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동안 경남지역에 지진이 지속해서 일어나고, 그곳에 있는 원전의 안전성이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기후변화에 대한 한 보고서가 떠오르는 시기이다. “본 연구팀은 갑작스럽고 비가역적인 변화를 촉발하기 충분한 기후변화의 정확한 수준이 무엇인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임계점(threshold)을 넘어서는 위험은 증가한다고 중간신뢰도로 평가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PCC에서 발표한 2014년 기후변화 보고서의 내용이다.
IPCC의 연구팀은 이 보고서에서 기온이 상승하는데 인간의 활동이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진단을 높은 신뢰도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얼마나 기온이 상승해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구의 환경이 복원 불가능한 상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앞으로 기온이 지속해서 상승하는 것은 중간 신뢰도의 정도로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신뢰도라는 기준을 통해, 통해 과학이란 가설에 대한 확인을 거쳐나가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끔찍한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확인된다면, 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비록 중간 신뢰도의 위험성일지라도 대비해야 한다는 뜻을 각국 정부에 전했다.
이러한 보고서가 경고한 급격한 기후변화가 발생할 중간신뢰도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전 세계는 막대한 경제적·산업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협의했다. 대한민국 또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37%(317만 톤)만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세계가 공적 토론의 장에서 과학이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과학은 사용되는 방식에 따라 때때로 매우 모순적으로 이용된다. 일본의 정치인과 기업가들은 원전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지진 최대발생국이라는 자국의 사정을 무시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해 과학을 사용했다.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과학적으로 매우 적음으로 원전을 만드는데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었다. 기후변화에 대처했던 자세와는 매우 다른 태도였다.
슬프게도, 2012년 당시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과 고리지역 주변으로 지진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단층이 지나며 이 단층들은 각각 최대 8.3과 7.6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의 용역보고서를 신뢰도 문제를 제기하며 무시했다. 그 이후 한국 정부가 내진설계 6.5 기준의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던 것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가정한 과거 일본 정부의 상황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는 사고가 나면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생기는 원자력발전소 같은 시설을 건설하지 않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지적을 과학을 이용해 회피한 것이다.
동일본 지진이 있고 난 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사태의 원인이 과학을 원전건설에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가·관료·기업인들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의견이 일었다. 과학은 특정 단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 전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부디 과학이 남용되거나 사적 이익을 위해 이용되지 않고 위험 가능성을 예측하는 공적 토론의 도구로서 활용되길 바란다.
김수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