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3일, 광주송정역에서 전국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의 선전전이 시작됐다. “SR 정비차량 부족으로 돌려막기 운행! 열차안전이 위험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든 사람들이 플랫폼으로 향하는 복도에 줄지어 있었다. 14일 저녁, 필자는 그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불과 10분 뒤 SRT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서 기자 명함을 건네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며칠 뒤 호남차량정비단에 직접 방문할 수 있었다.
SRT, 반년간 11건 고장… ‘가벼운 고장 아니다’
호남차량정비단은 GIST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정비단 앞에 도착하자 거대한 선로를 떠받치는 기둥과 건물들이 보였다. 호남차량정비단 문진모 지부장의 안내에 따라 철도노조 호남고속차량지부실로 들어갔다. 칸막이가 세워진 작은 휴게 공간에 컴퓨터 한 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파와 탁자 정도가 있었다. 자리에 앉아 관련 자료를 받았다. 종이를 넘기자 ‘24년 6월 이후 최근까지 고장이 총 11건 발생’, ‘정비편성 축소’, ‘업무외주화’, ‘무리한 운행’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간략화된 철도노조 요구사항과 준법투쟁으로 인한 영향을 주로 다루던 기존 뉴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였다.
“2015년도에 SRT가 생긴 건 KTX와 경쟁시켜 보다 질 좋은 철도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문 지부장은 2000년대부터 민영화에 맞서왔음을 밝히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2005년 KTX가 개통한 이래 철도 민영화 시도는 지속됐다.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철도경쟁체제 도입이란 취지로 주식회사 SR을 출범, 새로운 고속철도 운영사가 등장했다. 문 지부장은 “SR이 22편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12편성은 코레일에서 대여해주고, 유지 보수 같은 정비도 코레일에서 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6월부터 최근까지 SR차량에서 주요 부품 고장이 11건이나 발생했다”라며 본격적으로 안전 문제를 언급했다. 문 지부장은 원래도 고장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주요 부품(축상베어링, 모터감속기, 트리포드 등)에 문제가 생긴 것은 심각한 사안으로, 대책 마련 필요성을 느껴 조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것이 이번 준법투쟁의 이유라고도 덧붙였다.
무리한 운행과 정비 외주화, 지금껏 운이 좋았을 뿐
“열차를 너무 많이 돌리고 있어요. 원래 고속차량은 정비편성을 잘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정비할 때가 됐는데도 그걸 충분히 안 하고 그냥 최대한 많이 운행하고 있는 겁니다.”
본디 고속열차는 정비편성을 운영해 정비 매뉴얼에 따라 각 부품을 일정 주기마다 점검하고 수리해야 한다. 그런데 2023년 9월 SRT 운행노선 확대에 따라 SRT의 정비편성이 축소됐다. 이에 따라 부품중정비주기(TBO)를 지킬 수 없게 됐다는 것이 문 지부장의 설명이다. 제때 정비를 받지 못하니 고장이 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SR은 야간에도 부품주기교환작업을 추가 시행했다. 하지만 이는 정비단의 업무과중으로 이어졌고, 충분치도 않았다.
더 큰 문제는 SR이 주요 부품의 정비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문 지부장은 말했다. 고속차량의 부품은 대체로 수입품으로 매우 고가다. 물론 최근 개발되는 고속차량들은 국내 기술의 비율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전부터 운행된, 즉 대부분 열차의 주요 부품은 여전히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정비와 교체에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SR은 이 비용을 절감하고 열차를 빠르게 운행하기 위해 주요 부품 수선을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외주화가 잦은 고장의 주된 원인이었다. 외부 업체에서 수선한 부품들이 고장을 일으키고 있던 것이다.
“이게 트리포드라고, SR 차량 아래에서 돌아가고 있는 동력전달축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다리에요, 다리. 이게 기차가 시속 300km로 달리는 와중에 떨어져 나간 겁니다. 차량에서 탈락돼서 근처 논밭 어디서 주웠대요. 그렇게 바로 선로 밖으로 떨어지면 다행이지, 선로랑 차량 사이에 낀다고 생각해보세요. 탈선이에요. 재난입니다.”
