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어느새 3학년이 됐다. 점점 고학번이 돼가며 지난 대학 생활에 대해 아쉬움이 계속 들곤 했는데, 학업 외에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해보지 못한 점이 가장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친구를 통해 월드프렌즈 ICT 봉사단을 알게 됐다. 한국어 수업과 IT 수업을 진행하며 머나먼 타국에서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활동으로 느껴졌다. 전공과 관련된 지식을 강의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이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지원하게 됐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부터 약 2주 동안 봉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1년 전 파견됐던 팀들의 도움으로 수업 진행 방식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를 완성하고 세부 내용을 계획했다.
가장 고려해야 할 점은 현지 학생들의 집중력과 수업 이해도였다. 작년 파견 팀으로부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문법에 초점을 두고 가르쳤더니 따라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두이노를 활용한 실습 위주의 수업을 계획했다. 아두이노는 작은 컴퓨터인데, 여러 종류의 센서를 연결해 원하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아두이노를 이용해 실제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면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리라 예측했다. 재미있는 동시에 유익한 수업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6월 27일 몰도바로 향했다.
오랜 비행 끝에 파견된 기관에 도착했을 때는 120명이 넘는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 밖의 엄청난 학생 수에 크게 당황했다. 하루 6시간 강의라는 빡빡한 일정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준비한 내용만 잘 전달하면 괜찮은 수업이 될 것이라 위로하며 다음 날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첫 수업부터 생각지 못한 큰 문제가 생겼다. 기관의 컴퓨터와 아두이노 사이 호환성 문제가 발생해 아두이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준비한 내용은 아두이노뿐이라 큰 패닉에 빠졌고 결국 그날 수업을 망쳤다. 다음날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수업 중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하게 됐다.
학생들의 참여도가 가장 높은 수업은 한국어 수업이었다. 놀랍게도 한국어 중급자 수업의 경우 거의 모든 학생이 한국어를 공부한 이력이 있었다. 이 때문인지 수업 내용 중 일부를 이미 알고 있거나 K-POP 가사를 외우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인 학생들이 있었다.
발음은 아직 어색하지만 스스로 작문을 해 떠듬떠듬 말하는 모습, 그리고 어떻게든 우리와 한마디라도 더 한국어로 얘기하려 하는 학생들의 의지를 보며 그들이 얼마나 한국에 관심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여러 수업을 하며 많은 학생과 교류해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한 문화 수업이다. 첫 번째 문화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한국의 놀이를 알려주겠다며 술 게임을 가르쳐줬는데, 이 수업 이후부터 틈만 나면 딸기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외에도 함께 공원으로 소풍을 하러 가거나 같이 라면을 끓여 먹는 등 학생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려주며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사실 월드프렌즈 ICT 봉사단에 무턱대고 지원했지만, 낯선 환경에서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출국 전날 역시 몰도바라는 새로운 나라에 간다는 설렘보다 수업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특히 시간을 내 참여해주는 학생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강의를 전달하며 서투른 영어에도 집중하고 잘 대답해주는 학생들에게서 자신감을 얻고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보다 한국의 노래를 더 많이 알고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아낌없이 표현해주는 학생들 덕분에 봉사 일정이 고되어도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먼저 다가와 주고 환영해주는 그들에게 고마웠다.
몰도바를 떠나면서, 헤어짐이 아쉬워 우는 아이들을 보고 한 달 동안 얼마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힘든 수업과 새벽까지 준비하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잔 날들이 가득한 한 달이었지만, 이번 봉사활동은 대학 생활 중 겪은 가장 소중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