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국종이 드러낸 민낯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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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 출처 = 한겨레
이국종 교수 출처 = 한겨레
이국종 교수
출처 = 한겨레

북한 귀순병사 치료 과정에서 이국종 교수의 권역외상센터1)의 여건에 대한 절실한 호소는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은 빠르게 25만 명을 넘어섰다.

이 교수는 일전에도 석해균 선장 치료로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2012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2) 이른바 ‘이국종 법’ 통과에 일조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권역외상센터는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 권역외상센터는 재정적 측면과 의료의 질적 측면 모두 열악하고 권역외상센터의 중증외상전문 의사와 간호사들은 여전히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 교수를 향한 또 한 번의 국민적 관심은 권역외상센터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가 들춰낸 우리사회의 이면

이 교수는 와의 인터뷰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계층이 예우 받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이 교수는 “권역외상센터 환자의 90% 이상이 사회 기반을 형성하는 산업, 소위 말해 산업 현장이나 운수업 계통에서 종사하시며 사회를 떠받치시는 분들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중증외상) 외과의도 블루칼라 계층과 같이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이라며 “제 기억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육체노동을 하는 계층을 큰 예우로 대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나는 연간 10억 원의 적자를 만드는 원흉”, 아주대 교수회가 발행하는 소식지 ‘탁류청론’에서 아주대 외상센터의 적자를 보며 이 교수가 자신을 두고 한 말이다. 실명 직전인 왼쪽 눈으로 36시간 연속으로 밤을 지새우며 환자를 치료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현실의 냉혹함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말한다. 외상센터는 돈이 되지 않는다. 단지 ‘의사로서의 사명감’만으로 많은 의사의 희생을 기대할 수 없다.

권역외상센터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외상센터의 의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블루칼라 계층을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상의료의 질을 평가하는 잣대인 예방가능사망률3)은 2015년 기준 30.5%로 15~20%인 미국과 일본보다 상당히 높다. 미국과 일본이었다면 적정 진료를 받아 생존했을 10~15%의 외상환자가 우리나라에서는 죽어 나간 셈이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더 크게 다치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치료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한다.

‘이국종 신드롬’이 외상센터의 빛이 될 수 있을까?

외상센터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예산 증액으로 해결할 수 없다. 내년 권역센터예산을 400억 4천만 원에서 612억으로 여야가 합의했지만, 당초에 예산을 올해보다 40억 원가량 삭감해 책정했던 것은 100억 원 이상이 남았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외상센터의 여건이 크게 나아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의과의 1인당 지원되는 인력운영지원비가 60억 원가량이 남은 것은 외상센터 기피현상으로 인해 전문의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단국대 외상센터 장성욱 교수는 “워낙 업무강도가 강해서 젊은 의사들의 기피현상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외상전문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한국일보>를 통해 전했다.

이국종 신드롬이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석해균 선장’ 사건에서는 권역외상센터의 설치와 예산 지원을 요구하는 것에 그쳤다면 ‘북한 귀순병사’ 사건에서는 더 나아가 권역외상센터의 여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정치권에서도 “헬기를 이용해 중증외상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치료비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등 전체적인 지원 체계를 손보겠다고 나섰다. 이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께서 문을 열어주신 거다. 그걸 정책 전문가들이 잘 만들어 가고 관료와 정치권, 언론에서 잘 조율해야 한다”면 권역외상센터의 여권 개선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권역외상센터 문제에 관해 여론이 일시적으로 매우 들뜬 상태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국종 효과가 근본적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1) 권역외상센터란 심각한 합병 증상을 보이는 중증외상환자를 통합적이고 필수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시설을 말한다.
2) 권역외상센터의 설립과 행·재정적 지원을 위한 법률이다.
3) 사망자 중 적정 진료를 받았을 경우 생존할 것으로 판단되는 사망자의 비율

육태경 기자
taekyeong@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