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매년 5월만 되면 5.18의 피해자와 가족, 광주시민, 심지어 외지인들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생각이나 그림이 떠오르면서 불안하고 답답해지며 때로는 매우 강한 분노나 슬픔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 ‘5월 증후군’은 광주시민인 나에게도 찾아온 것 같다. 5월의 달력을 보면 18일이라는 날짜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갑자기 망월동의 묘역이 떠오르면서 울컥해지는 것이다. 물론 나는 5.18을 직접 경험한 세대의 광주시민은 아니다. 하지만 5.18을 직접 경험한 세대인 가족, 친척들, 선생님들 속에서, 그리고 <화려한 휴가>, <26년> 같은 영화를 통해서 계속해서 접해온 5.18은 나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한참 ‘5월 증후군’에 시달릴 무렵,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취재하게 되었다. 그 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광주 상무지구에 있는 광주도시공사 빌딩의 10층에 있는 이곳에 들어서자 마음 한쪽이 답답해졌다. 기자로서 그곳에 방문했기에 생겨난 불안감과 ‘5월 증후군’이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대상자인 명지원 팀장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눈을 한곳에 두지 못한 채 이리저리 굴려댔다. 그 와중 눈에 띄는 것은 화분에 심어진 한 그루의 나무였다. 그 나무엔 이파리 모양의 카드들이 매달려 있었는데, 카드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글귀들이 쓰여 있었다. 후에 팀장님께 물어보았더니, 그 나무는 ‘소망나무’라고, 내담자분들께서 직접 쓰셔서 걸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삐뚤삐뚤한 그 글씨들에는 왠지 내담자들의 마음속의 한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센터 내부에는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대한 결과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담자분이 만드신 ‘집 모형’이었다. 집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과 집 주위에 꽁꽁 둘러싸여 있는 울타리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팀장님께선 ‘이 내담자분이 집 모형을 만든 이유는 5.18 때 죽은 자기 아들에게 주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하셨다. 그분은 무엇으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서 경비병을 세워놓았고, 빼곡한 울타리를 쳐놓았을까.
약간의 씁쓸함을 머금은 채 이날의 취재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마냥 씁쓸하지만은 않았다. 광주트라우마센터에 근무하는 분들처럼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줄어든다. 심지어 “이젠 지겹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5.18은 그저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그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그들을 과거의 그 날로부터 나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좀 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전준렬 기자 dynamic98@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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