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봐, 별이 된 그가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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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지난 3월 14일, 물리학계의 거장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가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던 스티븐 호킹. 그 덕분에 인류는 우주의 비밀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별이 되어 또 다른 우주 연구를 떠날 때까지, 그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으며,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또 무엇일까?

물리학의 세계에 발을 내딛다

스티븐 호킹은 1948년 1월 8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갈릴레오가 죽은 지 딱 300년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단순한 우연인지 우주적 운명에 의한 필연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어찌 됐건 스티븐 호킹은 그의 자서전에서 “그날 태어난 아기가 20만 명쯤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릴 적 호킹은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특히 사물이 작동하는 원리에 관심이 많았다. 어떤 물건이든 분해와 재조립을 일삼았다. 친구들과 함께 버려진 부속품을 모아 기초적인 컴퓨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의사였던 아버지 또한 그의 탐구심이 자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종종 호킹에게 자신의 연구실을 구경시켜줬고, 직접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 호킹이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호킹은 물리학을 전공으로 삼아 옥스퍼드에 진학한다. 그러나 당시 옥스퍼드에는 학업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호킹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열정을 쏟았던 것은 물리학이 아닌 조정(漕艇)이었다. 그는 교내 조정 클럽의 키잡이로 활약하며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냈다. 잠깐 졸업 시험 성적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면접에서 1등급을 결정짓는다. 곧이어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입학한 호킹은 우주론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즈음 호킹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뚜렷이 느낀다. 의사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희귀한 병이었다. 의사는 그가 2년 반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 단정했다. 호킹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삶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된다. “병에 대한 진단을 받고 퇴원한 직후, 나는 사형대 앞의 죄수가 된 것 같았습니다. 내게 유예 시간이 주어진다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지요. 역시 인간은 죽음 앞에 당면해서야 인생의 가치를 이해하게 됩니다.”

시간의 시초, 우주의 기원 : 특이점 이론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호킹은 아직 구체적인 논문 주제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여자친구 제인 와일드와 결혼해 가장이 됐단 점도 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학위 논문을 마무리하고 직장을 구해야 했다. 이때,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1964년 당시 과학자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정상 우주론’파와 ‘빅뱅 이론’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현재는 우주 탄생 기원 이론 중에서 빅뱅 이론이 가장 우세하다. 하지만 그 때의 빅뱅 이론은 아무것도 없었던 무(無)의 우주에서 현재 유(有)의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상 우주론’은 우주는 모든 곳에서 균일하며 거시적 관점에서 변화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여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항상 팽창하며 계속하여 새로운 물질을 생성한다. 새로 생성되는 물질에 의해 우주는 팽창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평균 밀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 가정으론 물리학의 가장 기본 법칙인 질량 및 에너지 보존법칙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논란 중 1960년대에 전파망원경을 이용한 우주 관측이 활발해지면서 정상 우주론에 불리한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주 대부분의 은하계가 최근에 생성된 것은 없고 대체로 비슷한 나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1965년 아르노 펜지어스(Arno Penzias)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 우주가 과거에는 매우 높은 밀도와 온도로 조밀하게 존재했다는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면서 정상 우주론은 큰 타격을 입고 종지부를 찍는다.

정상 우주론이 종결된 이후 빅뱅 이론을 설명할 근거가 필요해졌다. 호킹은 불현듯 ‘블랙홀에 관한 어떤 이론’을 이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가 찾던 구체적인 연구 주제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특이점 이론’이었다. 특이점 이론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호킹을 가르쳤던 수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에 의해 제안됐다. 펜로즈는 상대성 이론 하에 블랙홀 주변에 있는 물질은 항상 블랙홀 중심의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 점에서는 시간과 공간마저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점을 특이점이라 명명한다.

호킹은 펜로즈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역발상을 해보게 된다. “현재의 팽창하는 우주를 시간상으로 거꾸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 과거로 돌아갈수록 수축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즉, 블랙홀에 존재하는 특이점에서 시공간이 사라진 것처럼,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점 하나에서 폭발이 일어나 물질과 시공간이 터져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호킹은 우주는 태초에 특이점 상태로 존재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펜로즈와 함께 우주의 과거 상태를 수학적으로 추적해 결국 자신의 주장을 증명한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특이점 이론은 상대성 이론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정작 특이점만큼 중력이 큰 지점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다룰 수 없다. 즉, 특이점 이론은 시공간에 특이점이 실존함보다는, 특이점 부근에서 상대성 이론이 아닌 새로운 이론이 필요해짐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수십 년 후 양자중력 이론을 이용한 ‘무경계 이론’ 등을 통해 보완된다.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 : 호킹 복사

특이점에 관한 최종 논문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호킹은 연구의 중심을 블랙홀로 옮긴다. 1970년 한 해 동안 무려 세 편의 블랙홀에 관한 각기 다른 논문을 발표한다. 그중 하나는 블랙홀과 열역학이 가지는 유사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유의미한 물리학적 연관성을 갖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어느 밤, 호킹은 잠자리에서 이 의문과 관련된 어떤 실마리를 발견한다. 블랙홀의 경계의 면적이 항상 증가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사고에 따르면, 블랙홀의 경계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 광선들로 이뤄져 있다. 만일 어느 하나의 광선이 충돌하기라도 하면, 그 순간 충돌한 광선들은 블랙홀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광선들은 서로 평행하게,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이는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를 펼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고슴도치의 가시가 바깥 방향으로 향해 활짝 펴지듯, 광선들은 서로 만나지 않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블랙홀 지평선의 면적을 증가시킨다. 이는 블랙홀이 서로 충돌하든, 다른 물체를 집어삼키든, 그 외 어떤 상호작용을 하든 마찬가지였다.

