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는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담겨 있다. 무심코 넘기는 책장마다 진하게 방울진 노력이 스며있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삽화를 그리고, 누군가는 표지를 디자인한다. 그리고 여기, 아직은 투박한 글을 다듬어 비로소 세련된 ‘책’으로 만들어내는 이가 있다. 이번 호 〈나대다〉에선 ‘사이언스북스’에서 편집자로 재직 중인 김해슬(13,전전컴졸) 동문을 만났다.
책을 좋아한 대학생, 편집자가 되다
김해슬 씨는 작년 8월 입사한 신입 편집자다. 편집자는 명칭 그대로 책, 잡지, 신문 등 인쇄 매체의 편집 전반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초고의 교정, 교열부터 글의 순서 재구성, 번역서 원문 대조까지 글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이 편집자의 손을 거친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신입이라고 특별히 다른 업무를 하지는 않는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교정, 교열을 시작했다. 다르다면 일을 배우면서 한다는 것, 행정 업무가 좀 많다는 것 정도”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편집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GIST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물리 전공을 염두에 둔 평범한 신입생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점점 연구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취업을 생각하게 됐다. 전공도 취업에 유리하다고 생각한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로 정했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할수록, 차츰 문화예술계에서 일하고 싶단 생각이 강해졌다.
하고 싶은 일과 처우 사이에서 적절히 조절하며 여러 진로를 탐색했다. 가장 먼저 고려한 직업은 기자였다. 그러나 기사는 그가 쓰고 싶은 글과는 거리가 있었다. 업무 강도가 고되 자기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 또한 마음에 걸렸다. 공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다른 직장에 비교해 처우가 좋다는 점이 주요했다. 공기업 중에서 관심 있는 분야의 기업, 직무를 찾아 주로 준비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금의 회사가 낸 채용 공고를 보게 됐다. 큰 부담 없이 일단 지원 서류를 냈다. 그는 “인터넷에 공고가 뜬 걸 보고 지원했다. (언론사나 공기업처럼) 따로 특별히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멋쩍게 얘기했다. 이전까지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편집자 일은 그의 적성에 딱 들어맞았다. “워낙 책을 좋아해서 교정, 교열 보는 일도 처음부터 아주 어렵진 않았어요. 회사가 필요했던 부분과 제가 필요로 했던 부분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자신과 잘 맞춰갈 수 있는 회사 찾아야
김해슬 씨는 출판사에 입사할 수 있었던 이유로 수많은 독서량을 꼽았다. 대학생 시절 매달 여덟 권 남짓의 책을 읽었을 정도로 그는 독서를 좋아한다. 이는 입사 시험과 면접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그는 필기시험에 대해 “교정, 교열, 영어 번역 문제도 있었지만, 최근 가장 이슈가 될 만한 책과 그 이유, 간기면과 책 앞, 뒤표지에 들어가는 내용 등 책과 친해야만 답할 수 있는 문제들도 나왔다”고 회상했다. 면접에 대해서도 “책을 많이 읽은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던 모양이다. 그런 것들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필요한 정보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얻었다. 온라인 카페도 이용했고, 채용 공고도 자주 보며 직무나 회사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구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얻는 정보가 충분하거나 많지는 않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의 취업을 생각하는 경우, 학점은 ‘선택’인 것 같다는 생각도 전했다. “정말 확실히 가고 싶은 길이 있다면 그쪽에 집중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학점만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곳은 드문 것 같아요. 물론 학점이 엉망이어서 좋을 이유는 없겠지만요. 오히려 학벌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은데, 이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당당하게,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GIST를 잘 모르더라도 계속 좋은 학교라고 얘기하고(웃음).”
“학점, 스펙도 중요하지만 그 회사에 잘 맞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내가 회사를 직접 차리지 않는 이상 나라는 개인과 완전히 맞는 회사는 없잖아요. 그러니 나와 맞춰갈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곳을 찾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그 회사의 모토나 슬로건을 머릿속에 넣고, 자기 특성과 맞는 부분이 있으면 강조하고요. 어떤 곳은 면접에서 회사 홈페이지 주소를 물어보기도 했어요. 회사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묻는 거죠. 그런 준비가 부족하면 결국 면접에서 다 드러나더라고요.”
GIST가 가진 특성 활용할 길 찾아
GIST에서 이공계 밖 분야의 취업을 준비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는 점도 그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그는 “극복하려하기 보단 받아들여라”고 말했다. “대신 학교 환경이 고요하고 차분한 만큼 자기 내면에 집중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것 같아요. 분주하고 바쁜 곳에 살면 그게 어려워지는 것 같거든요.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 그게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강점이 될 때가 오는 것 같아요.”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어려웠다. 주변에 서로 비교해볼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주 글쓰기 강의를 듣기 위해 서울과 광주를 왕복했다. 고됐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얻었다.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가늠할 기회가 됐어요. 틀에 박힌 사고가 트이는 느낌도 받았고요. 여건이 안된다면 무리할 필욘 없겠지만,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보는 걸 추천해요.”
GIST였기에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GIST대학의 인문·과학기술 융합 교육은 유익한 성장 기회가 됐다. “인문 강의를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들었어요. 1, 2학년 때는 정말 강의를 들을 때마다 지식과 이해 수준이 한 단계씩 점프하는 느낌이 들었죠.” 여러 작가를 만나야 하는 직업 특성상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것이 도움 될 때도 많다. “누구를 만나도 대화가 되니까요. 그런 부분에선 오히려 한 분야만 전공한 사람보다 나을 때도 있어요.”
이때껏 쌓아온 과학적 배경 지식도 강점이 됐다. 그가 일하는 출판사에선 과학 분야 서적을 주로 출판한다. 내용상 오류를 찾기 위해선 기본적인 과학 지식이 필수다. “과학책이라는 게 정확성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일단 알고 있어야 틀린 내용도 잡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는 또한 “요즘 과학 기술 분야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과학 공부를 했다는 것은 어디에 가서도 장점이 되지 단점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해슬 씨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거듭해서 “자신감을 가져라”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GIST는 좁은 세계예요. 하지만 좁은 세계에서 잘한다는 게 넓은 곳에 나오면 못할 거란 뜻은 아니에요. GIST에서 잘한단 소리 들으면 잘하는 것 맞아요. 우물쭈물하며 주저하기보단 자신감을 갖고 시작해봤으면 좋겠어요.”
김예인 기자 smu04018@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