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방관은 ‘위헌’

0
274

 

사과 1.3kg에 22,900원(5월 18일 기준), 이 마저도 11% 할인된 가격이다. 4월 통계청이 발표한 사과 가격은 전년도와 비교해 88.2% 상승했지만, 생산량은 전년 대비 30.3% 감소했다. 사과 금값의 원인은 매년 상승하는 기온이다. 이상기후로 한반도의 사과 재배 지도는 점차 북상하고 있다. 이상기후는 전 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전 지구적으로 빈번히 발생하는 이상기후로 인해 미래세대가 제대로 된 기후를 누릴 수 없다는 내용으로 기후소송이 전 세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이상기후

지난 4월 16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하루 동안 12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두바이는 사막 중심 도시로 연 평균 강수량이 120mm인 매우 건조한 지역이다. 16일 하루 동안 기록한 강수량은 1년치 강수량에 해당한다. 중국 남부에 있는 광둥성에서도 16일에 시작된 600mm가 넘는 비로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이상기후는 폭우만이 아니다. 베트남에서는 섭씨 44도를, 인도 뉴델리에서는 52도를 기록하는 등 여름이 막 시작되는 초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온도로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고 있다. 기상연구기관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폭염이 앞으로 빈번히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세계에서 갑작스럽게 이상기후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환경공학부  윤진호 교수(이하 윤 교수)는 이상기후에 대해 크게 2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자연적인 원인이다. 날씨는 매일 변화하는 현상이고 이상기후는 우연한 극값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기후 현상을 우연으로 보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온도 증가가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상기후는 폭염이다. 윤 교수는 극한 강수에 대해서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온도가 증가함에 따라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고 잠재적으로 많은 강수를 야기할 수 있는 조건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를 향한 미래세대의 목소리, 기후소송

매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점점 빈번해지는 기상이변으로 생계와 생명을 잃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로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 영향의 정도는 세대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미래세대가 직접 기후소송을 제기하면서 명확해지고 있다. 기후소송은 시민들이 정부와 기업의 부적절한 기후 위기 대응을 제지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기후소송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기후 소송의 대상과 유형이 다양해지고, 소송의 범위도 확장됐다. 현재 기후소송은 △정부 프레임워크/기후 표준 시행 △공적 금융 △기업 프레임워크 △기후-워싱(climate washing) △보상/개인 책임 5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기후소송 유형 5가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유형은 국가의 기후 목표와 정책의 이행에 대해 제기하는 소송이자 정책결정자들이 기후 문제를 더욱 중점적으로 다루도록 하는 정부 프레임워크 소송이다.

 

*미래세대 :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이 후에 존재하게 될 사람들, 현재의 아이들부터 무한한 미래에 태어나지 않은 모든 사람을 포함

 

해외에서 이뤄진 기후소송

대법원이 국가의 기후 위기 방지 의무를 법적으로 확정한 세계 최초의 사례는 네덜란드의 ‘우르헨다 판결’이다. 네덜란드 환경단체인 우르헨다 재단은 당시 네덜란드 정부의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17% 감축’이라는 목표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2013년에 소송을 제기했다. 6년간 이어진 소송 끝에,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은 감축목표를 17%가 아닌 25%로 높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우르헨다 소송 판결 이후, 기후소송은 단순한 상징성을 넘어 정부에게 실질적인 책임을 묻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정부의 온실가스감축 책임을 묻는 기후소송이 전 세계로 확산했다.

2021년 독일에서 진행된 기후소송은 이전 소송들과 달리 기본권 침해의 범위를 미래세대까지 포함했다. 그렇기에 이전의 기후소송들과 비교해 진전된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판 당시에 독일 정부가 세운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이었다. 이에 대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55% 감축 목표를 그대로 진행하면 2030년 이후에 더 급격하게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의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은 독일 기본법에 적힌 ‘이후 세대가 생명의 자연적 기초를 보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내용과 상반된다고 밝혔다.

 

국내 첫 기후소송 공개 변론

4월 23일, 서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에 상응하는지를 묻는 국내 최초,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 공개 변론이 진행됐다. 이종석 헌법재판소 소장은 이번 변론의 주된 쟁점이 ‘정부가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불충분으로 인한 청구인들의 환경권 등 기본권 침해 여부’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현재 ‘탄소중립기본법’과 그 시행령을 통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청구인 측(청소년 환경단체 및 변호인 등)에서는 위와 같은 정부의 목표가 책임을 외면하고 후세대에 감축 부담을 떠넘기는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 13위로 높은 순위에 비해 감축률은 낮은 편임을 강조했다. 또한 2030년 이후의 세부 계획과 2030년까지의 계획이 실패했을 경우 대처방안이 없는 점을 지적했다.

정부 측은 “각 나라가 처한 사정과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하며 한국의 경우에는 탈탄소화가 어려운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즉각적인 감축이 힘들다고 반론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감축률이 낮은 이유로는 “한국이 에너지 소비가 많은 환경이며 경제구조가 제조업 중심이기에 현재의 목표도 도전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정부 측에서 제시한 감축 계획에 대해 2050년 탄소중립이 가장 큰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2030년부터 2050년까지는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탄소배출 감축, 선진국의 위선?

기후소송 사례가 증가하면서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목소리가 ‘선진국의 위선’이라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탄소 배출량 감축이 필요한데, 많은 탄소를 생성하는 개발도상국의 대응이 매우 빈약하다고 선진국들은 말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지금의 기후 위기는 이제 막 산업화에 들어가고 있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 1800년대부터 산업화를 해온 선진국들의 책임이라고 반박한다. 남아메리카의 모하메드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은 산업화를 위한 석유 개발로 인한 탄소 배출에 우려를 표하는 BBC 기자를 향해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안토니오 UN 사무총장이 “기후변화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도 어떤 집단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기후 위기는 전 지구적 문제이다. 그만큼 선진국은 산업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연구에 힘써야 하며, 개발도상국 역시 ‘탄소중립’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기후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후소송의 효과는 미미할지라도 그로 인해 기후 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쌓인다면 기후소송이 전 세계적으로 더 나은 환경 정책을 촉진하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김수현 기자

suhyeon_kim66@gm.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