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 상태에 빠진 갈등, 정부 vs 의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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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지난 2월 1일 진행된 민생토론회에서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는 △의료 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소송 부담 완화, △필수 의료에 대한 보상 체계 공정화의 내용을 골자로 두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된 항목은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로,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려 연간 총 5000명 규모로 학생 선발하겠다는 방안이다. 의대 입학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해 석 달 가까이 전공의 파업 및 교수진 파업 등으로 의료계가 강경하게 반발하자, 정부는 한발 물러서 증원 규모를 최대 절반으로 축소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원점 재논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24 의료 대란의 시작,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이번 2024 의∙정 분쟁은 지난 2월 1일 정부가 발표한 필수 의료패키지로부터 촉발됐다. 정부는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에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정 △공정한 보상이라는 4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앞의 두 항목은 정부가 원하는 의대 정원 확대와 지역의료 개선을, 나머지 항목은 대한의사협회가 원하는 의료사고 특례법, 수가 인상을 반영한 것이다. 지역의료 강화 방안으로는 지역인재 전형 확대와 대학∙학생∙지자체의 합의로 거주지를 지원받으며 근무하는 고용계약형 장학금제도인 ‘지역 필수의사제’가 있다. 의료사고 안정화를 위한 대책으로 ‘의료사고처리특례법’과 신뢰받을 수 있는 의료사고 자문 기구의 설립이 발표됐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보험 및 공제 가입 시 의료사고 고소를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문 기구의 설립은 익명 자문의 영향력을 줄이고 수사의 투명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공정한 보상과 관련해서는 필수 의료분야에 보상을 집중적으로 인상하고, 기존의 수가((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총액을 정하여 사용량과 가격에 의해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 산정 체계에는 보완형 공공정책 수가를 추가했다. 보완형 공공정책 수가에는 난이도, 위험도, 시급성, 숙련도, 대기 및 당직시간 등을 반영한다. 추가로, 정부는 비급여 관리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수치료와 같은 과잉 비급여 혼합진료((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급여 진료와 그렇지 않은 비급여 진료를 혼합하는 진료)) 금지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는 혼합진료의 제한 범위와 혼합진료를 금지할 경우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가 제한될 여지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 왜 필요할까?

2024년 우리나라 의과대학 40개의 입학 정원은 총 3,058명으로 20년 전부터 동결된 상태이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의사 수와 해외 사례를 근거로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주장했다. 2021년 기준 국내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한의사를 포함하여 2.6명으로 30개 회원국 평균인 3.7명에 비해 낮은 편에 속한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또한 정부는 의대 교육 기간과 전공의 수련 기간을 고려하면 2025년 의대 증원 효과는 빠르면 10년, 늦으면 20년 뒤에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연간 2,000명보다 적은 숫자로 증원하거나 늦게 진행하게 될 경우 의료 공백기가 길어진다고 덧붙였다. 국내 인구의 빠른 고령화 추세와 고령 의사의 은퇴까지 고려하면 향후 의료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도 의대 증원 확대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의료계, 반대 이유는?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은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정원 확대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응답자 4,010명 중 3,227명(81.7%)은 증원에 반대했으며, 반대하는 의사 중 절반은 “이미 인력이 충분하다”(46.3%)는 입장을 보였다. 의료계는 고령화를 근거로 제시한 정부와는 달리 저출생으로 인해 국내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이기 때문에 인구당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OECD 기준에 맞춰 의대 정원을 확대할 경우, 의사 공급 과잉은 병∙의원 간 경쟁을 촉진하고 과잉 진료를 낳아 의료비 증가를 필연적으로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날 경우 오는 2040년 국민 1인당 의료비는 매월 6만 원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더 나아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악화로 인한 의료민영화가 추진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의료 교육 시스템이 갑작스러운 증원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의학 교육 특성상 다양한 실습 수업이 요구되는데, 지금도 실습 교육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서 학생 수가 더 늘어나면 교육 인프라가 더욱 부족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의료 공백 피해 입힌 전공의 파업, 정부의 해결책은?

정부는 계속되는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자 3가지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첫째, 지난 2월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시적으로 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합법적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3월 7일 전문성을 기준으로 일반, PA, 전문 간호사로 구분해 응급 심폐소생과 약물 투입 등 98가지 행위에 대한 수행 가능 여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둘째, 농어촌 지역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이하 공보의)와 군의관을 인력이 부족한 상급종합병원에 파견했다. 마지막으로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 3월 21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업무개시명령 위반에 대해 다음 주부터 원칙대로 면허 자격 정지 처분을 해나갈 것”이라며 이르면 3월 26일부터 처분이 시작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유연한 처리’ 주문에 따라 방안을 정하기 위한 대화 중에 면허정지 처분을 할 수 없으므로 면허정지 처분을 잠정적으로 보류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계속되는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자 3가지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첫째, 지난 2월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시적으로 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합법적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3월 7일 전문성을 기준으로 일반, PA, 전문 간호사로 구분해 응급 심폐소생과 약물 투입 등 98가지 행위에 대한 수행 가능 여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둘째, 농어촌 지역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이하 공보의)와 군의관을 인력이 부족한 상급종합병원에 파견했다.

그러나 공보의와 군의관을 파견함으로써 의료 취약지역에는 또 다른 의료 공백이 생겼다는 지적이 있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위원장은 “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복무해 인턴도 마치지 않은 일반의들이 해당 과에 특화된 전공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의료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 위원장은 “현재의 사태가 벌어진 것은 정부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사 수를 늘린다고 했기 때문인데, 이 사태로 인해 지역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수백 명의 군의관과 공보의를 차출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한발 물러서는 정부, 물러서지 않는 의료계

의료계는 지난 12일, 22대 총선 결과에 대해 “사실상 국민이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내린 심판”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이하 보건의료노조)는 “여당의 총선 참패를 두고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 주장하는 의협의 주장은 말이 안 되며 민심은 의대 증원이다. 의협은 더 이상 총선의 결과를 이용해 의대 정원을 확대하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19일, 정부가 내년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규모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국립대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정부가 공개한 배분으로 의대생 정원이 늘어난 대학 모두 증원분을 조정할 수 있게 됐다. 각 대학의 조정 결과에 따라 2,000명이던 의대 증원 규모는 1,000-1,700명대로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대학별로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게 한발 물러섰지만,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만을 주장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25일에 출범 예정인 대통령 직속 의료 개혁 특별위원회에도 대한의사협회, 전공의협의회는 참여하지 않는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계에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을 멈춰달라는 것이 아니라 조속히 의료 현장에 복귀하고, 정부와 대화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라며 의료 정상화를 촉구했다. 한편, 정부에는 “의대 정원 확대는 찬성하지만, 의사들의 진료 거부로 인한 국민들의 불편함을 해결하지 못하는 방안은 안 된다는 것이 총선에 대한 민심”이라며 의료개혁을 밀어붙이기보다는 대화를 통한 협상을 이끌어내기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