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터, 어디까지 왔을까?

0
5832

현실화되는 양자컴퓨터. 세계에서 앞 다투어 개발 노력

[기사입력=2015.05.15. 15:19 ]

<그림 1. 최초의 상용 양자컴퓨터인 128큐빗 D-wave one에 장착된 프로세서>

컴퓨터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데스크탑, 노트북은 물론 우리가 매일 손에 들고 사는 스마트폰도 고성능 컴퓨터다. 이는 개인을 넘어 학교, 정부기관, 국가에게도 해당된다. 컴퓨터 없이는 현재 시스템 유지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거대한 수요에 힘입어 컴퓨터 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이어왔고, 실리콘 기반의 하드웨어들은 한계치를 향해 상향평준화 되는 추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자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컴퓨터 능력의 한계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캐나다의 D-wave systems사가 2011년엔 128큐빗으로 이뤄진 세계 최초의 상용 양자컴퓨터 ‘D-wave one’, 2013년엔 512큐빗의 ‘D-wave two’을 선보인 것이다. 학자들은 양자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연산 처리속도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암호해독, 신약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양자 컴퓨터는 어떻게 작동하며 어디까지 개발됐을까?

양자 컴퓨터의 원리 = 고전역학의 작동방식을 고수하는 기존 컴퓨터에서 양자적인 효과는 방해물처럼 여겨진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 양자 컴퓨터에서는 양자 효과가 주된 작동원리로 이용된다.

일반 컴퓨터는 비트(bit, binary digit)를 단위로 연산한다. 반면 양자 컴퓨터는 큐빗(qubit, quantum bit)을 사용한다. 다른 점이라면 비트는 01을 표현할 수 있지만 큐빗은 01 그리고 그 둘의 중첩(Superposition)상태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양자계가 파동의 중첩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림 2. 슈뢰딩거의 고양이. 50%의 확률로 독약병이 깨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진 고양이가 산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Superposition)되어 있다가 상자를 열어보면(측정하면) 산 상태 또는 죽은 상태로 붕괴된다. 그림=문지환>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양자컴퓨터는 연산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어떤 함수의 근을 찾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근이 0부터 1023 사이에 있다고 가정하자. 하나씩 대입해가며 근을 판별하는 시스템에서, 10개의 비트를 가진 고전 컴퓨터는 0에서 1023까지 하나하나 대입해가면서 최대 1024번을 연산해야한다. 이에 반해 10큐빗의 양자 컴퓨터는 0부터 1023까지 수를 중첩시켜 한 번에 해를 얻을 수 있다.

즉 양자 컴퓨터는 중첩 원리를 이용하여 병렬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다. 물론 기존의 컴퓨터로도 병렬계산을 할 수 있다. 하지만 10개의 큐빗을 가진 양자 컴퓨터를 대체하려면, 10개의 비트를 가진 컴퓨터 1024( )대가 있어야 한다. 100개의 큐빗을 가진 양자 컴퓨터가 한 번에 할 연산을 고전 컴퓨터로 대체하려면 , 즉대가 필요한 것이다. 즉 양자 컴퓨터의 경우 큐빗 숫자 증가할수록 계산 속도가 지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기존 컴퓨터의 경우 비트 숫자가 증가할수록 선형적으로 증가한다.

그렇다면 중첩효과가 양자컴퓨터의 계산 속도를 어떻게 높여주는 것일까? 이는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양자현상 덕분이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패러독스로 제시했던 이 현상은, ‘한 입자를 측정하는 행위가 다른 입자의 상태를 변화 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전자에 대해서 위쪽 스핀을 0, 아래쪽 스핀을 1이라고 할 때, 첫 번째 전자와 두 번째 전자의 스핀상태를 다음과 같이 표기하자.

