에 달했고, 이후 점점 확대되어 성장 양극화 또한 계속해서 심화되는 추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가계-기업소득간 성장 양극화의 원인을 고용 부진에 따른 노동자 보수와 기업 이윤(영업잉여)간의 격차로 지적했다. 1975~1997년 8.2%를 기록한 기업의 영업잉여 증가율은 2005~2010년 19.1%, 2010년 26.8%로 점점 증가했지만, 노동자보수 증가율은 1975~1997년 8.1%, 2005~2010년 2.8%, 2010년 5.5%로 동기간 영업잉여 증가율의 1/4 수준에도 못 미치는 부진을 보였다.
소득불평등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0.26~0.27로 관측되던 소득불평등도는 2006년 이후 0.28 정도로 기록되었다. 2013년 한국노동연구원은 ‘우리나라 소득불평등 실태와 재분배 정책의 효과’ 연구에 따르면 조세의 재분배효과 또한 낮아지고 있는데,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조세부담 강화 등 점진적이고 중장기적인 정책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소득재분배정책이 경제성장에 정체기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2008년 한국사회학회의 ‘소득재분배정책과 경제성장’ 연구에 따르면 소득재분배 증대는 경제성장에 오히려 부분적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저성장, 고실업, 소득불평등 심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득재분배정책을 활성화 하면서 경제성장도 도모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삽화=오주영 기자
글= 정지훈 기자 jeongjihun@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