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협상 극적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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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오주영 기자

광주시·정부 “노사상생을 통해 지역 일자리 늘리는 모델 될 것”

현대·기아차노조 “사회 양극화 확대시키고 소득 불평등 조장할 것”

삽화=오주영 기자
삽화=오주영 기자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극적 타결됐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1월 31일 완성차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맺은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기업이 노동자를 낮은 임금으로 고용하는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 교통, 의료 등의 복지를 노동자에게 지원하는 정책이다. 이번 협상 타결에 광주시와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노사관계 혁신의 모델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지만, 현대·기아차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 등에서는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며 결사반대하고 있는 등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순탄하지 않았던 타결 과정
광주형 일자리의 타결 뒤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광주형 일자리는 2014년에 지역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광주시 제안에서 처음 고안됐다. 이후 18년 6월 현대자동차가 사업신청서를 제출하며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토대로 한 경차 SUV 공장을 광주에 유치하겠다고 한 것이다.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는 협상을 통해 1차 사업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1차 사업안은 기본금과 직무급, 법정수당과 시간 외 근로를 포함해서 3,000만 원이라는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임금을 내걸었다. 또한 5년간 임금협상을 유예한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광주노총 등 노동자들에게 비판을 받게 된다. 이후 광주시는 착오를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상승한 임금과 임금협상 가능함을 포함한 수정 협상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대차에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런 조건이라면 회사에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의 노동조합에서도 수정 협상안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울산에 연고를 두고 있는 현대·기아차 본사의 노동조합은 “광주형 일자리는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을 업계 절반 수준의 연봉으로 떨어뜨리며, 지역별로 저임금 기업유치 경쟁을 촉발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국내 자동차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생산시설이 남아돌고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시가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한 광주지역 노동계에서 협상 전권을 위임받으며 상황은 반전됐다. 협상이 해를 넘기고 좌초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때 광주지역 노동계가 시 협상단에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이후 협상은 빠르게 진행돼 1월 30일 타결되게 된다.

낮은 임금 대신 지자체에서 복지 지원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의 낮은 임금을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복지로 대신한다는 계획이다. 최종 협약안의 내용은 초임 연봉 3,500만 원, 주 44시간 근로, 연 10만대 생산으로 합의됐고 기본급 관련 자세한 임금 체계는 외부 전문가 연계 연구용역 후 결정하기로 했다. 임금인상은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3년마다 인상하되, 35만대 생산 이전까지 단체임금협상은 할 수 없다. 이 협약은 2021년까지 광주 빛그린 산업단지에 완성차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완성차 공장의 평균 임금은 연 9,000만 원 정도인데, 광주형 일자리의 임금은 3,500만 원 정도로 반값 이하 수준이다. 또한 노동시간도 주 44시간으로 국가에서 제한한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임을 고려했을 때 적은 편이다. 하지만 주택, 보육, 문화, 교육 등을 지자체가 중앙부처와 협력해서 제공할 계획이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이와 같은 ‘사회적 임금’으로 부족한 임금을 충당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올리는 데 주력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인구 유입과 노사관계 개선 기대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이 광주의 인구 유출 기조에도 반등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광주시의 인구 유출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광주시 순 유출 인구 8,200명으로, 전국 시도 중 뒤에서 2위다. 광주시는 이번 광주형 일자리를 토대로 청년 유입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광주시는 이 공장이 설립되면 1,000명의 직접고용과 10,000명의 간접고용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소비력이 있는 인구가 대거 유입된다는 점에서 광주광역시의 지역경제 활성화 역시 기대되고 있다.

또한 광주형 일자리의 노사 상생 기조는 노사관계 개선 부문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노조가 존재하는 현대자동차 공장 정규직의 고임금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한다. 또한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의 대우를 열악하게 만드는 데도 기여하고, 신규고용 창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과 경영진 간의 소모적 갈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자와 경영자 양측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발씩 양보한 노사 상생의 모델이다. 경영자는 공장을 외국이 아닌 국내에 짓고,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받아들인 것이다. 공장을 외국에 지으면 노동자는 일자리가 없어 힘들고, 기업도 내수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워지기에, 양측의 양보는 윈윈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선례는 소모적인 노사관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경차 생산의 시장성은 우려
한편 광주형 일자리의 시장성 부문에서 우려되는 측면도 많다. 현대기아차 노동조합은 국내 자동차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라고 주장한다. 현재 현대자동차 공장 가동률은 76% 정도로 생산 능력이 남는 현 상황에서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소형 SUV 생산 시설을 늘리는 것은 공급과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장은 “경차 판매시장은 올해 14만대로 지속 하락 추세에 있다. 지금 연간 1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광주형 일자리를 신설하면 다른 지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는 치킨게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양질의 일자리일까
광주형 일자리의 낮은 임금이 노동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021년의 예상 최저임금은 약 만 원 정도인데, 주 44시간 3,500만 원을 시간당 계산해보면 만 천 원 정도다. 광주형 일자리의 임금이 최저임금과 유사한 것이다. 게다가 아직 기본금과 수당의 비율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시간당 임금은 최저임금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일자리로는 청년들을 끌어올 수 없다고 분석한다. 현재 사회에 최저임금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임금 외에 지원되는 주거, 교육 등의 ‘사회적 임금’이 제대로 지원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초교육학부 김상호 교수는 광주형 일자리에 관해서 “반도체산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의 경기침체 때문에 고용위기가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하는 광주형 일자리는 침체된 지역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유일한 방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의의가 크다”면서 “하지만 소형자동차 수요가 줄어 주문 물량이 줄어들거나, 인건비가 예상보다 빠르게 상승하거나 또는 노사 관계가 악화되면 광주형 일자리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출범 초기에 약속한 사항, 특히 안정적 노사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광주시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