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트 사람들> 과학과 철학,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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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트 사람들> 11학번 정유희 학우

[기사입력=2015.05.27. 17:56 | 기사수정=2015.05.27 18:44 ]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뭐하지…?” 많은 학우들이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겁니다. “그냥 대학원 가서 석박사 하면 되겠지…” 정형화된 진로방향에 휩쓸려가는 느낌이 들지는 않으신가요? 그렇지만 진로에 관한 정보를 얻기란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번 <지스트 사람들>은 졸업생들이 선택한 다양한 진로들에 대해 알아보고, 학우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아직도 미래가 막막하신 분들, 지스캐치가 기획한 <지스트 사람들>을 읽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지스트 사람들> 세 번째 주인공은 11학번의 정유희학우입니다. 정유희 학우는 올해 초 우리 대학을 졸업하여 현재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하 과사철 과정)’에서 재학 중입니다. 우리 대학 대다수의 학우들은 과학/공학 분야로 진로를 선택하는데, 정유희 학우는 과학철학을 진로로 선택하여 상당히 색다른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과학보다는 인문학에 더 가까운 과학철학, 그리고 정유희 학우의 진로결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사진 = 정유희 학우>

Q1 : 과학철학, 과학사가 무엇인가요?

A1 : 과학철학은 자연과학의 본성과 방법론을 탐구하는 분야입니다. 자연과학이 어떤 현상을 관찰하고 원인을 밝혀내는 학문이라면 과학철학은 과학자가 밝혀낸 것의 의미를 찾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나아가 자연과학이 진리인지 등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철학의 경우 물리량의 측정이 과학이론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르는 시간은 실재하는가?’ 등을 묻죠. 생물철학의 경우 유기체들은 어떤 원리에 의해 분류되어야 하는가?’ 등에 대해 묻습니다.

과학사는 말 그대로 과학의 역사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과학의 영웅들을 살펴보고, 그들이 어떻게 놀라운 업적을 낼 수 있었는지를 추적합니다. 대개 이 영웅들은 뛰어난 천재가 고난을 뚫고 탐구에 매진하여 과실을 딴 신화처럼 내비쳐지는데, 사실 이들의 삶은 시대와 환경, 수많은 우연, 한계 등이 촘촘히 연결된 거대한 서사입니다. 과학사는 이런 갈래들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무엇이 이 영웅들을 만들어 냈는지 큰 그림을 그립니다.

Q2 : 과사철 과정 생활은 어떤가요?

A2 : 우리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인문학 계열을 전공하던 사람이 반 정도 되는데, 그래서인지 이공계열인 지스트대학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비약을 조금 넣자면, 과학 활동만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실재론에 치우치기 쉬운데, 철학분야에는 실재론과 반실재론 간의 긴장이 팽팽한 편이에요. 어느 쪽이든 근본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 덕에 과학이 과연 객관적인가?’ 라는 물음도 자연스럽죠. 이것이 학과의 분위기에 적용되어 과학조차도 객관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부하는 방법도 대학 때와는 조금 다른데, 주로 논문 읽고 쓰기, 토론과 논평 등을 합니다. 토마스 쿤, 칼 포퍼와 같은 과학철학의 대가들의 책을 주로 읽고 논평하죠. 과학철학 대가들의 생각을 더듬어 가는 것도 중요해서 그들의 저서를 많이 읽습니다. 과학 공부를 할 때 이론을 많이 배웠다면 과학철학에 와서는 대가들이 했던 물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Q3 : 어떤 과정을 통해 과학철학이라는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나요?

A3 : 저는 철학수업을 들으며 고전에 큰 흥미를 느꼈고, ‘철학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느낀 철학의 맛이란 철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과학의 맛과는 색다른 맛을 의미합니다. 연구중심대학인 우리대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취업보다는 연구와 탐구에 흥미가 많이 갔고, 평소 흥미를 갖고 있던 철학이 더해져 자연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과학철학 분야에 매료되었습니다.

지스트에서 제공하는 기회도 진로 선택에 영향을 주었는데, 대표적으로 Evolutionary Biology and Field Trip 프로그램이 그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진화생물학 수업을 들은 뒤, 인도네시아의 윌러스 라인에 직접 답사를 가서 진화의 흔적을 찾아보고 오는 프로그램입니다. 평소 진화론에 흥미를 갖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진로선택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과학철학으로 진로를 선택한 것과 진화론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물으실 수도 있는데, 이 둘은 사실 꽤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답니다. 과학철학의 한 분야인 생물철학에서는 진화론의 증거 찾는 것에 주력하지는 않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예를 들어 자연선택은 진화의 얼마나 강력한 요인인가? 혹은 인간의 행동은 진화론으로 얼마만큼 이해될 수 있는가? 등 꽤 밀접한 연구를 합니다. 제가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도 진화론을 깊이 탐구하는 것이기도 해서 윌리스 라인 답사가 저에게는 꽤 많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Q4 : 앞으로의 계획은?

A4 : 진화론에 관심이 많아 탐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분야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진화, 과학철학, 종교와 문명 이런 분야가 흥미로운데 아마도 재밌는 것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석사과정을 하고 있는데, 제가 박사 과정을 해도 되는지도 석사과정에서 결정하려 해요. 우선은 제 지도교수님이신 장대익 교수님이 과사철 과정에서 박사까지 하셨고, 한국에서는 과학철학/진화론 분야에 저명하신 분이기 때문에 교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갈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Q5 :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5 : 지스트대학은 일반 대학에 비해 독특한 점이 많아요.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소수정예 교육, Liberal Arts 교육 등 여러 특성이 있습니다. 이 특성들은 다른 시각에서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될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지스트대학이 규모가 작고, 타 대학과 교류가 적다는 단점을 느껴 대외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영화제 자원봉사, 과학기술 토론대회 등 여러 활동을 통해 많이 배웠지요.

하지만 졸업을 하고서야 느낀 것은, 지스트대학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장점을 잘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았나 하는 것 입니다. 지스트 교수님들의 방문턱은 정말로 낮습니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가깝게 지내며 학생들이 자유롭게 질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있는데, 이러한 혜택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누려왔던 것 같아요. 부디 후배님들은 교수님들께 자주 찾아가고 g-surf나 계절학기, 교내 대회 등 지스트에서 제공하는 특권들을 잘 누리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진로를 전향하고자 하는 분들께 한 가지 더 당부 드리자면, 진로를 선택할 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공계에서 타 분야로 진로를 전향하여 많은 현실적 조건이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학비, 학위 기간, 병역 등이 진로를 선택하는데 있어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적 조건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 꼭 경험자들과 상담을 거친 후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선배가 됐든 교수님이 됐든 꼭 경험자와 상담한 후 결정하기를 강하게 권장합니다.

심규대 기자 dk29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