실제로 사고가 났던 차량의 사진을 보게 됐다. 표면이 긁히고 뜯긴 하부 주행장치, 밑면이 부서져 덜렁거리는 나무 파편. 트리포드가 떨어져 나가며 열차 밑면과 충돌한 결과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정비 현장으로 안내받았다. 뉴스로만 보던 현장이 눈앞에 있었다. 10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높은 공간에 묵직한 레일과 철골이 세워져 있었다. KTX와 SR 차량이 세대쯤 세워져 있었고 간간이 직원들이 지나갔다. 문을 하나 지나자 크고 작은 부품들이 줄지어 있었다. 녹이 슬고 부식된 부품들이었다. 아까 사진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생긴 것도 있었다. 문 지부장은 이렇게 노후화된 부품들을 수리하거나 교체하는 것이 정비단에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외부 업체에서 이 작업을 하게 되자 곧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10월 20일의 일이다. 부산행 SRT가 천안아산역에서 1시간 지연됐다. 뉴스에는 ‘동력차 하부 공기압력이 떨어지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라고 보도됐다. 하지만 인명피해가 없었을 뿐, 이처럼 지연된 열차들에서 발생한 사고들은 운이 나빴다면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였다고 문 지부장은 설명했다.
“외부 업체에게 정비받아 고장난 부품에 대한 책임은 외부 업체가 지긴 했어요. 그런데 인명피해가 안 나서 다행이지, 만약 큰 재난으로 이어졌으면요? 사람이 죽으면 그건 누가 어떻게 책임집니까?”
고속열차의 사용 연한은 중간 대수선을 거치면 최장 30년이다. 현재 국내 고속열차들은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이미 노후화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정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아직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경각심이 없을 뿐, 현장의 직원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현장에 있는 우리는 알아요. 이제껏 큰 사고가 없었던 건, 그동안 운이 아주 좋았을 뿐입니다.”
안전을 위한 준법은 왜 투쟁이 됐나
현재 코레일과 SR측은 철도노조의 준법투쟁을 태업으로 공지하고 있다. 문 지부장은 태업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설명을 이었다.
“준법 투쟁은 정해진 매뉴얼을 지켜서 일하는 거예요. 그 정비 매뉴얼은 사측에서 규정한 겁니다. 그런데 그 규정을 지키면 지금 인력으로는 도저히 열차의 운행 스케줄을 맞출 수 없어요. 그래서 그동안 무리를 해온 거죠. 이런 상황에서 충원도 안 해주고, 매뉴얼을 지키면 운행 스케줄이 안 맞으니 태업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철도공사와 차량본부는 인력효율화계획에 따라 271명분의 인력을 감축하고 외주화를 추진 중이다. 철도노조는 이러한 인력감축 중지와 SRT 안전 관리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지만 대부분의 대처가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었다고 문 지부장은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정비편성 수정이다. SR은 정비편성을 늘리기 위해 주말에 2량을 붙여 운행하던 열차를 분리해 한 량은 정비단으로 보내고 한 량만 운행했다. 하지만 “이건 전혀 실질적인 해결이 안 된다. 주말에는 정비 직원들도 휴일이다. 주중 정비편성이 절실한 상황이다”라고 문 지부장은 비판했다. 노조의 안전 문제 제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11월 13일, 광주송정역에서 매일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 진행되는 선전전과 준법투쟁이 시작됐다. 12월 5일까지 사측이 협의 의사를 밝힌다면 응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총파업을 시작하겠다는 것이 철도노조의 입장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호남차량정비단을 나오며 뒤를 돌아봤다. 인터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밖’에 있는 사람들은 위험의 사전 신호를 알아차릴 수 없다. 무슨 일이 난 뒤에야 경각심을 느낀다면 그 사고는 대체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이제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