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트와 22년의 인연, 이용탁교수 퇴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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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더운 오후의 어느 날, 길도 나있지 않은 동네 과수원 부지에서 시끄러운 드릴소리가 들려왔다. 넓은 대지에 걸친 거대한 공사는 멈출 줄 몰랐다. 건물의 골격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주위에서 여러 사람들이 의논을 하곤 했다. 개교 당시부터 22년간 지스트에 재직해온 이용탁 교수(전기전산컴퓨터공학부, 65)가 지난 8월 29일 퇴임식을 가졌다.

 

이용탁_사진

사진=이건우 기자

지스트의 처음 환경은 어땠나, 지스트의 초석은 어떻게 다져졌나

90년대 첨단단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길도 없는 과수원 땅이었다. 교수들이 일할 공간도 없어 가까이 있는 비아중학교의 빈 교실 세 개를 빌려 근무했다. 내가 지스트에 처음 왔던 94년은 뉴스에 나올 정도로 굉장히 더운 해였는데, 에어컨이 없으니까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물을 뿌리고 다녔다. 비아중학교에서 10분정도 과수원 사이로 걸으면 지금의 지스트가 있는 공사 현장이 나온다. 당시에는 공사현장과 그 안에 있는 식당에서 현장작업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일을 했다.

학생 모집은 94년 말 가을에 공고를 하고 95년부터 뽑기 시작했다. 초기 학내에는 마땅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면접을 했다. 그렇게 전체 대학원생 180명을 뽑았다. 교수를 채용하는 경우에도 교수의 전공분야를 생각하면서 선발했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과 같은 경우 처음 나와 같이 부임한 교수가 김기선 교수와 송종인 교수였는데, 각 분야별로 1기 교수들이 들어오니 앞으로 어떤 분야의 교수를 뽑을지 의논하고 자연스럽게 교수를 뽑을 수 있었다. 연구 분야는 앞으로 미래 전망이 가장 좋은 첨단 분야 다섯 개를 선정하여 시작했다. 그렇게 25년 전 시작된 계획이 지금의 지스트를 만들었다.

지스트에 왜 오게 되었나, 막 생긴 학교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지스트에 오기 전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16년 정도 근무했다. ETRI는 지금의 스마트폰 이동통신, 광통신등을 연구한 실적이 있는 훌륭하고 환경이 정말 좋은 연구소다. 또한 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라, 굉장히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조직이다. 연구소에서 실무 연구원으로 일할 때는 내가 직접 연구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조직의 특성상 경력이 늘어남에 따라 맡는 직책이 높아지게 됐다. 그때부터는 직접 연구를 하지 못하였다. 항상 연구비를 받으러 다니고 관리를 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었다. 그 생활에 약간 회의가 들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살던 차에 지스트에서 부임 제의가 들어왔다. 지스트는 대학원으로 시작하려는 단계였기 때문에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백지인 초기의 지스트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오게 됐다.

처음 맡게 된 학생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을 데리고 일하려고 하니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다. ETRI에서는 그 일에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 일해서 효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학생들은 실수투성인데다 장비를 망가트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처음에는 잘하지 못했던 학생들이 잘 배워서 그 분야의 일을 잘하게 되고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훌륭해진 모습을 보고 굉장히 뿌듯했다.

맨바닥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힘들지만 다른 의미로 굉장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틀이 짜여진 곳에 가면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백지인 지스트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게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었다.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

내게 1회로 들어온 학생이 세 명 있었는데 남학생 둘은 박사학위를 받고 경희대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원이 됐고, 여학생 한명은 다른 분야에서 박사를 받고 강원대 교수가 됐다. 1기 학생들과 고생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 기억에 남는 학생은 인도에서 온 친구다. 죽어도 실험을 안 하는 친구였다. 계산만 하고 있는데 그것도 굉장히 느렸다. 그래서 그런지 고난이 많았던 친구였다. 졸업이 되지 않을 것 같아 1년을 휴학 했지만 결국에는 박사과정 8년을 마치고 인도의 대학 교수로 갔다.

또 하나 이야기 하자면, 다른 교수의 지도학생이던 파키스탄 학생인데, 그 교수가 일을 못한다고 쫒아냈었다. 그 친구는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는 상황인데 갈 길이 없으니까 정말 패닉에 빠져 있었다. 결국은 내 지도로 박사과정을 하며 좋은 논문을 써서 졸업하고 올 9월부터 미국의 표준연구소로 갔다. 다사다난했지만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결과를 성취한 것을 보니 함께 했던 고생도 기억이 나고 뿌듯하기도 하다.

퇴임 후 계획은.

“당분간은 학교에 남아 지금 주어진 프로젝트를 계속 할 것이다. 두 개의 과제가 있는데. 드론 자율주행에 필요한 3D카메라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와 레이저로 드론에 파워를 공급하는 프로젝트이다. 현재 드론은 배터리로 동력을 얻기 때문에 오래 떠있지 못한다. 그 문제를 레이저로 무선전력을 보내는, 즉 레이저로 파워를 전송해서 배터리를 공급해주는 기술로 해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스트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어려운 상황을 마주했을 때 피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배우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내가 처음 가르쳤던 학생들의 경우, 장비가 체계적으로 설치되지 않은 환경에서 연구했다. 가령 큰 장비가 있어도 그것을 보조하는 작은 장비들이 없었다. 그래서 장비들을 가져다 셋업하고 매뉴얼 보고 초기의 조건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이들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으며 독자적인 연구자로 발전하는 것을 보았다. 부족한 환경에서만 배울 수 있는 해결능력은 개인의 연구역량을 성장시켜 줄 수 있다.

연구를 지속하느냐 혹은 기업에 가느냐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다. 보수를 많이 받고 대기업에 가더라도 그곳에도 어려움은 여전히 있다. 기업은 특히 피라미드 조직이라 올라갈수록 누군가는 떨어져 나가야되는 구조이다. 회사에서 필요없다고 쫒을 수도 있지만 조직생활을 못 견뎌서 나오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개인적으로는 개인이 성장할 기회가 많은 조직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나 또한 ETRI에서 지스트로 올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지스트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이제 새롭게 만들어가는 출발단계였기 때문이다. ETRI에 있을 때보다 월급도 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기반을 닦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많이 배웠고 동시에 많은 기회를 얻었다. 도전적인 자세와 어려움에 대해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라. 나와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그랬듯, 좋아하는 것을 따라 어려움을 해쳐나가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다 보면 점점 꿈에 가까워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동건 기자 unlimitlife@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