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화에 대한 그리움… 재개봉 영화 열풍으로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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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프 온리(If Only)>가 지난 11월 29일 13년 만에 재개봉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지난 1일 하루 동안 145개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스크린에서 전국 1만 2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흥행 5위에 해당하는 높은 성적이었다.
이프온리

요즘 극장에 가면 신작 영화들 사이에서 익숙한 제목의 영화를 마주할 수 있다. 재개봉 영화들이다. 12월 한 달 동안만 해도 <라라랜드>, <러브레터>, <러브 액츄얼리> 등 총 5편의 영화가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재개봉 영화는 한시적인 기획전이나 회고전의 행사로 여겨져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서도 공식 통계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영화 <이터널 선샤인> 재개봉이 폭발적 흥행을 기록한 후 재개봉 영화의 관객 수가 급격히 늘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 내놓은 2016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도 재개봉 영화 부문이 등장했다. 영화 재개봉이 특정 과거의 시대상을 반추하는 특별 현상이 아니라 영화 산업의 한 형태로써 자리매김한 것이다.

재개봉 영화, 외화 강세 뚜렷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재개봉된 영화는 단편영화를 제외하고 342편이다. 그중 외화는 87%를 차지하는데, 외화의 재개봉이 비교적 활발한 가장 큰 이유로는 한국 영화의 장르적 불균형을 들 수 있다. 재개봉 영화에는 멜로 장르가 가장 많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흥행이 어렵다는 인식이 고착되어 해당 장르의 영화 제작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성 있는 멜로 장르에 대한 관객 수요는 항상 존재하고, 이는 결국 외화 멜로 영화의 재개봉으로 이어진다.

한국 영화에는 사회·시대적 배경이 또렷하게 얽힌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원인이 된다. 영화가 반영한 사회· 시대적 배경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재개봉에 있어서는 역효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성과 별개로 영화 전체에서 읽히는 사회·시대적 배경은 관객으로 하여금 구식의 느낌을 줄 수 있다. CGV 편성전략팀의 최승호 부장은 “한국영화는 쉽게 한 번 웃고 울고 끝난다는 인식이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흥행과 상관없이 빛났던 한국영화 리스트를 보면 그 시대상을 너무 명확하게 반영하고 있어 촌스러워 보이기도 한다”며 한국영화가 재개봉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영화산업의 비반복성 탈피해묻혀 있던 명작 재조명
한편 재개봉 영화는 그동안 영화의 특성으로 여겨졌던 소비의 비반복성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비의 비반복성은 영화처럼 한 번 소비된 후 다시 소비될 가능성이 낮은 상품의 특성을 이르는 말로, 이런 상품은 수명이 짧고 흥행 여부가 비교적 단시간에 판명된다. 반면 재개봉 영화의 소비는 반복성을 띤다. 한 차례 소비 후 수요가 종결되지 않고, 이미 소비된 후라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소비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2005년 처음 개봉해서 17만에 불과한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지만 2015년 재개봉 후에는 약 4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을 거뒀다. 영화의 재개봉과 반복적인 소비가 영화 상품의 시장 가능성을 장기화한 것이다.

재개봉 영화는 시간이 흘러 묻혀 있던 명작을 재조명한다는 점에도 의의가 있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재개봉 열풍을 분석하며 “과거에 빛을 보지 못했던 영화들이 재개봉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개봉 영화의 관객은 처음 영화를 감상하는 최초 관람객과 두 번째(혹은 그 이상)로 영화를 감상하는 재관람객으로 나눌 수 있다. 최초 관람객은 상영 기간을 놓친 영화를 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고, 재관람객은 과거의 명작을 다시 봄으로써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손익분기점 낮아 저위험 고수익 구조 형성

영화 산업은 본래 고위험 고수익의 특성을 지니는데, 반대로 재개봉 영화는 검증된 흥행성으로 저위험 고수익의 구조를 형성한다. 흥행에 성공하면 투자비용 대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처음 개봉하는 영화의 경우 개봉 전에는 흥행을 확신할 수 없어 제작 투자자들이 개봉 실패 위험에 대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재개봉 영화는 최초 개봉 영화들에 비해 실패 위험이 훨씬 적다.

재개봉 하는 데 드는 비용에는 판권비용, 마케팅 홍보비용, 디지털 리마스터링 비용 등이 있다. 재개봉 영화의 경우 신작보다 판권 구매가가 저렴하고, 특히 외화의 판권 소유 기간은 보통 5년에서 7년 사이로 판권이 계약된 기간 내에 개봉하면 판권비용을 다시 지급할 필요가 없다. 재개봉의 경우 인지 선호도도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여서 마케팅 홍보비용도 현저히 적게 든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치더라도 신작에 비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훨씬 낮아진다.

관객 수 늘리려는 상업적 재개봉 지양
재개봉 영화로 신작 영화들 설 곳 줄어

한편 저위험 고수익 구조로 인해 영화 재개봉이 상업적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감독판 형태로 재개봉한 한국 영화는 모두 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 작품들로, 최초개봉일로부터 1년 이내에 재개봉했다. 관객들에게 영화의 이면을 보여주기보다는 상영 기간 말미에 관객 수를 늘리는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뚜렷한 사유 없는 재개봉은 관객들의 피로도를 높이고 재관람의 당위성을 해친다. 배급사와 영화관계자들이 상업적 목적에 초점을 둔 재개봉 대상작 선정을 지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재개봉 영화는 신작 영화들이 설 곳을 줄어들게 하고 있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신작 영화와 검증된 영화가 있다고 했을 때 인지도 면에서 신작 영화가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며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같은 다양성 영화들은 상업영화와 싸우는 것도 역부족인데 재개봉 영화와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의미 있는 작품의 선정으로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김한주 기자
hjkim9706@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