(0,0) : 두 전자 모두 위쪽 스핀

(0,1) : 첫 번째 전자는 위쪽 스핀, 두 번째 전자는 아래쪽 스핀

(1,0) : 첫 번째 전자는 아래쪽 스핀, 두 번째 전자는 위쪽 스핀

(1,1) : 두 전자 모두 아래쪽 스핀

이 네 가지 경우가 중첩된 계(System){ (0,0) (1,0) (0,1) (1,1) } 라고 할 때, 첫 번째 전자의 스핀을 0이라고 측정한다면, 계는 { (0,0) (0,1) }로 붕괴된다. 이 때 두 번째 전자의 스핀이 0일수도, 1일수도 있으므로 첫 번째 전자의 측정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즉 얽혀있지 않다. 하지만 둘 다 위쪽 스핀을 가지는 (0,0)과 둘 다 아래쪽 스핀을 가지는 (1,1)상태가 중첩된 { (0,0) (1,1) }이라는 계에서는 첫 번째 전자를 측정함에 따라 계가 { (0,0) } 이나 { (1,1) } 중 둘 중에 하나로 붕괴되므로 두 번째 전자의 스핀이 0 또는 1로 정해져 버린다. 즉 이 계는 얽혀있는 것이다.

고전 컴퓨터는 AND, OR, NOT 등의 논리연산을 수행할 수 있고 각각의 논리소자를 게이트라고 부른다. 여기서 AND 게이트와 NOT 게이트를 결합한 NAND 게이트만을 가지고 사칙연산, 비교 등을 포함하여 모든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다. 양자 컴퓨팅에서는 CNOT 게이트라는 논리소자를 이용해 얽힘 상태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풀 수도 있다. 또한 CNOT 게이트만을 조합하여 원리적으로는 모든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 3. 최초로 양자컴퓨터라는 개념을 고안해낸 리처드 파인만>

양자 컴퓨터의 탄생과 발전 = 1982년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은 양자 컴퓨터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양자계의 문제를 풀 때 컴퓨터의 용량에 비해 계산해야할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 실용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파인만은 양자계를 계산할 때 양자계만의 성질을 이용해 새로운 차원의 컴퓨터를 만들면 계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고, 양자계를 잘 모사(simulation)하는 데 이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3년 뒤, 1985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데이비드 도이치(David Elieser Deutsch)가 양자 알고리즘을 제안하면서 그 개념을 구체화했다. 양자 컴퓨터의 효용을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도이치의 양자 알고리즘이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양자 컴퓨터가 현실화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양자 컴퓨터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벨연구소의 피터 쇼어(Peter W. Shor)소인수 분해 알고리즘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암호를 만들 때 가장 강력한 암호 체계 중 하나가 공개열쇠암호체계인데, 곱셈하는 것보다 소인수분해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점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13×17을 계산하는 것보다 1317을 곱한 221이 소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 더 어렵다. 300자리의 수를 소인수분해 하려면 기존 컴퓨터로 우주의 나이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충분히 유용한 암호체계인 것이다.

