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연구가 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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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면 김동욱 사진올해 5월 초, 한미 연합 한반도의 대기질 측정 캠페인 KORUS-AQ를 위해 환경과학원(NIER), 미항공우주국(NASA) 및 여러 대학교 등으로부터 100여명의 대기연구자들이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 모였다. 각자 팀별 제작한 장비를 항공기에 탑재해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며 대기 중 다양한 종류의 기체와 에어로졸을 측정했고 6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나는 환경공학부 ATMOS Lab 소속으로 이 캠페인에 참여하여 같이 일하면서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오산 공군기지 활주로 옆 한 격납고에는 대기과학자들을 위한 실험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보통 새벽 5시부터 회의가 시작되었다. 당일 비행경로와 기상예보, 오염물질 예보 등을 발표 등이 진행됐다. 각자 장비를 점검하고 오전 8시에 비행기가 이륙하면 26대의 장비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비행기 내부는 굉장히 더웠다. 비행 목적에 따라 고도를 급격하게 바꾸면서 멀미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승무원이 구토를 하기 도 했다. 8시간동안 이어진 비행동안 과학자들은 헤드셋으로 끊임없이 이벤트를 보고했고 미션 디렉터는 인천 관제탑과 통신하며 비행경로를 체크했다.

 

비행이 끝나자마자 격납고에서 비행 브리핑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 도중에 전투기의 이륙 굉음이 들릴 때 마다 일제히 귀를 막았다. 오후 5시 반 쯤 회의가 끝나면 퇴근하고 숙소로 돌아가 자료를 손보고 업로드하고 나면 아무런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비행이 없는 날에도 렌치와 드라이버를 들고 장비를 분해해 광학기기를 보정 하거나 캘리브레이션 가스를 교체하기 위해 알루미늄 실린더를 들고 바쁘게 움직였다. NASA의 한 연구원은 필드 캠페인이 많을 때는 1년 중 절반을 필드에서 보낸다고 한다. 그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을 텐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친절 했으며, 절대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프로답기 위해서 보여야 하는 성실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을 그토록 열심히 연구하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자신이 속한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문제없이 수행하는 것이 프로다운 것이라는 정신일 것이다. 필드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책임감은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이끌어 내고 이후 일자리, 프로젝트 수주, 연구비 지원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왜 그들은 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연구비를 얻어 연구를 지속하려 할 까? 그들이 연구 활동 자체로부터 얻는 정신적 가치가 없다면 그들의 활동은 생계수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우리는 아이들에게 놀라움을 가르치고 지식의 목적은 그 놀라움의 근원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자연의 놀라움을 느끼는 데 에서 지식탐구의 가치를 찾은 것이다. 아마도 연구자의 길을 택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뭇 독특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다. 연구자를 꿈꾸는 혹은 적어도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이학,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졸업생의 절대 다수가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다소 기이한(?) 통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넌 대학원 안 갈 거야?” 라던가, “군대 가려고?”라는 물음은 다른 대학교에선 낯선 질문이지만 우리에겐 매우 친숙하다. 우리 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적잖은 학생들이 분위기에 이끌려, 혹은 다른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여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원 진학을 당연시 여기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인생관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우리 대학의 Liberal Arts 교육이 지향하는바 또한 이공계 학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꾸려 나가는데 필요한 고민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자연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과학기술원에 진학했다는 이유로 우리 또한 그래야만 할 필요는 없다. 연구는 힘들고 때로는 지루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흥미 있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 혹은 연구 자체에 흥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흥미를 주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행복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지, 고등학교시절 특정 과목의 성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GIST College 물리학 전공 김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