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일부터 10일 사이,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각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 발표에서 과학 분야의 상은 미국과 유럽, 일본에게 돌아갔다. 일본은 올해 도쿄공대 명예교수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가 ‘오토퍼지 메커니즘(autophagy mechanism)’을 최초로 관찰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일본은 같은 분야에서는 2년 연속, 노벨상 전체로는 2014년 물리학상을 포함해 3년 연속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총 2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과학 분야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으며,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기를 맞아 많은 과학계 관련자 및 언론의 지적이 이어졌다.
언론에서 주로 지적되는 대한민국 과학계의 문제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적다는 점이다. 실제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공학 계열의 연구에게는 거의 시상되지 않는데, 노벨물리학상의 경우 2010년대에는 2014년 일본의 청색LED관련 연구를 제외하고는 전부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에 상이 주어졌다. 그러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적다는 지적과는 반대로 한국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OECD의 MSTI(Main Science and Technology Indicators)에 따르면, 한국은 GDP 대비 R&D 지출수준에서 세계 1위 수준인 4.29%(2014년 기준)를 R&D에 투자하고 있으며, 기초과학에 투자되는 금액 역시 전체 R&D 투자금액 대비 39%로 2006년의 23.1%와 비교해 큰 수치로 증가했다.
그러나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것만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올해 6월 <네이처>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연구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인 이유(Why South Korea is the world’s biggest investor in research)’라는 기사에서 “한국은 노벨상을 받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 야망이 돈으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며 한국 과학계의 연구 풍토를 지적했다. 같은 기사에서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중 70% 가량이 미국에 계속 머물 것이라고 답했다는 US National Science Foundation(NSF)의 통계를 인용하여 ‘인재 유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또한 이러한 연구지원이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9월 23일 서울대 의대 호원경 교수는 연구자 주도의 기초과학 연구 지원 확대를 위한 청원서를 포스텍이 운영하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 올렸다. 지스트에서는 생명과학부의 박우진, 전영수 교수 등이 이에 동참했다. 이와 관련해 박우진 교수는 “한국은 미국 같은 외국에 비해서 연구자가 직접 하고 싶은 연구 주제를 제안하여 연구비를 지원받는 bottom-up형식의 연구비 지원이 크게 부족한 편이다. 중요한 연구주제를 파악하는 것은 연구자들이 되어야 하는데 정부 고위 공무원이나 이와 관련이 있는 소수 과학자들이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원하는 전체 금액은 늘어났지만, 소수 대형 프로젝트나 단체에 지원이 집중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곳에 소속되지 않은 연구자들은 오히려 연구비를 타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노벨상을 타는 것은 뛰어난 대표 선수가 필요한 올림픽과는 다르다. 전혀 새로운 창의력이 필요하고, 이는 소수의 대형 연구가 아닌 다양한 풀뿌리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고 말했다.
2011년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초강력 레이저과학 연구단 남창희 단장(물리·광과학과)은 “매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기마다 언론의 일본과의 비교 등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의 비교가 기초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며 “과거에 비해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나 지원은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역사가 1950년대 이후로 아주 짧은 편이고,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기 때문에 기초과학부터 차근차근 뿌리를 다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남 단장은 “우리나라의 연구지원은 지나치게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최근 화제가 된 중력파와 같이 2~30년씩 길게 기간을 두고 연구해야 겨우 성과가 나오는 기초과학분야의 연구는 어려움이 따른다”며 성과 위주의 지원 문제를 지적했다.
성과 위주의 지원뿐 아니라 트렌드를 모방하기만 하는 연구 학풍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남창희 단장은 “얼마 전 알파고가 화제가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AI) 분야를 연구하고, AI분야에 많은 지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남들이 하는 연구를 후발주자로서 쫓아가는 것은 기초과학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긴 시간을 걸쳐 성과를 내는 기초과학에서는 성과가 나고 이슈가 된 이후에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박우진 교수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논문 등의 성과가 없으면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최근의 추세를 쫓아 연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에서 깃발을 들고 있는 주자는 서양이나 일본이고, 기존의 것과 다른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박우진 교수는 한국 사회가 노벨상에 가지는 관심에 대해서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노벨상이 너무 과학계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노벨상을 한두 번 받는다고 해서 전체적인 수준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에 연연하기 보다는 우수한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과학을 연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학자들은 과학이 재밌어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충분한 지원이 있으면 성과는 따라올 것이다”고 말했다. 남창희 단장 또한 “1950~60년대의 발아기를 거쳐 1990~2000년대가 한국 과학의 성장기였다면, 2010년대는 개화기”라며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한다면 자연스럽게 결실이 얻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아직 시기상조이지만, 바람직한 연구여건 마련을 위한 꾸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국내 많은 과학인의 바람인 노벨상 수상도 바람만으로 남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기 기자(ssagage08@gist.ac.kr)
그래프 = 윤지현 디자이너 자료출처 OECD MSTI DATABASE 2016-1 / 공개일: 2016년 6월 17일.
삽화 = 채유정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