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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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재(물리광과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받은 것인지, ‘하는 수 없이’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차량 등록이 해제된 탓에 방문자 출입구로 과기원을 드나들게 된 것으로 무언가 바뀌었음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조금은 기뻐도 될 듯 한데 앞으로 걸어가게 될 여정을 생각하면 부담감에 자못 입을 굳게 다물게 됩니다. 저는 졸업 후 박사후연수과정으로서 연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경험을 하고 나면 후기를 남길 때가 있지요. 저는 이 자리를 빌어 박사과정 후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저는 비선형광학 현상을 이용하여 고체 물질의 구조적 대칭 특성과 성질을 연구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물질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엑스선 회절법이나 투과전자현미경법 등을 이용하는데요, 비선형광학 현상을 이용하면 아주 얇은 이차원 물질이나 박막의 표면, 계면의 구조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근래 들어서는 국내의 여러 연구 그룹들이 비선형광학 현상을 이용하여 고체물질에 대한 연구을 진행하고 있지만 제가 학위과정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저희 그룹이 처음이었습니다. 현재의 물질 연구는 단순해 보이는 물성이라도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인 경우가 많기에 여러가지 실험과 계산, 이론연구가 상호보완적으로 수반되어야만 그 기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과거와는 달리 홀로 연구하고 논문을 내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여러 연구자들이 협력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비선형광학을 이용한 연구를 수행한 덕분에 저는 국내외 여러 그룹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잦았고, 많은 연구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다 보니 지루할 수 있는 연구생활에 환기도 되고 많은 에너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대다수 물리학도가 갖는 물리학에 대한 첫인상은 ‘고상함’ 또는 ‘우아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와 시간, 초끈이론과 관련된 수식을 들여다보며 종이와 펜만으로 설명해내는 학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정말 멋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여 물리를 공부하면서 조금씩 실상(?)을 알게 되지요. 물리학과 연구실의 대다수는 실험을 하는 연구실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저도 실험을 하는 연구실에서 물리를 공부했습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광학적인 방법을 통해 고체물질의 특성을 연구하는데요, 시료에 레이저 빛을 쏘인 후 시료를 거친 빛의 물리량을 측정하여 물질의 특성을 파악합니다. 간단한 예로, 빛이 잘 반사되는 물질을 도체, 그렇지 않은 물질을 부도체로 분류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질의 특성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온도를 바꿔보거나 전기장, 자기장을 가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온갖 공구를 질펀하게 늘어뜨려 놓고 골똘히 고심하며 뚝딱거리는 것을 좋아했던 제게 실험은 제게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장비의 복잡한 기능을 사용하는 것보다 조이고 닦고 기름 치는 작업을 좋아해서, 지금도 가끔 저의 적성이 실험실보다 정비소나 전파사에 있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실험으로부터 데이터를 얻으면 이를 여러 사람과 논의하고 의견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학회라고 부르는 학술모임이 그것입니다. 때로는 아주 큰 모임이 열리는데,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처음 참가했던 해외 학회에서 백 미터가 넘는 복도를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삼삼오오 토의하는 모습은 정말 신선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학회에 참가하여 발표를 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발표 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친구와의 가벼운 대화에서도 오해가 생기기 쉬운데, 아무도 모르는 연구내용을, 때로는 외국어로, 그것도 짧은 시간에 전달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준비한 발표에 누군가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할 때면 상당히 고무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더불어,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듣는 것도 학회의 묘미 중 하나입니다. 발표를 듣다 보면 왜인지 모르게 동질감이 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 실험실 구석에서 나처럼 며칠 못 들어갔겠구나..’, ‘어라? 저 생각은 우리 연구실에서도 이야기 했던건데?’ 하고 느끼하다보면 다시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던 것 같습니다.

연구자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만 아마도 가장 우선이 되는 일은 논문을 쓰는 일일 것입니다. 연구는 논문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논문을 제출하고 학위를 받았다”고 하면 ‘학위논문(thesis, dissertation)’을 제출한 것인데요, 학위논문은 학위를 받기 위해 학위과정동안 연구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학위자가 속한 기관에 제출하는 논문입니다. 반면, ‘학술논문(journal article)’는 학술지에 투고하여 게재하는 논문을 말합니다. 대학원 생활을 한다면, 특히 박사학위과정의 학생이라면 학술논문의 개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됩니다. 학술논문의 작성은 어렵지 않습니다. 연구과정에서 지도교수님, 동료, 그리고 자신과 나누었던 대화를 잘 정리하여 방법에 맞게 적으면 됩니다. 다만 각자의 영어실력과 글쓰기 실력에 따라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주 약간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작성된 논문을 목표로 삼는 학술지에 투고하면 편집자(editor)와 심사위원(reviewer)의 평가를 거쳐 학술지에 게재됩니다. 연구를 처음 시작한 경우라면 숱하게 만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헤맬 때가 많습니다. 연구라는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효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면 여러가지 의미로 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위 사람들과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저는 학위 초기에 많이 헤맨 끝에 첫 논문 개제가 늦어졌고, 결과적으로 학위를 마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습니다. 저마다의 학위과정이 다르기에 가타부타 할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지도교수님의 조언과 지도를 성실히 따르면서 첫 논문을 빨리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가 학위과정을 통해 배운 것 중 하나가 연구를 ‘성실히’ 혹은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위를 끝마친 이들을 볼 때면 무언가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어제와 같이 실험하고, 토의하고, 논문을 씁니다. 처음에 비해 과정은 익숙해졌으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시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야 합니다. 다만 조그마한 확신이 생긴 것 같습니다. 잘 해낼거라는 확신은 아닙니다. 조금은 더 해도 괜찮겠다는, 나는 공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아니구나 정도랄까요. 제게 물리는 짝사랑 같습니다. 언제고 끝날지 모르지만 밀어내지만 않는다면 계속 쳐다볼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남아있기를, 그리고 저와 같은 수많은 이들이 진리에서 행복하기를. 모두의 행운을 빕니다.

노창재(물리광과학과 박사)
노창재(물리광과학과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