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그때 내가 최루탄 엄청 마셨지.” 5‧18 영화를 보러 간다고 얘기하자 택시 기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근데 학생들은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 아녀”라며 그는 웃었다. 영화관으로 가는 길, 옛 광주 MBC 사옥 앞을 지나게 되자 “그때 여기가 전부 다 불탔었지”라고 말하며 창밖을 가리키기도 했다. 5‧18이 있은 지 17년 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필자의 눈엔 그저 이름이 특이한 경찰공무원 학원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곳이었다.
‘광인’은 ‘맛의 기억’과 ‘떠도는 땅’ 두 단편으로 구성된 영화다. 두 작품은 각각 5‧18을 바라보는 광주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시선을 드러낸다. ‘떠도는 땅’을 연출한 윤수안 감독은 영화 기획 의도에 대해 “‘맛의 기억’은 타지 사람들이 바라보는 광주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떠도는 땅’은 우리 광주 사람들이 5‧18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광인’에는 5‧18을 둘러싼 여러 현대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맛의 기억’의 주인공인 혜진은 대구에서 나고 자란 음식 기자다. 그의 아버지는 광주를 지키기 위해 싸웠으나 가족은 저버려야 했던 시민군이다. 또 다른 시민군 동료는 매년 5월이 되면 그때의 감정에 들끓고, 친구는 그런 그를 ‘5‧18쟁이’라 핀잔한다. ‘떠도는 땅’에는 5‧18을 이용해 거짓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했던 프리랜서 PD와 항쟁 당사자가 아님에도 그 상처에 고통받는 광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5‧18을 향한 다양한 집단 또는 개인의 시선을 대변한다.
시선은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시민군 동료에게 핀잔을 주던 친구도 언젠가 ‘5‧18쟁이’란 말에 격분했을지도 모른다. 책임감 없는 태도로 5‧18을 이용하려는 언론 대신 목격한 진실조차 싣지 못하는 부끄러움에 펜을 놓던 언론이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상흔에 갇혀 고통받는 남자는 광인이 되어 주위를 배회한다.
스크린은 현실의 우리를 비춘다. 5‧18에 무관심한 다른 지역 사람들, 반복되는 얘기에 피로감을 느끼는 광주 시민,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 당사자들까지. 우리는 각자의 삶과 지식을 바탕으로 5‧18을 제각기 다르게 해석한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에서 5‧18은 어떤 가치로 계속 변해가고 있는가. 우리는 5‧18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영화는 두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한 가지는 과거에 대한 진실한 이해이다. ‘맛의 기억’의 마지막, 아버지와 광주를 미워하던 혜진은 그가 건네주는 ‘홍어’를 먹음으로써 과거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또 하나는 5‧18을 타성적으로 이용하는 권력에 대한 경계이다. ‘떠도는 땅’의 PD는 시청률을 위해 억지로 진실을 감추고 광인을 시민군으로 몰아세운다. 민주화의 기치는 거짓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포장지로 전락한다. 그런 PD에게 광인은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너도 미친 것”이란 말을 남긴다.
5‧18은 현대사를 뒤흔든 하나의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거대한 충격에 휩쓸렸으나, 5‧18은 아픔을 딛고 민주화와 항쟁의 정신을 역사에 우뚝 세워놓았다. 역사는 점을 지나 끊임없이 흐른다. 사람들도 시간을 따라 제각기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3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5‧18의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각자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5‧18의 모습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나 왜곡되지 않은 진실한 이해와 끊임없는 성찰이 있다면, 5‧18은 박제된 역사 속 사건이 아닌 생활 속 살아있는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예인 기자 smu04018@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