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구진, 가짜 학술단체 이용 최상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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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김혜인 기자

GIST 연구진도 논문 투고 및 학회 참석

삽화 = 김혜인 기자

WASET(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및 OMICS International(이하 OMICS) 등의 사이비 학술단체에 한국의 대학 교수 및 연구원들이 논문을 게재해 실적을 올려왔음이 밝혀졌다. WASET 및 OMICS에 논문을 투고한 연구원들 중에는 GIST 교수 및 대학원생들 또한 포함되어 있다.

WASET, OMICS를 대표로 하는 약탈적 저널(Predatory Journals)이란 수수료를 받은 후 제대로 된 심사와 편집 과정을 거치지 않은 논문을 출판하는 학술단체를 말한다. 이러한 학술단체에 속해있는 학술지들에는 논문에 대한 자세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질 낮은 논문들이 무더기로 게재된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와 뉴스타파는 논문 자동 생성 프로그램인 MIT SCIgen을 통해 1초 만에 만들어진 가짜 논문과 더불어 ‘돼지가 하늘을 나는 생체역학’ 등의 엉터리 논문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학술지에 게재되었음을 확인했다.

가짜 학술단체에서 열린 학회도 역시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WASET에서 열린 한 학회의 경우 학회의 본래 취지와 달리 과학 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예술, 사회 같은 일관성 없는 분야의 논문들에 대한 발표가 한 번에 이루어졌다. 이름만 올린 채 학회에 참여하지 않은 단체들도 매우 많았다. 독일 NDR 공영방송 피터 하눙 기자는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대학의 이름으로 엉터리 논문을 발표해서 최우수 발표 상을 수상했다. 온갖 분야의 학자들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컨퍼런스에 참여한다. 이것은 전 세계에 해를 끼치는 세계적인 스캔들이다”고 말했다. 또한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후버는 가짜 학술단체에 대해 “명백한 사기다.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고 언급했다.

현재 이러한 가짜 학술단체들은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매년 수천 회의 학회를 개최하고 가짜 학술지를 발간한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제프리 비올 교수가 제작한 가짜 학술지 목록(Beall’s List)에 따르면, 현재 천 건이 넘는 학술지가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논문을 출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가짜 학술단체가 주최하는 학회에는 주로 학회 발표 경험이 간절한 대학원생 및 실적을 올려야 하는 연구원들이 참여한다. 특히 논문 개수와 피인용 지수를 기반으로 연구자의 실적을 평가하는 국가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가짜 학술대회 및 가짜 학술지에 한국인들의 참여가 눈에 띌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WASET 논문 투고 및 학회 참석 수는 세계에서 한국이 5위로 높은 순위를 차지했으며, 논문 저자별 투고 건수 비교 결과 2, 3, 4, 6위가 모두 한국인 학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1위를 차지한 케말 아르디가 WASET의 창업주이자 논문 편집자인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한국인 학자들이 최상위권을 모두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삽화 = 오주영 기자
삽화 = 오주영 기자

2007년부터 국내 272개의 기관에서 4,227명의 연구원들이 WASET에 이름을 올렸으며, 현재는 매 해 1,000명 이상의 연구원들이 논문을 게재한다. 또 다른 가짜 학술단체인 OMICS의 경우 2009년부터 국내 177개의 기관에서 1,812명의 연구원들이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는 연세대, 성균관대 등 유명 대학들의 논문 투고 및 학회 참석 횟수가 가장 많았으며, 특히 서울대의 경우 WASET 100건, OMICS 50건으로 두 학술지 모두에서 논문 게재 건수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대학뿐만 아니라 공공 연구기관의 연구원들도 이러한 가짜 학술대회 및 학술지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학술지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연구 윤리를 위배할 뿐만 아니라 학계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가짜 학술지는 우리나라 학술계에 그나마 자리 잡아가고 있는, 학자의 승진이나 재임용을 결정하는 평가 제도를 심각하게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가짜 학회에 참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구비 명목으로 지원하는 공공 자금이라는 문제점도 있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나 연구재단, BK21 등을 통해 지원받는 돈으로 이러한 학회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학회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결재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연구비 지원 기관에서는 해당 학회가 적절한지에 대해 논의한 후 허가를 내리고, 그 후 실질적인 연구비는 대학 내 산학 협력단에서 지원한다. 사용하지 않은 연구비는 국고로 다시 반납해야 하는데, 이 때 몇몇 연구원들은 연구비를 소진하기 위해 일부러 해외 학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삽화 = 오주영 기자

아직까지 WASET, OMICS 등의 단체를 약탈적 저널(Predatory Journals)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국내 학계의 기준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가치 있는 논문이 포함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WASET 논문 게재 및 학회 참석 건수 1위를 차지한 서울대학교 측은 “WASET이 영리 목적으로 학술 행사를 조직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학술 행사를 가짜 또는 사기로 간주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고, 2위인 연세대학교 측은 “학회에 세계 유수 기관들 또한 참여했으므로 WASET 학회가 가짜 학술단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5위인 성균관대학교 측에서는 “이러한 가짜 학술단체에 논문 게재 혹은 학술대회 참여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을지 검토하겠다”고 개선 의지를 보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서태설 센터장은 “국내에서는 그동안 허위 학회와 저널 관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연구재단 등 펀딩기관에서 평가 시 적용할 기준 학회와 저널 목록을 마련하는 등의 치밀한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부 GIST 교수 및 연구원들 또한 WASET, OMICS에 논문을 투고하고 학회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논문 발표 및 학회 참석을 위한 비용은 모두 연구 과제에서 지급받았다. 이에 대해 이동선 교학처장은 “대부분 대학원생 및 연구원이 참석하였고, 동일인이 1회 내외 참석한 실태를 볼 때 반복적인 논문투고 및 학회 참석으로 보기 어렵다. 논문투고 및 학회 참석자 개별에게 확인한 결과 참석 전 학회에 대한 정확한 정보검색 부실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 일반적인 학회와 동일한 심사를 예상했으나 실제 참석 후 학회의 질적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이후 참석을 거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상황을 언급했다. 또한 “향후 이러한 경우가 발생되지 않도록 공문, 이메일, 전체교수회의 등을 통해 교수를 포함한 전체 연구자들에게 권위 있는 학회 참석 및 논문투고를 권고하였고, 연구윤리 확보를 당부 드렸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뉴스타파 –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HelloDD – WASET 논란, 허위 학회 구별할 수 있을까, The Economist – What are “Predatory” academy journals? 등의 기사를 참고해 작성되었습니다.

오정원 기자 jungwon98@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