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문제는 비슷하다, 그래서 학보사는 계속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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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트신문>에 독자기고란을 쓸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기고를 결정했다. 현재 KAIST 학보사 <카이스트신문>의 편집장인 필자에게는 KAIST와 많은 공통점을 가진 GIST의 학보사 <지스트신문>에의 기고가 무척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에 기고 전 <지스트신문> 지면을 찾아보고, 최근 신문인 54·55호를 읽으며 <지스트신문>은 어떤 기사를 쓰나 슬쩍 염탐했다. 기사를 읽어보니 이제 막 발행 50호를 넘긴 신문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체계적인 지면 구상과 기자단의 노력이 눈에 띄었다. 학보사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과학기술원에서 이 정도로 수준 있는 기사를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지면을 읽은 후에는, 운좋게 <지스트신문>의 부편집장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여서 학보사 운영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 갖고 있는 어려움과 문제 의식을 공유하며 알게 된 건, ‘학보사가 갖는 문제는 전반적으로 비슷하다’라는 사실이었다. 이에 <지스트신문>을 읽으며 생각한 개선점과 함께, <카이스트신문>을 운영하며 느낀 어려움을 바탕으로 <지스트신문>을 위한 제언을 몇 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다소 ‘꼰대’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지스트신문>이 <카이스트신문>에서 범한 실수를 예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만일 아래의 내용 중 필자와 <지스트신문> 기자단의 생각이 다른 곳이 있다면,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아는 기자단의 생각이 옳으므로, 필자의 예민하고도 잘못된 비평을 사뿐히 무시해주길 바란다.

 

누군가가 희생해야 돌아가는 단체가 되지 않도록

학보사는 힘들다. 필자도 취재부에 있을 때 수없이 많은 밤을 새었기에, <지스트신문> 기자단이 얼마나 큰 무게감을 느끼고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기자단이 동일하게 힘들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업무가 적절히 배분되지 않으면 친목은 무너지고, 신문의 질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편집부가 직접 기사를 쓰면서 교정까지 봐야 하는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학생으로서 주어진 과제와 시험은 기본이고, 여기에 당장 기사를 ‘쳐내면서’ 밀려 들어오는 기사 교정을 보려면 주말을 헌납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이렇게 바빠 죽겠는데, 시간을 따로 내서 친목 사업을 진행할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학보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글을 직접 쓰는 부서, 그중에도 취재부에 가장 많은 업무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 <지스트신문>의 경우 편집부, 취재부, 디지털컨텐츠부, 디자인부, 국제부로 구성되어 있다고 들었다. 각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부서별로 비슷한 강도의 업무가 배정되었는지 확인할 필요성은 수 회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학기가 끝나고라도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각자에게 어떤 업무가 있는지 다함께 살펴본다면 지속 가능한 학보사를 만드는 데에 일조할 수 있겠다.

 

독자층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한편 독자층을 적극적으로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 학생 운동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학보사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지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이다. 학보사가 자체적으로 구성원의 관심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써도 아무도 안 읽는다’라는 자괴감에서 빠져나올 방도가 없다. ‘독자 기고’가 ‘지인 기고’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누가 독자인지’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55호에 실린 <지스트신문 인지도 조사> 기사에는 칭찬을 보내고 싶다. 조사 결과를 보니, <지스트신문>을 읽어본 학생이 100명 넘게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으로 기사를 접한 학생 비율이 적다는 부분에서 디지털 컨텐츠를 통한 효과적인 홍보의 필요성이 엿보인다. 최근 <지스트신문>에서 새롭게 뉴스레터를 발송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이미 SNS 접근성과 웹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구나 싶었다.

 

보다 창의적인 면 구성의 가능성을 보다

<지스트신문> 지면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보도, 기획, 대학, 오피니언, Campus의 다섯 종류로 구성된 지면 구성이었다. 보도와 기획을 분리하고, ‘대학’ 카테고리를 신설한 것은 참신하지만, 각 면에 들어가는 기사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지는 모호하게 느껴진다. 만일 각 면에 실리는 기사의 유사성이 높다면, 과감히 면을 통합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하나의 신문에서 국문과 영문을 혼용해 기사를 내는 것도 타 학보사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이기에 인상적이었다. 포스텍의 경우 국문 학보사 <포항공대신문>이 절반을, <The Postech Times>가 남은 절반을 쓰는 식으로 지면을 발행하고, 카이스트의 경우 국문 학보사 <카이스트신문>과 영문 학보사 <The KAIST Herald>가 별개의 조직으로 운영 중에 있다. 그렇기에 <지스트신문>의 시도는 괄목할 만 하지만, 동시에 국문 기사와 영문 기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일례로 54호의 1면 톱 뉴스는 임기철 총장 취임 소식이었는데, 같은 제목의 기사가 7면 하단에도 실렸다. <지스트신문>은 카이스트나 포스텍과는 다르게 하나의 학보사에서 국·영문을 함께 담당하는 만큼, 하나의 제호 아래에 발간하는 기사 간의 유기적 연결이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

한편 하나의 면에서도 상단과 하단의 제목 서체를 다르게 한 점은 조금은 의아했다. 어떤 기사에서는 명조체가 발문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다른 기사에서는 제목의 역할을 하기도 해 ‘무엇이 제목이고, 무엇이 발문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제목과 발문의 서체를 각각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가독성에는 더 좋지 않을지 제안해 본다.

 

대학언론은 위기다. 원체 동아리처럼 마음 놓고 운영할 수 없는, 제약도 많고 사회적 책임도 따르는 단체라 해야 할 일이 많다. 심지어 대학언론은 그 특성상 (잠재적인) 적이 많다. 학교 본부, 총학생회, 교수, 동아리 등 견제해야 할 곳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보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만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가”, “지금 우리 대학 사회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무엇이며(어젠다 세팅), 우리가 놓치고 있는 어젠다는 무엇인가(어젠다 키핑)”와 같은 의제를 다함께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런 지점에서는 <카이스트신문>도, 그리고 필자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보사 간의 연대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재작년 9월에 <지스트신문> 최승규 기자님은 카이스트신문에 “과기원 학보사, 다시 연결될 수 있길 바라며”라는 제목의 글을 투고한 바 있다. 필자도 이와 같은 마음이다. 만일 <지스트신문>에서도 두 학보사 간의 접점을 만들어 볼 생각이 있다면, <카이스트신문>의 문은 열려 있으므로 언제든 연락을 남겨주길 바란다. 끝으로 <지스트신문>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글을 마친다.

<카이스트신문> 편집장 정광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