쇼어에 이어 같은 벨연구소의 로브 그로버(Lov Kumar Grover)에 의해서 양자 알고리즘이 개발됐다. 그로버의 양자 알고리즘은 효율적인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으로, 하나하나 숫자를 대입해가면서 답을 확인할 때 더 빠르게 답을 찾는 알고리즘이다. 소인수분해 알고리즘양자 알고리즘이 개발되면서, 충분히 빠르게 연산할 수 있는 기계만 있으면 암호를 해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양자 컴퓨터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더욱이 암호 문제는 금융 분야뿐만 아니라 국가기밀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대학 및 기업은 물론 정부기관까지 지원에 나서며 양자컴퓨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가장 먼저 등장한 양자 컴퓨터 하드웨어는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1995이온 덫(ion trap)’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이로써 전기장을 이용해 이온을 띄우고 각 이온들의 스핀을 큐빗으로 생각하여 기본적인 게이트를 구현 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양자 알고리즘이 실험적으로 구현된 것은 1998년 핵자기공명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당시 2큐빗의 핵자기공명 양자 컴퓨터로 여러 가지 알고리즘을 구현해 냈다. 핵자기공명 양자 컴퓨터는 핵스핀을 큐빗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결맞음 시간이 길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해 나갔지만 일정 이상 큐빗을 구현하고 제어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결맞음 시간이란 1이나 0 상태가 외부 간섭을 견디고 유지되는 시간으로, 결맞음 시간 안에 계산을 끝내야하기 때문에 양자 컴퓨터 구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양자 컴퓨터의 하드웨어 구현은 이 외에도 광학 양자 컴퓨터, 초전도링, 양자 공진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연구되었다. 각 방법에 따라 큐빗으로 사용하는 물리량 또한 에너지상태, 전하의 수, 스핀 상태, 광자 상태, 양자화된 자속 등으로 다양하다. 아직까지 어떤 방법이 최종 승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후보가 좁혀져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양자 컴퓨터, 어디까지 왔나? =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양자 컴퓨터는 단연 D-wave systems사의 제품이다. D-wave systems2013년에 512큐빗의 ‘D-wave two’를 개발해 구글과 나사에 판매한 바 있으며, 올해는 1024큐빗의 양자 컴퓨터를 선보일 계획이다. 하지만 최초의 상용 양자 컴퓨터라는 타이틀에는 여러 논란이 따랐다. D-wave에 적용된 양자 어닐링‘(Quantum Annealing)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양자 게이트 방식의 양자 컴퓨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양자 어닐링은 복잡한 수학 함수의 전역 최솟값(global minimum)을 찾기 위한 기술로서, D-Wave의 프로세서는 양자 어닐링 프로세스를 수행하기 위해 특화된 것이다.

<그림 4. D-wave는 초전도체인 니오븀(Nb)과 조셉슨접합을 이용하여, 회로의 전류로부터 생성된 자기장의 방향을 큐빗으로 사용한다.>

D-wave systems측은 현재 학자들이 추구하는 형태의 범용 양자 컴퓨터는 당장 구현하기 힘들지만 자사에서 개발한 컴퓨터는 특정 문제들에 특화된 컴퓨터라는 입장이다. 20136월 네이처에 발표된 UCS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D-wave systems사의 양자 컴퓨터가 기존 컴퓨터와는 다른 양자효과를 이용한 것이 확실하다고 알려졌다. 또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컴퓨터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D-wave 양자 컴퓨터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의 마티아스 트로이어(Matthias Troyer)등의 연구팀은 디웨이브 컴퓨터와 일반 컴퓨터에게 특정한 연산 문제를 풀게 하고, 그 연산문제의 규모가 커질 때 문제풀이 시간이 각기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측정해 비교했다. D-wave의 양자 어닐링 알고리즘과 일반 컴퓨터의 모사 어닐링을 비교한 것이다. 그 결과 연구팀은 양자 컴퓨터에서 나타나는 연산 속도 향상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이렇게 D-wave 양자컴퓨터 성능에 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음에도, D-wave 외에도 미국, 캐나다,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양자 컴퓨터 개발이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구글과 나사는 2013년부터 양자인공지능연구소(QuAIL)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초전도 전자기술에 기반 한 새로운 양자 정보처리 장치를 설계제작에 나섰다. 2014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양자 컴퓨터개발에 착수를 공식화했으며, 미국 국가안보국(NSA)또한 보안용 암호를 무력화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 개발에 797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레이저 네트워크 방식의 신형 양자 컴퓨터, 실리콘 기반의 양자 컴퓨터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또한 불과 며칠 전,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원이 최초 양자컴퓨팅 OS‘t|ket>’ 을 개발했다고 알려졌다. 케임브리지 대학 뿐만 아니라 옥스퍼드대, 워털루대, MIT, Caltech 등도 관련 연구센터를 두고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외국에 비해 투자가 많이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한국내에서도 양자 컴퓨터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와 차세대 ICT 플랫폼·양자컴퓨터 개발 협력협정 체결을 하고 본격 협력을 진행 중이다. 향후 신소재, 첨단부품 및 센서, 무선통신, 광통신 등 분야에서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포스텍, 연세대 등에서 양자 컴퓨터 관련성과를 내고 있으며, 우리 학교의 경우 광양자정보처리센터(PIP)에서 양자 로직게이트, 양자메모리, 양자통신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이다.

김동욱 기자 kimdongwook@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