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다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현대에는 온갖 것들이 일종의 싸움의 장이다. 그래서 그런 말도 쉽게 나온다. 이상한 주제로 싸우지 말고, 다들 좋게 좋게 지내자고 말이다. ‘나는 중립이다’라고 말이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다는 것, 즉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라는 것은 이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리 이상한 관점은 아니다. 오히려 권장된다면 권장되는 태도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고자 하는 것. 특히나 과학기술원의 이공계 전공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태도를 지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연구에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면 하나일 테니 말이다.
합리성과 객관성이란 결국 치열히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물로서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성질이다. 어떤 하나의 사소한 일 혹은 실험에도 관계에도 이 요소가 원인인지 어떤 일에 영향을 받았는지 온갖 지리멸렬한 고민을 하고서야 나오는 것이 합리이다. 양측 혹은 다양한 측의 의견을 듣고 그제서야 그것을 중재할 수 있는 가운데를 찾는 것이 중립이다. 중립(中立), 수많은 잣대의 정 가운데 선다는 말이다. 그것은 어디가 끝이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제대로 파악했을 때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말인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쉽게 쓰인다. 나는 객관적으로 문제를 판단하고 있다고, 한쪽에 치우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니 조롱과 비웃음은 그런 문제에 진득이 빠져있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대부분은 자신이 서 있는 그 선의 양 끝은커녕 주변도 재고 있지 못한 것 같음에도 말이다.
먹고살기는 더 힘들어진다고 하고, 정치는 피곤하고, 사람들은 마치 별것도 아닌 문제로 유난을 떠는 것 같고, 그러니 당장 나의 삶만 챙기기에도 급급하고. 아니, 사실 어떤 문제에 대해 쉽사리 나오는 객관성과 중립이란 결국 허울 좋은 말일 뿐이고 사실은 대부분이 그런 현대의 피로감에 찌들어 관심이 없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질책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으나 그토록 얻기 어려운 것에 대해 겨우 한 발짝 떨어지고 말을 얹지 않는 정도로 객관성과 중립을 표방하는 것은 너무 편리한 길이 아닌가. 나조차도 어렸을 때는 한 발짝 빠져서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이 멋져 보이기라도 했던 것 같다. 기계적인 중립이라든지, 냉소주의라든지 그런 태도가 좋다고. 그렇게 싸워대고 고민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온갖 것에 냉소와 조롱을 표했다. 직접 만나지도 않은 가상의 사람들에 대해 비웃는 일은 정말이지 놀랍도록 쉽다. 그렇기에 그런 태도는 할수록 계속될수록 더 어려운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참여’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진 채로는 자신이 아는 것이 오직 사실이라고 밖엔 생각하지 않는다. 객관이며 중립이라는 말은 이미 저만치 멀어진 지 오래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순간에도 파도가 그토록 치는데 노를 젓지 않는다면 그 배가 원하는 위치에 다다를 수 있을까.
쉬운 태도에 어려운 객관성이란 깃들 수 없다. 문제에 치열히 싸우고 노력하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조롱하면 그만이라는 태도. 그런 문제는 피곤할 뿐이니 넘어가자는 태도. 그냥 모두 사이좋게 지내면 그만이라는 태도. 그것은 중립으로서 존재하는 것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좋은 단어들의 뒤에 숨어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적어도 쉽게 풀릴 리 없는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로부터 중립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그보다는 더 어려운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비록 그리 엄격히 따지자면 단어가 사용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그러한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선 흐르는 대로, 누군가 말하는 대로, 그렇게 따르고 따라서 자기 생각과 잣대 없이 가는 흐름에는 정말이지 시민이나 사람이 아닌 하나의 부품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그것이 정말로 의미 없는 싸움인가? 의미 없는 논의인가? 라고 말이다. 냉소주의와 비관으로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그렇게 굳은 사고는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태도는 객관이 아닌 아집이 된다. 너무나 쉽게 쓰이는 객관과 중립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무게추를 달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조시현 (화학,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