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된 학생들, 지역과 교감하는 지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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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동안 학생들을 ‘졸업’시킨 이충재 씨를 만나다.

임동지역아동센터는 광주 광역시 북구 임동 평화아파트 단지 옆의 좁은 골목길에 있는 한 주택의 2층에 있다. 녹색 페인트를 칠한 계단을 올라가면 문 한 짝이 보인다. 6시 반, 초여름의 어둠이 내리는 시각이다. 키가 허리 정도밖에 오지 않는 아이들 몇 명이 탁자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교 시간과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 사이를 이곳에서 보낸다. 이충재 (전기전자, 박사과정)씨와 본 기자는 센터의 직원 분들께 인사를 드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센터의 직원 분들은 이충재 씨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이충재 씨는 벌써 7년째 임동지역아동센터에서 배움마당의 수학 선생님으로 봉사하고 있다. 배움마당 프로그램이 2010년 2월부터 시작했으니 배움마당의 탄생과 함께한 셈이다. 본교 대외협력처에서 제공하는 배움마당 프로그램은 지스트 학생이 일주일에 한 번씩 광주 내 아동 센터에 가서 초중고교생에게 수업을 하는 봉사 프로그램이다.

자가용이 따로 있는 그에게도 임동지역아동센터로 가는 길은 가깝지 않았다. 본래 오후 6시 반까지 가야 하는 길이지만 차가 막힐 걱정 때문에 이충재 씨는 오후 5시에 일찌감치 출발한다. 가는 길에 이충재 씨는 2년 전만 해도 센터에 중학생들이 많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예전에 같이 공부하던 학생들은 하나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야간자율학습과 학원 등에 시간을 뺏겨 배움마당을 떠나갔다. “전부 초등학생이라서요. 완전히 어린이집 분위기일 텐데…” 중학생 한 명이 남아 같이 공부해왔지만, 취재 당일에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고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충재 씨는 과자를 챙겼다. 과자가 없으면 아이들이 집중을 못 한다며 웃었다. 센터에는 아이들이 서너 명 있었지만, 이충재 씨는 한 아이를 유독 반겼다. 예전에 멀리 이사해 센터에 오지 못하게 된 아이가 오랜만에 센터를 방문했다고 한다. 아토피 때문에 대안학교를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던 그 아이는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공부방에는 만화책과 아동용 책이 빼곡했다. 방의 중앙에는 책상이 머리를 마주 대고 2줄로 늘어서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아이들이 문제가 인쇄된 종이를 들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충재 씨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문제지를 채점했다.

지스트 학생들, 지식의 씨앗을 뿌리다

<이충재 씨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문제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선생님 안경 벗으니까 완전 이상해요”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에,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에 농담이 오갔다. 처음 몇 분을 집중하던 아이들은 금세 지루해졌는지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수업이 30분을 넘어가자 한두 명의 아이들이 자리를 떠나 창밖을 구경했다. 이충재 씨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50분이 지나자 그날의 문제를 모두 푼 아이들은 공부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한 시간 째, 마지막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 이쯤만 하자는 합의가 오고 가며 그 날의 수업은 끝이 났다. 이충재 씨는 그날은 유독 아이들이 지쳐 보였다고 했다. 센터의 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이 학원에 다녀온 직후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에서 이충재 씨를 거쳐 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편부, 편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언제나 어려운 형편이라고 한다. 피로에 지친 부모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깊이 쏟고 교육할 수 없기에, 아이들은 의지는 있지만 공부를 어려워한다고 한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편부모 가정이 없다며, 이충재 씨는 다행이라고 했다.

지금도 가끔 이충재 씨를 보러 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로 진학한 아이들이 센터에 들러 간혹 수업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충재 씨는 일반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아이들이 더 도움이 필요하다며, 수업을 정기적으로 해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아이들도 얼굴을 보러와 밥 한 끼씩 얻어먹고 간다고 한다.

이충재 씨뿐만 아니라 다른 지스트 학생들도 자신이 받은 지식을 지역사회에 나누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 전남대와 광주교대를 비롯한 대학들의 연합봉사동아리인 희망야학에 많은 지스트 학생들이 가입돼 있으며, 지스트 안에도 교육봉사동아리인 어깨동무가 있다. 학교 측도 인근 초등학교와 아동센터에 과학도서를 기증하는 한편, 지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등 지역협력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충재 씨는 지난 기에는 약 20명 정도만이 배움마당에 참여했는데, 13기 들어서 60명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봉사 프로그램은 교재비 등의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지원해 주지만,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여전히 힘든 일이다.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7년간 가르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충재 씨는 “처음 몇 년은 힘들어서, 당장에라도 그만둘까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계속하게 됐어요. 정이라는 게 무섭잖아요”라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하는 것은 의무감과 호기심이지만, 그 오랜 시간을 뒷받침해준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서승우 기자 chrd5273@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