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영화와 나이 든 극장의 만남 ‘광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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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1.07. 14:48]

  영화를 보는 것은 점점 쉬워지고 있다. 곳곳에 세워진 대형 영화관에서, 혹은 집에서도 PC,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관람이 쉬워지면서 외면받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 바로 예술영화다. 과거가 맴도는 거리 충장로에 위치한 광주 유일의 예술영화관 ‘광주극장’을 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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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과 예술의 영화관, 광주 극장

20151016_170015  광주극장은 1934년에 처음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영향으로 설립되었던 수많은 영화관과는 달리 광주극장은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극장이다. ‘제국관’ 등 한때 광주극장과 경쟁했던 수많은 극장이 사라지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서는 와중에도 광주극장은 단관 체제를 유지해왔다.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에서 제 모습을 간직해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건물을 전혀 개수하지 않아 광주극장은 예술영화 전용관임에도 보통 100명 정도를 수용하는 아트하우스와는 다르게 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적인 서부극 ‘슬로우 웨스트’

  입구서 표를 끊으니 상영관으로 입장하는 문이 보였다. 상영관 내부는 적막했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넓은 극장에서 홀로 관람한 영화는 ‘슬로우 웨스트’라는 영화였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서부 개척시대, 두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무법지대인 서부를 여행한다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서부극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슬로우’ 웨스트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서부극의 전형과는 선을 긋는다.

20151016_170404  사랑하는 여인이 어느 날 서부로 사라지자, 젊은 청년은 그녀를 찾아 서부로 떠난다. 그러나 곧 청년은 적대적인 군인들과 마주하고 안내비를 요구하는 한 남자의 도움을 받는다. 서부는 청년의 생각보다 가혹하고 잔인한 곳이며, 청년은 안내자를 자처하는 남자조차 믿지 못한다. 하지만 둘은 함께 여행하면서 점점 신뢰가 깊어지고, 이윽고 남자는 청년의 연인에 대한 진실을 청년에게 말한다.

  슬로우 웨스트를 완전히 새로운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버디 영화라는 이미 익숙해진 소재를 사용한 데다 청년과 남자 사이의 관계 또한 기존 영화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서술된다. 여자를 노리는 악당과 사랑을 쫓는 주인공이라는 전형적인 낭만주의적 줄거리도 그렇다.

  하지만 슬로우웨스트가 그려내는 서부에는 긴장감과 통쾌함이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총에 맞아 죽은 부부강도단의 아이들과 나무에 깔려 죽은 나무꾼이,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삶의 허무함과 애환이 가득했다. 인간의 삶에 주목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슬로우 웨스트는 분명히 예술적인 영화다. 예술영화는 관객들에게 다른 시선과 생각을 요구하는 영화였으며, 그렇기에 대형 상영관과는 다른 공간인 광주극장에 어울리는 영화였다.

 예술과 영화, 그리고 극장

  흔히들 영화는 제7의 예술이라고 한다. 건축과 음악, 시와 같은 기존의 다양한 예술을 종합하는 새로운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의 영화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무난한 데이트 코스, 할 일 없는 주말의 눈요깃거리. 영화는 우리에게 그 정도 의미가 아니었을까.

  광주극장은 낡은 곳이다. 화려한 장식도, 멋진 디자인과 맛있는 간식도 없다. 그러나 광주극장에는 관객들이 선물한 그림들, 예술품들이 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날의 흔적들과 아름다운 영화들이 모두 모여있다. “40년대, 60년대에는 극장 말고는 다양한 문예관이 없어서, 결국 극장을 통해서 많은 문화활동이 일어났죠.” 광주극장 김형수 이사의 말이다. 광주극장은 단순한 극장이 아닌 문화의 전 분야가 모이는 공간이었다.

  광주극장은 그것이 상영하는 예술영화를 닮았다. 예술을 아우르는 영화처럼 광주극장은 문화를 아우른다. 콘서트, 연설, 연극 등 다양한 행사가 한때 광주극장에서 이루어졌었으며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광주극장에서 영화의 새로운 의미와 다양한 문화의 만남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행운일지도 모른다.

 서승우 기자 chrd5273@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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