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지스트는 어땠을까? ④ 하우스제도의 완전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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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트 돌아보기 – 자치기구를 중심으로>

① 총학생회의 탄생

② 하우스제도의 도입과 부결

③ 임시대표자회의와 짧은 임기의 4대 집행부

④ 하우스제도의 완전부활

[기사 입력 : 2015. 10. 5. 18:26]

매주 일요일 연재

  입학한 지 한 학기를 이제 막 보낸 새내기들은 2010년 우리 대학이 처음 시작하던 때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봄이면 꽃이 피고, 편안한 기숙사와 세 동의 대학건물이 있는 이곳이 불과 5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다고 말하면 아마 믿기 힘들 겁니다. 이렇게 외형적인 모습을 떠올리기 힘든 것처럼 우리 대학에 먼저 왔던 선배님들이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도 쉽게 느끼기 힘들겠죠.

<학교 뒤쪽이 왠지 허전하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지스트대학에 있었던 일 들은 적지 않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있었던 지스트대학 총학생회의 짧지 않은 역사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야 했던 선배들의 고민을 엿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학생자치제도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하우스제도의 완전부활

2013년 12월 9일 실시한 제 5대 지스트 대학 총학생회장단 선거에서 총학생회장에 한수영, 부총학생회장단에 박진호 학우가 당선되었습니다. 지난 편에서 말했듯이 이들에게는 2012년 하우스제도 부결에 따른 학생자치제도의 불완전함을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그들이 해결하고자 한 것은 전학대회의 정당성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총학생회장단은 하우스제도 재도입안 전체학생총투표를 실시했습니다. 만약 이 투표에서 재도입안이 가결되면 2012년의 투표는 무효가 되니 학생회칙을 고치지 않고도 손쉽게 전학대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죠.

그러나 이것은 전대 학생회장단에서 논의되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학생자치제도전반에 대한 논의와 합의를 통해 학생회칙을 개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우스제도가 처음 도입되던 2012년의 상황으로 그대로 돌아가 투표였죠. 물론 학생수가 300명에서 500여명으로 늘어났으니 좀 더 나은 하우스제도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었지만, 이 때 당시 안건설명을 보면 2012년의 하우스제도와 내용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 투표는 3월 17일에 이뤄졌기 때문에 투표권을 가진 재학생의 약 35% 달하는 14학번이 이전의 하우스제도 부결과 새로운 하우스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도 부족했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재도입안의 가결로 하우스제도는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하우스대의원들은 전학대회에 참여할 정당성을 갖게 되었고, 전학대회가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우스리더 4명과 하우스관련 업무를 맡는 하우스위원, 전학대회대의원으로 참여하는 4명의 하우스소대표들이 선출되었습니다.

실패를 겪었던 2012년의 하우스제도와 달랐던 점은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하우스위원’과 전학대회대의원으로 참여하는 ‘하우스소대표’를 따로 두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우스소대표는 각 하우스에서 한명씩 선출되어 하우스 행정업무를 맡지 않되 각 하우스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하여 전학대회에 참여하였습니다.

<2014년 총학생회 구조>

  2014년의 총학생회

2014년의 총학생회는 각 기구들이 자치성과 독립성을 갖추기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이전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던 문화행사위원회나 InFo팀과 같은 기구들과 달리, 하우스 연합회와 동아리 연합회, 여학생 대표회는 그 존재감이 미미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자치기구들이 집행국처럼 주기적으로 회의를 하고 회의록을 지스토리에 올리며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동아리 연합회는 동아리등록절차를 체계화하고, 각 주제별로 분과를 만들어 각 동아리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각 동아리들 사이를 중재했습니다. 하우스 연합회는 회칙을 제정하고 기숙사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맡아 해결했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하우스의 역할과 갖춰야할 체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했습니다. 여학생대표회 또한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여학생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몇 가지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한편 학생회장단과 집행국은 ‘소통’을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내세우며 여러 가지 사업들을 의욕적으로 시작했습니다. 3월 19일에 열린 업무보고 발표회와 총학생회 출범식은 많은 학우들에게 학생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죠.

