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전공수업의 타당성 검증해야”
지스트대학은 인문·사회 교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학과목을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 전공수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영어 전공수업을 통해 글로벌인재를 성장시키기 위한 교육방침이다. 하지만 교육수요자인 지스트 대학생 사이에서는 영어 전공수업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원과 세계화 준비 vs 정확한 전공지식 습득
학생들 42% 영어수업 찬성, 24% 반대
김여진(기초,16) 학생은 “지스트대학은 이공계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다. 이공계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를 위해서는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의 미래진로를 생각해보면 영어에 익숙해지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여진 학생은 전공수업이 영어로 진행될 경우 수업이해도가 떨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른 나라의 언어이기 때문에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수업 이해도가 떨어지더라도 영어의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면 영어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영어 학습을 스스로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공수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더라도 결국 연구자로서는 영어 구사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서 “영어 전공수업으로 영어 듣기와 읽기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1학년 초반 때 영어 전공수업을 들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영어 전공수업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오상현(물리,15) 학생은 “영어 전공수업을 진행한다면 영어에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현재 듣고 있는 수업 중 두 수업만 영어로 진행되고 있는데, 다른 수업들도 영어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물론 영어 전공수업이 직접적으로 영어 실력의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를 통해 영어를 일상화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14학번 지스트대학생 A는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반대한다며 “영어 전공수업의 전달력이 떨어지고 강의자 역시 영어로 수업하면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영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나, 대학원에서 영어를 쓴다고 해서 대학에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대학은 자신이 전공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학습하는 곳이지, 대학원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다. 또한 대학보다 더 깊이 깊은 공부를 하는 대학원을 준비하기 위해 전공지식이 부족해질 수 있는 영어수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스트 연구팀이 작년 12월 9일(금)부터 12월 11일(일)까지 실시한 ‘교육혁신을 위한 GIST대학생 설문’에 따르면 재학생들은 영어 전공수업에 대해 40% 찬성, 24% 반대로 비교적 찬성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 영어 전공수업 잘 따라올 수 있나
A학생은 “영어 전공수업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영어 전공수업의 전달력과 이해력이 우리말 수업보다 현저하게 저하된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영어 전공수업에서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며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강의의 자세한 설명은 따라가기 힘들었다. 복습할 때 원서를 읽을 때는 전공 지식 습득이 어렵지 않았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찼다”고 말했다.
김여진 학생은 “1학년 때 다들 영어 전공수업은 이해력이 떨어져서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2학년이 된 지금은 주변의 대부분이 적응했다”고 전했다. 또한, 오상현 학생은 “신입생이 영어 전공수업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 학생들에게 충분한 영어 교육 기회와 도움을 제공해 해결하는 방법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신입생 캠프 프로그램에서 앞으로 자주 접할 영어단어와 표현을 연습하거나, 영어 클리닉 증설을 통해 학생들이 듣기와 말하기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A학생은 “학생들이 영어 회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영어 전공수업을 이해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다면 영어 전공수업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영어를 자유롭게 듣고 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스트대학생들 “영어수업 좋지만, 부분적으로 한국어 필요”
‘교육혁신을 위한 GIST대학생 설문’ 에 따르면, 영어로 하는 수업의 이상적인 형태에 대해 ‘학생의 이해도를 고려하여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는 수업’에 대한 선호도(43%)가 가장 높았고, ‘수업은 영어로 하되 부연설명을 한국어로 하는 수업’이 27%로 그 뒤를 따랐다. 수업 내 영어사용이 더 적은 ‘전문 용어만 영어로 하는 수업’의 선호도(15%)는 비교적 높지 않았고, ‘수업 내용을 전부 한국어로 하는 수업’의 선호도(2%)는 매우 낮았다. ‘수업 내용을 전부 영어로 하는 수업’의 선호도(5%) 역시 마찬가지로 낮았다. 지스트대학 학생들은 원활한 지식의 전달과 교수·학생 간 소통을 위해 한국어와 영어가 적절히 섞인 전공수업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혁신을 위한 GIST대학생 설문’ 은 ‘전공수업 영어진행 찬반’과 ‘영어 전공수업의 이상적 형태’ 설문결과를 종합하면, 지스트대학 학생들은 영어 수업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원활한 전공지식의 전달을 위해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섞인 강의를 원한다고 제시했다. 이 설문을 진행한 지스트 연구팀은 이 결과에 대해 영어로 연구하는 이공계 분야의 특성이 반영되었다고 추측했다.
영어교육과 관련된 정책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지스트대학 김희삼 교수는 “전공 교재가 대부분 영어 원서이며 향후 이공계 연구인력으로서 영문저널 기고와 국제적 연구협력 등이 요구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업을 영어로 하는 것은 장려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수업의 일차적 목적이 영어 강의 때문에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영어로 하는 수업이 가능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융통성 없이 고집되는 영어 강의는 전공 지식 습득과 영어 능력 향상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영어 전공수업으로 학생들의 영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교수자가 원어민이거나 그와 근접한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영어 이해력과 표현력 양면에서 학생들의 개인적인 향상 노력과 대학 차원의 체계적인 영어 학습 프로그램(1학년으로 끝나지 않는 연계 강좌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며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 한국인들로만 이루어진 교실에서 영어 수업의 효용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앞으로 지스트대학이 영어 전공수업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영어 전공수업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