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언론이슈토론회 개최…
커지는 제도개선 목소리
2016년 축소 논란 이후 3년 넘게 지속됐던 전문연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7월 9일 국방부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이공계 전문연구요원(이하 전문연) 정원을 대폭 감축하기로 발표해 전문연 축소 논란에 불이 붙은 것이다.
전문연 제도는 병역자원 일부를 필요 인원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이공계 학생을 3년간 연구인력으로 활용하는 병역대체복무제도다. 현 제도는 흔히 석사 전문연으로 불리는 산업체 근무 전문연과 박사과정 전문연으로 나뉜다. 석사 전문연 1,500명은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정부출연연구소 등에서, 박사 전문연 1,000명은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는 것으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
국방부가 박사과정 전문연을 30% 줄이고 기업에서 근무하는 인원을 70% 이상 감축하는 안을 발표한 것이다. 축소 방안에 따르면 현재 매년 2,500명씩 모집하는 이공계 병역특례제도 정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이번 병역특례제도 개선안에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면서 이전에 진행된 전문연 축소 논란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가 전문연 감축안을 발표하자 과학기술계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7월 10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선 ‘글로벌 경쟁시대 핵심인재 양성을 위해 전문연구요원제도를 확대 운영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국방부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과기부는 “대체복무 감축 규모와 발표 시기는 관계부처와 협의 중인 사항으로 확정된 바 없다”며 선을 그은 것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과학기술계 의견을 받아들여 석사 대상은 40% 이상 감축, 박사는 유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이틀 사이에 국방부와 과기부의 서로 다른 발표에 이공계 학생들의 혼란이 가중됐다.
오락가락 국방부… 각계 강력 반발
산업계와 학계에서 전문연 축소·폐지 반대가 이어졌다. 7월 11일 14개 산업계 단체가 감축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산업계 대표들은 일본 무역보복으로 인한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전문연을 축소하면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번 무역보복으로 소재 분야 국산화가 절실해지는 상황에서 전문연 축소는 기업의 기술혁신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연 축소를 막기 위해 병역특례 당사자인 이공계 학생들의 단체행동도 이어졌다. 과기원과 이공계 대학 학생회가 모여 ‘전문연구요원 감축 대응 특별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7월 16일 “전문연 제도가 폐지되면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전문연 축소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또한 8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전문연 축소 계획의 백지화를 촉구했다.
토론회 개최로 논의 이어져
과학기술단체, 과기원, 자연계 대학 관계자 등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회를 개최하고 전문연 감축 반대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7월 23일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주도한 ‘전문연구요원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8월 6일 기업대표단이 ‘전문연구요원제도 성과와 발전 토론회’를 개최하고 제도의 유지·확대를 주장했다. 김상길 산업기술진흥협회 전략기획본부장은 “기업이 스스로 나서서 담당 부처와 만나야겠다고 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23일, 한국과학지가협회가 과학언론이슈토론회 ‘전문연구요원제도, 그 해법은 없나?’를 개최했다. 이곳에서는 과학기술계, 교육계와 산업계 대표들이 모여 전문연 감축 반대에 대해 논의했다.
발제자들, 제도의 필요성 언급
여러 발제자는 국방부가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다. 최준호 중앙일보 과학&미래팀장은 “대체복무요원 중 전문연이 차지하는 비율은 8.1%에 불과하다. 병역대상 인구가 줄어드니 전문연을 줄이자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병역자원 감소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기현 성신전기공업 대표는 “인구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다른 분야에서 인력을 끌어 쓰면 균형 있는 국가발전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산업계와 교육계를 무시한 채 국방에 집중하는 것은 사회를 역행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기원을 대표하는 이광형 KAIST 교학부총장도 “2016년 이후 전문연 제도가 불안해지자 대학원 미달 사태가 생겼다”며 정부의 일관되지 못한 정책이 혼란을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최원석 DGIST 부총학생회장은 “전문연은 군 복무를 피하려는 것이 아닌, 개인이 국가에 가장 많이 이바지하는 일을 모색한 것”이라고 말했다.
각계 대표, 제도 개혁엔 동감
이날 좌장을 맡은 이영완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은 “병역자원 감소 때문에 전문연 숫자를 줄이자는 국방부의 주장도 타당하다. 제도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진 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은 “학생들의 커리어패스를 빨리 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20대 후반의 대상자를 선출하는 현행 제도를 바꿔 20대 초반에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지은 교육부 학술진흥과 사무관은 “그간 TEPS 영어성적이 당락을 좌우하면서 수많은 대학원생이 연구보다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권 사무관은 “영어 성적은 ‘통과 또는 실격’(pass or fail) 제도로 바꾸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상길 산업기술진흥협회 전략기획본부장은 “과거 전문연 제도를 볼모 삼아 과도하게 일을 시키는 일도 있었다. 규정 위반 사례가 있으면 페널티를 주거나 기업 대표의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연 근본적 문제 지적도 있어
이공계 병역특례제도의 형평성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는 사라진 연예병사 제도를 언급하면서 “이공계 학생의 경력단절 때문에 전문연 폐지 반대를 주장하는데, 그건 연예인도 마찬가지”라며 제도의 문제를 꼬집었다. 토론회에 청중으로 참석한 건국대학교 김도형(경제·14) 학생도 “국가에 도움이 되는 건 많은 분야가 있는데 왜 이공계에만 병역 대체제도가 있는지 궁금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전문연 제도의 폐지가 오히려 이공계 학생에게 좋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도형 학생은 “전문연 제도 때문에 이공계 학생이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형태의 정부 지원과 이공계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는 “전문연 요원은 노조결성을 하지 못하고 처우도 부족하다. 전문연 실적이 기업에서 우수한 인력을 저렴하게 사용했다는 거 말고는 없지 않나?”며 산업계의 전문연 옹호에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과기계가 전문연 폐지 반대를 외치기 전에, 전문연 제도의 실적과 요원들의 태도를 돌아보고 국민 여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유용하 기자는 “전문연 제도에 대해 일반인들은 무관심하거나 냉담하다. 특히 군필자는 전문연은 대체복무가 아니라 특혜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민을 어떻게 호응시킬 수 있는지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일부 참가자는 “국방부가 병역 수요에 지장이 생겼다고 판단하고 전문연 감축을 통보했을 때 과기계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국방부 관계자 없이 토론을 진행한 점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과기계가 전문연 확대, 처우 개선, 기간 단축 등 국방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안을 한꺼번에 내놓기보다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