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대한민국 연구개발(R&D) 예산이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되며 과학기술 정책이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특히 AI나 차세대 기술과 같은 주요 전략 분야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연구 생태계 전반에 회복과 도약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예산 35조 원 돌파, 20%에 가까운 증가율
정부가 발표한 2026년도 R&D 예산은 약 35조 3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약 5조 9천억 원, 19.9%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4.9% 수준으로 경제 규모에 비해 높은 R&D 투자를 유지하는 기조가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확대를 넘어 최근 수년간 이어진 혼란스러운 시기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2024년 대규모 예산 삭감 이후 위축됐던 연구 환경을 고려하면 이번 증가 폭은 과학기술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투자다. 박인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정부 역시 이를 연구 생태계 복원과 기술주도 성장 전환의 계기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 2배 확대…전략기술 집중 투자
이번 예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AI·반도체·양자·우주·원전’ 다섯 축으로 예산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106.1% 증가하며 사실상 두 배 규모로 확대됐다. 반도체,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 등 국가전략 기술 분야 역시 약 25~30% 수준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지원이 집중됐다.
AI 분야에서는 AI 반도체, AI와 바이오, AI 안전, AI를 활용한 과학연구 등이 핵심 세부 분야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서브 나노공정, PIM(Processing-in-Memory)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 등 ‘K-반도체 2.0’을 겨냥한 과제가 대폭 늘었다. 양자 분야는 50큐비트와 1,00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양자 센서·양자암호통신 등 5대 핵심 기술 확보를 목표로 삼았다. 우주·항공 분야는 한국형 발사체 후속, 달 탐사, 다목적·군사·기상 위성 등 전 주기를 포괄하는 프로그램이 늘었고, 민간 발사 서비스 육성 사업도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원전 분야에서는 차세대 원자로, 탄소 포집, 직접 공기 포집 등에 대규모 예산이 편성됐다.
전략기술 5축에 예산이 집중된 것은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기반 기술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인 경제 성장과 직결된다.
기초연구 14% 증가…연구 기반 회복 신호
기초연구 분야의 회복도 이번 예산에서 중요한 변화로 꼽힌다. 정부는 전략기술 강화와 함께 2026년 R&D 기조를 ‘Back to Basics’로 명시하며 기초연구와 인재 양성, 지역 균형을 병행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기초연구 분야에서 개인·집단연구 예산은 전반적으로 증액된다. 개인 연구의 경우 리더·중견·신진 연구 사업이 2025년 대비 확대되었고, 집단연구에 해당하는 SRC·ERC·MRC·CRC와 기초과학연구원(이하 IBS) 등도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까지 다양한 증가율이 반영됐다. 대표적으로 일부 전략 분야 선도연구센터(SRC·ERC)는 2026년 예산이 전년보다 20~40% 수준으로 늘어났으며, IBS 관련 항목 역시 9% 안팎의 증가가 확인된다.
인재 양성과 도전적 연구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도 확대된다. Top-tier 프로젝트, K-HERO, BRIDGE 등 우수 연구자와 고위험·도전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의 예산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비율로 증가했다. 특히 K-HERO 사업은 2025년 대비 200% 이상 확대 편성되어, 고위험·고수익 연구를 지원하는 대표 사업으로 비중이 커졌다.
지역 R&D 측면에서는 지역 자유형 R&D, 지역혁신플랫폼, 지역 개방형 실험실(Open-Lab) 등을 통해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예산표 기준으로 일부 지역혁신플랫폼 사업은 2025년 대비 20% 안팎, Open-Lab 사업은 2배 가까이 늘어난 항목이 확인된다. 이러한 사업들은 지역의 연구 인프라와 인재 양성을 지원해 연구개발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돼 있다.
늘어난 예산, 남은 불만의 목소리
기초연구 예산이 14.6% 증가했으나 전체 R&D 예산 규모가 대폭 확대되면서 정부가 기초연구 확대를 위해 공언한 R&D 10% 비중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2025년 5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기초연구진흥협의회를 통해 R%D 예산에서 기초연구 사업 비중을 10% 이상으로 유지한다는 ‘기초연구 질적 고도화를 위한 정책 방향’을 심의·의결한 바 있다,
이처럼 기초연구 예산 규모를 놓고 아쉽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기초연구과제 선정 발표를 놓고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제는 선정률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2025년 8월 27일 기초연구 사업 2차 신규 과제 2,176개 선정 결과를 공개했지만, 기초연구 과제 선정을 상·하반기로 나눠 진행해 선정률이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경쟁률을 보여줄 수 있는 과제별 선정률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과기정통부는 2015년 이후로 선정률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연구자들은 과기정통부와 한국연구재단이 기초연구 사업 설명회 등에서 꾸준히 선정률을 공개해 왔고 R&D 삭감이 이뤄진 2023년부터 일체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2025년 11,827개까지 줄었던 개인 기초연구 과제 수를 2026년 15,311개로 대폭 늘린다는 방침이지만, 과기계에서는 선정률을 모르는 만큼 이 또한 실제 갈증 해소에 도움을 줄 만한 수준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회복을 넘어 도약으로, 지속 가능한 연구 생태계 마련
이번 예산은 연구개발 전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강화가 특징이다. 연구 인력 양성 관련 예산은 29.9% 증가했고 기술 사업화 및 실증 단계 지원 역시 늘어났다. 이는 연구 성과가 실제 산업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강화하려는 시도다. 또한 정부는 초기 위험이 큰 연구 분야에 대해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마중물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민간이 쉽게 투자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국가가 먼저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후속 투자와 산업화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국제적으로도 R&D 투자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지표로 평가된다. OECD 주요 국가들은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 대한민국 역시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높은 국가 중 하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조정으로 인해 경쟁력 약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이번 예산 확대는 이러한 흐름을 반전시키고, 다시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기술 혁신이 국가 경제 구조를 재편하는 상황에서 R&D 투자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 성장에 대한 ‘선제적 투자’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2026년 R&D 예산 확대는 효율성과 성장, 단기 성과와 장기 기반을 동시에 고려한 균형적 접근이다. 예산 확대가 곧바로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예산 증액은 위축됐던 연구 생태계를 회복시키고 기술 경쟁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R&D 예산안은 역대 최대 규모로서 연구 생태계의 회복을 넘어 완전한 복원과 진짜 성장 실현을 위해 파격적으로 확대했다”라며 “안정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R&D 투자시스템을 통해 과학기술계와 함께 지속 가능한 연구 생태계를 확립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