이 때 집행부가 진행한 사업으로는 로컬푸드 공동구매, 택배상자 공동구매, 너무생 게시판 운영, 잉여 도서 나눔 행사, 학술제 개최, 교내명사특강, 학술제 개최, GSA 오피스 아워 운영 ,학생회-학생주간 운영, 강의자료 수집 및 배포, 포스텍과 학생회 교류, GISTED 상영회, 잡아드림, 연탄봉사활동, 유니스타디움 참여, 학생회 소식 알리미 운영 등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학생회 사업뿐만 아니라 여러 새로운 사업들을 시도하였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들이 1학기에 집중되어 있었고, 2학기에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사업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학생들과 소통을 위한 사업들은 몇 달 잘 운영된 후 거의 운영되지 않았습니다.

국별로 시도된 사업들의 편차도 컸습니다. 학술국 같은 경우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사업들을 시도했지만, 대외협력국 같은 경우는 그 활동이 미미했습니다. 복지국의 사업은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기 위한 사업이었지만, 그 편의가 필요 없는 학생에게는 학생회 활동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학생회에서 제공하는 여러 사업들에 대한 자신의 참여나 손익 등을 계산해본 뒤, 학생회비를 내는 것이 그 다지 이익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학생회비를 내지 않는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당시 시도된 새로운 사업들은 신선한 시도였고, 올해까지도 꾸준히 이어지며 좋은 호응을 얻고 있는 사업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목표였던 ‘소통’과 용두사미로 끝난 사업도 많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전 현직 총학생회 임원 토론회

총학생회의 다양한 사업시도, 그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전직 학생회 임원들 사이에서 우리학교 학생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단순한 복지사업은 학생 전체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 힘들고, 학생회의 일거리만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총학생회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전체학생들의 대표로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총학생회가 반년간의 부재를 겪으면서 이전의 총학생회의 고민이 후대에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줄면서 다시 한 번 총학생회장단이 공석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존재했습니다. 학생들의 관심부족을 온전히 학생들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학생회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학생회의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4 대 총학생회장 박원우 학우의 초대로 시작된 이 모임은 3대 총학생회장인 조민상 학우의 사회로 11월 20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9일 뒤 한 번 더 열려 총 2회로 진행된 이 모임에서 학우들은 현재 총학생회의 문제점에 대해 공유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후대에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문제점들을 진단하기 위해 우리학교 학생회의 역사, 대한민국 학생회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전직뿐만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 학생회장후보까지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에 전직임원들이 가진 고민들이 후대로 쉽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모임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총학생회가 아니라, 우리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될, 총학생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는 총학생회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업에 참여하고 안하고를 통해 총학생회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학생들의 모임’ 이라는 총학생회의 정의처럼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레 그 활동을 느낄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자는 거죠.

정기적으로 꾸준히 토론을 이어가자는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방학과 바쁜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단 두 번에 그치긴 했으나, 6대 집행국의 조직과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 모임이었습니다.

  기자 후기

이렇게 길고 재미없는 기사를 쓰기로 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새로 생긴 기초교육학부대표자 협의회와 전공대표 협의회에 대한 기사를 썼던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습니다. 기자 역시 그랬지만, 총학생회가 어떤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지 직접 활동을 해보지 않고서는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특히 신입생들은 새로운 대표자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10월 4일) 기초교육학부대표자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학생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이러한 제도가 태어난 배경에 대한 설명을 위해 우리학교 총학생회의 역사에 대해 정리해보는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가진 문제점은 우리 스스로 해결했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문제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것이 문제인지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겁니다. 학생들이 겪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치활동이 잘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그 문제의 처리를 결정하게 되겠죠. 많은 학생들의 참여를 통해 우리 대학에 학생자치활동이 굳건히 자리 잡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때 지스트는 어땠을까? 연재 끝.

최철민 기자 ferror@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