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이전의 심리학자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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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원 일 교수 (기초교육학부, 심리학)

의술과 마술의 경계에 있던 프란츠메스머

지난 28호에 이어 심리학에 큰 영향을 준 흥미로운 인물들 중 또 다른 한 명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주인공은 바로 18세기에 유럽에서 활동했던 독일 태생의 의사, 프란츠 메스머이다.

메스머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인간의 몸은 행성의 중력에 반응하는 보이지 않는 유체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유체가 행성과 조화를 이룬 상태가 건강한 상태이며, 부조화된 상태가 질병의 상태라고 말했다. 향후 이 이론은 동물 자력 이론으로 발전하여, 인간의 몸은 자성유체(magnetic fluid)가 채워져 있으며, 이 유체의 흐름에 장애가 생길 때 병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메스머는 비엔나에서 자신의 이론에 기반한 자력 치료를 실제 임상 장면에 적용해 효과를 보았다. 마비나 장애 증상이 있는 환자의 몸에 자석을 대기만 해도 환자들은 몸을 떨거나 심한 경련을 일으켰지만, 그 후 증상이 완화됐던 것이다. 메스머의 치료로 효과를 본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히스테리성신경증, 특별한 원인이 없이 심리적 문제 때문에 몸에 이상이 오는 질환을 가지고 있었으며, 메스머의 카리스마에 의해 치료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스머는 자신의 자력 치료법을 굳게 믿고 있었다.

이후 메스머는 비엔나에서 엄청난 유명 인사가 됐고, 모짜르트와 같은 예술가들과도 교류했다. 문제는 어렸을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마리아 파라디스라는 음악가를 치료하면서 생겼다. 몇 개월 이상 치료가 계속됐지만, 마리아는 완치되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마리아가 메스머와 둘이 있을 때는 앞을 볼 수 있다가도, 다른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자 마리아의 아버지는 치료를 중단해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메스머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결국 비엔나를 떠나 파리로 근거지를 옮겼다.

파리에서도 메스머의 치료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가 있었고,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와 함께 그를 사기꾼이라고 치부하는 파리의 의사들도 많아졌다. 이에 메스머는 자신의 치료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을 검증해 달라고 국왕에게 요청했다. 이 검증을 위해 화학자 라부아지에, 미국 대사 벤자민 프랭클린 등의 쟁쟁한 인물들이 포함된 특별 위원회까지 조직됐다. 하지만 메스머의 자화 치료(magnetization therapy)는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메스머는 파리를 떠나 무대의 중심서부터 쓸쓸히 잊혀지게 된다.

도대체 메스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심리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단 말인가? 이를 이용한 많은 사이비 치료사들과 사기꾼들이 범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훈련을 받은 의사들도 메스머의 치료에 관심을 가졌고 19세기 중후반에는 메스머의 치료 행위를 통한 증상 완화가 환자의 심리적 과정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최면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면 치료는 그 후 유럽 각지에서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프랑스의 의사인 장 샤르코는 최면을 이용해서 많은 히스테리성신경증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마침내 1882년에는 프랑스 과학원에서 최면을 (자력과는 상관이 없는) 신경학적 증상으로 인정하게 된다. 샤르코의 여러 제자들 중 누가 있었는지 상상이 되는가? 바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위대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시한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였다.

메스머의 동물 자기 이론이나 자력 치료는 사이비과학, 혹은 유사과학으로 배척받았지만, 후대 학자들의 다양한 검증과정을 거쳐 약간은 다른 방식으로 심리학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메스머가 이를 미리 알 수 있었다면 그의 쓸쓸했던 노년이 조금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최 원 일 교수 (기초교육학부, 심리학)
최 원 일 교수
(기초교육학부,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