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그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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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노란색 리본을 달고 바닷속으로 안타깝게 가라앉은 이들을 추모한지도 다시 한 달이 지났다. 2년 전 대한민국은 갖가지 감정이 뒤섞여 모든 사회 활동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언론의 오보로 인한 혼란. 아직 꽃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이들에 대한 슬픔. 속보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난. 이기적인 선장과 일부 선원들에 대한 분노.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정치적 악용으로 인한 갈등. 그렇게 2014년 4월 16일은 대한민국 역사 속에 지우지 못할 가슴 아픈 한 장으로 남아버렸다.

그날은 나에게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평일이었음에도 매일 먹는 학생식당이 아닌 학교 밖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기 때문이다. 식사시간이 조금 지나서인지 식당 안에 손님이라곤 친구와 나 둘뿐이었다. 국밥이 나오고 우리는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조그만 식당을 가득 채우는 소리라고는 등 뒤에 있는 텔레비전 소리뿐이었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친구가 말했다.

“어? 저기 무슨 사고 났나 본데?”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에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배가 한 척 있었다. 자막을 읽던 나는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말에 놀랐지만, ‘전원 구조’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는 이내 안도했다.

‘그래,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사고가 나도 금방 구조되는 게 정상이지.’ 그렇게 나와 친구는 으레 벌어지는 흔한 사건·사고라고 여기며 식당을 나섰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은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게 무슨 속보인가 싶었지만, 내용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번에는 전원 구조가 아닌 승객 480여 명 중 170여 명이 구조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다 구조된 게 아니었나? 그보다 아직 절반도 구조하지 못했으면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말인데…….’ 이렇게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가 벌어졌다. 그날부터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뉴스 속보를 확인했다. 생존자가 몇 명인지, 한 명이라도 더 구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중간고사를 앞둔 시점에도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차가운 물 속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는 잠수사들을 위해 손난로를 보냈지만, 빠른 물살과 궂은 날씨로 인해 구조작업은 더뎌져만 갔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에는 어떤 회의감마저 들었다.

사람들은 무책임한 선장과 일부 선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요구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일부는 우리 사회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사고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안전에 대해 소홀히 생각하고 대충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안전 불감증과 각종 안전 규정들을 지키지 않아도 자기 주머니만 배부르면 눈감아주는 정경유착은 척결해야 할 1순위였다.

그리고 어느새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고는 점점 정치적으로 변질되어갔고 사람들은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이제 일부에서는 ‘바다에서 일어난 단순 교통사고’로 취급하기도 하고 유가족들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희생자들의 넋과 그 사건의 본질이다. 어떻게 해야 유사한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금이라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사건 후에 있었던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 중에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가 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언뜻 우습게 여겨지는 ‘한여름에 털장갑 장수’나 ‘태공에게 잡혀 온 참새’와 같은 가사가 주를 이룬다. 그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당일 열렸던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 상식화되어 가는 그런 모습들이 많습니다. 주변에.”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더 상식적인 사회가 되었는가?

그날의 기억

 

이영민 (지스트대학 13학번, 물리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