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지스트는 어땠을까? ② 하우스제도의 도입과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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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트 돌아보기 – 자치기구를 중심으로>

① 총학생회의 탄생

② 하우스제도의 도입과 부결

③ 입시대표자회의와 짧은 임기의 4대 집행부

④ 하우스제도의 완전부활

[기사 입력 : 2015. 09. 14. 17:48]

매주 일요일 연재

입학한 지 한 학기를 이제 막 보낸 새내기들은 2010년 우리 대학이 처음 시작하던 때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봄이면 꽃이 피고, 편안한 기숙사와 세 동의 대학건물이 있는 이곳이 불과 5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다고 말하면 아마 믿기 힘들 겁니다. 이렇게 외형적인 모습을 떠올리기 힘든 것처럼 우리 대학에 먼저 왔던 선배님들이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도 쉽게 느끼기 힘들겠죠.

<학교 뒤쪽이 왠지 허전하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지스트대학에 있었던 일들은 적지 않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있었던 지스트대학 총학생회의 짧지 않은 역사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야 했던 선배들의 고민을 엿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학생자치제도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1편에서는 총학생회가 탄생하고 체계를 형성한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2011년도에는 의결기구인 전학대회와 운영위원회가 꾸려지고 총학생회 집행국들이 만들어졌었죠. 이번에는 2012년도에 도입된 하우스제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합니다.

하우스제도의 도입

하우스제도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11년 2학기였습니다. 학년 대표자가 각 전공을 대표할 수 없다는 문제점[관련 기사 : 그때 지스트는 어땠을까? 1. 총학생회의 탄생]을 해결함과 동시에, 기숙사 내 여러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로 하우스제도가 검토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우스제도를 도입함으로써 1. 기숙사 내 학생자치활동지원 2. 학년을 아우르는 공동체 형성 3. 효과적인 전학대회 구성 등의 효과들이 기대되었죠.

UC버클리에서 여름학기를 보내며 하우스 단위로 진행되는 다양한 행사를 체험한 것도 하우스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에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Task-Force를 발족하여 우리 학교에 맞는 하우스제도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2011 총학생회에서 제작한 하우스제도 추진결과표>

그 결과 학교의 전격적인 지원으로 2012년 1년 동안의 하우스제도 시범운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총 4개의 하우스로 나누었는데요. 하우스별로 하우스장을 선출하여 해당 하우스 목소리를 대변함으로써, 하우스가 자치활동의 단위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하우스장은 국회의원이고, 하우스는 자신이 대표하는 지역구인 셈이죠. 층별로 층장도 선출했습니다. 또한, 하우스별로 휴게실을 지정하고 하우스지원금을 통한 하우스행사를 장려하여 하우스단위의 교류가 활성화되도록 하였습니다.

<2012년 5월 31일 하우스 출범식. 선우중호 전 총장(가운데)>

<하우스제도가 처음 도입된 2012년의 총학생회 구성도>

하우스제도의 시행. 시행상의 문제점들

2012년은 어디까지나 하우스제도 시범운영 기간이었습니다. 1년의 시범운영을 거친 뒤 2학기 말 투표를 통해 최종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총학생회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에 2012년 가을학기 퇴사 시작일 부터 12월 26일에 걸쳐 ‘하우스 제도를 도입하느냐’를 두고 선거가 진행되었습니다.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들이 기대되는 하우스제도. 과연 최종 도입에 성공했을까요?

하우스제도 최종도입안 투표는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개표를 해보니 전체 173표 중 찬성은 89표, 반대는 81표, 무효는 3표 였습니다. 가결되려면 찬성표가 득표수의 2/3를 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죠.

왜 하우스제도는 정착되지 못했을까요? 첫째는 룸메이트 제한이었습니다. 전교생 300명가량을 4명의 하우스로 쪼개다 보니 한 하우스 크기는 고작 75명이었습니다. 자연스레 룸메이트 선택이 제한되어 반감을 샀습니다. 특히 가뜩이나 소수인 여학생의 경우는 같은 학번이 한 하우스에 4명뿐으로 불만이 컸습니다. 한 여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룸메이트의 경우의 수는 고작 3명. 그마저도 나머지 2명이 룸메이트에 만족하고 있다면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죠.

둘째는, 하우스의 업무 과다였습니다. 하우스가 다양한 역할을 맡다 보니 집행국, 문화행사위원회, 동아리 등과 겹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인력의 낭비로 이어졌고, 과도한 업무로 인해 하우스위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기에 이릅니다. 학생회비와 별도로 하우스 비를 걷었다가 다 사용하지 못하고 환급해주는 하우스가 생길 정도로, 제대로 된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하우스와 기존 자치기구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적극적으로 일할 인력이 필요한데요. 전교생이 300명도 되질 않다 보니, 인력풀은 한정적이다보니 근본적인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셋째. 제반시설의 미비였습니다. 대학기숙사에 다양한 편의시설과 휴게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하우스제도의 운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하우스별 행사를 진행할만한 넓은 크기의 공간은 기숙사 내에 없었습니다. 기숙사의 구조 또한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개인 생활에 편리한 구조입니다. 따라서 애초에 기대했던 것만큼 하우스제도로 선 후배 간의 교류가 늘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2012년의 하우스제도는 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자치기구의 역할도 수행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 간 교류의 장 또한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몇몇 학우들은 우리들의 소통을 가로막는 정신적인 벽이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단순히 거주지를 나누고 이름을 붙였을 뿐 알맹이에 해당하는 부분은 미미했던 것이죠.

하우스제도 최종도입안 부결과 총학생회장 선출 무산

당시 하우스제도 도입 부결은 큰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가결안과 부결안을 살펴보면 가결안은 현재 회칙은 유지하되 시범운영 기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었고 부결안은 회칙을 개정하여 하우스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었는데요.

투표가 부결되었으니 부결안을 따라야 하는데, 이 부결안에 따르면 학생회칙 개정위원회가 발족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학생회장선출이 무산되었기 때문이죠. 단일후보에 대한 찬반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4대 총학생회장 선거는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많아 부결되었고, 그 이후 재선거에서는 후보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이죠.

그 결과는 전학대회의 증발이었습니다. 전학대회의장인 총학생회장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전학대회 대의원 30명 중 20명에 해당하는 하우스소속 대의원들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더 큰 문제점은 이를 해결해야 할 ‘학생회칙 개정위원회’가 발족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3대 총학생회장단의 임기는 끝나 가는데 2013년에 총학생회 활동을 할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비어버린 총학생회>

총학생회의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전학대회의 증발’.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최철민 기자 ferror@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