자연계에는 반드시 증가하는 것이 블랙홀의 표면적 외에도 한 가지 더 존재한다. 바로 엔트로피다. 호킹과 제임스 바딘(James Bardeen), 브랜던 카터(Brandon Carter) 등은 이외에도 블랙홀의 표면적과 엔트로피가 갖는 유사한 속성 몇 가지를 더 밝혀냈다. 하지만 섣불리 블랙홀의 표면적이 블랙홀의 엔트로피를 나타낸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었다. 이는 블랙홀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엔트로피를 갖는다는 것은 곧 온도를 가진다는 뜻이다. 온도를 가진 모든 물체는 복사한다. 하지만 블랙홀로부터는 그 어느 것도, 빛 한 줄기조차 방출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정론이었다.

호킹의 연구는 블랙홀에 양자역학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호킹은 양자이론이 다루는 입자와 장들이 블랙홀 주변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고찰해보았다. 믿을 수 없는 계산 결과가 나왔다. 블랙홀이 입자 형태로 복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호킹 복사의 존재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호킹 복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입자-반입자의 쌍생성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우주 공간엔 입자와 그것과 완전히 대칭되는 성질을 가진 반입자가 채워져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쌍생성과 쌍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무(無)에서 에너지를 빌려와 생성되고, 곧이어 빌린 에너지를 갚으며 소멸하는 것이다. 만일 블랙홀의 경계 바로 바깥에서 쌍생성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자. 한 입자는 블랙홀의 경계 안쪽에, 또 다른 하나는 경계 바깥쪽에 놓여있다. 안쪽에 남은 입자는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고, 바깥쪽에 남은 입자는 쌍소멸 할 대상이 없어 혼자 남는다. 결과적으로 입자가 블랙홀에서 복사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입자가 소멸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너지 빚은 그대로 남는다. 결국 블랙홀은 점점 에너지 또는 질량을 잃고 소멸하게 된다.
호킹 복사는 앞서 부정됐던 ‘블랙홀 열역학’이 사실임을 드러냈다. 블랙홀 또한 다른 천체들처럼 온도와 엔트로피를 갖고 복사하는 물체였던 것이다. 호킹은 이를 빗대어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태초 이전을 설명하다 : 무경계 이론

호킹 복사는 앞으로 이어질 연구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양자역학과 중력의 통합을 위해, 나아가 우주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꿈꾸며 연구를 이어나간다.

흔히 많은 사람이 빅뱅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갖는 의문이 있다. “그럼 특이점이 폭발하기 전, 즉 태초 이전에는 어떤 것이 존재했을까?” 우주가 시작된 지점이 존재한다면, 그 이전에는 어떤 것들이 존재했을까에 대한 의문은 한동안 우주론자들을 끝없이 괴롭혀 왔다. 우주론자들의 상황이 깜깜한 우주와 같았을 때, 호킹과 제임스 하틀(James Hartle)이 제안한 ‘무경계 우주론’이 상황을 말끔하게 해결해준다.

무경계 우주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이론의 기초가 되는 우주 모델인 ‘유클리드 시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시간이라는 차원을 허수로 표현하면 시간과 공간은 수학적으로 같아진다. 즉, 허수시간이 공간의 또 다른 차원인 것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공간 모델을 ‘유클리드 시공간’이라 하는데, 호킹과 하틀은 이 모델을 이용해 태초의 우주를 설명하고자 했다.

‘무경계 우주론’이란 우주의 시공간의 크기는 유한하지만 그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우주의 경계는 특이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공간이 시작되는, 아주 작고 뾰족한 점이다. 그러나 유클리드 시공간을 적용하면, 우주의 시작은 뾰족한 점이 아닌 매끄러운(smooth) 표면과 같은 상태가 된다. 우주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무경계 우주론’은 이해하기에 너무 막막해서 지구 표면에 비유되기도 한다. 지구 표면은 분명 ‘면적’은 존재하지만 ‘경계’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의 시초를 지구의 남극과 같다고 생각하고 허수시간을 지구의 위도와 같다고 하자. 북으로 이동하면서 위도가 같은 지점을 이은 원은 점점 커지는데, 이것은 우주의 크기가 된다. 이 설명을 토대로 태초 이전을 묻는 질문을 다시 되뇌어보자. 우리가 지구의 가장 남쪽에 있을 때, 더 남쪽으로 가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구의 가장 남쪽, 즉 남극점에 서 있는 순간은 어떤 방향으로 이동하든 북쪽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남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예전의 라이트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날아보려고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태초도 마찬가지다. 태초에서 더 과거로 가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극점이 북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시작점인 것과 마찬가지로, 태초라는 순간 역시 공간의 시작이자 시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큰 노력을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결국 태초라는 시간에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되돌리기를 하는 것은 남극점에서 날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우주의 태초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기발한 방법을 생각했지만, 우주의 양자 상태까지는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연구를 끝마치면서 호킹과 하틀은 이보다 더 현실적인 수학적 모델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누군가가 우주 태초의 경계조건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것의 경계조건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 된다.’는 말을 남긴다. 결국 ‘무경계 우주론’을 한 번 더 강조한 셈이다.

박세현 기자 aba15945698@gist.ac.kr
김예인 기자 smu04018@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