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 2015. 11. 27. 19:31]
제1회 GIST대학 기초교육학부 젠더혁신 심포지엄 열려
지난 11월 20일, 중앙도서관 1층 소극장에서 제1회 GIST대학 기초교육학부 젠더혁신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서 젠더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남녀의 정체성으로 여성다움, 남성다움을 통칭하며, 사회문화적인 환경으로 남녀의 특징이 형성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총 2부로 기획된 이 심포지엄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우리가 모두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동료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모든 차별을 뛰어넘고 생각의 전환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이시연 교수의 개회사로 시작했다. 자리에는 60여 명의 학우들이 참여해 소극장을 가득 채웠다.
조선대학교 생물교육과 조은희 교수가 1부의 첫 강연을 맡았다. ‘아는 것이 반이다’를 주제로 남녀 불평등의 근원과 해결할 방안에 대해 이야기 했다.
편견에서 비롯되는 남녀 불평등, 편견을 없애는 것이 우선
과거에는 과학기술 분야에 여성의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여성들을 유입시키는 것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그래서 과학기술분야에 여성이 입문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정책들이 마련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여성 이공계 학위 소지자 수는 과거보다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하지만 남녀 불평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과학을 전공하는 여성의 수는 늘어났지만, 전공을 살려 사회에서 활동하는 여성의 수는 남성보다 여전히 적다.
조 교수는 “이러한 남녀 불평등은 우리의 편견에서 비롯된다.”라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성과 여성의 속성을 단순히 성별로 구분 지으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자들이 문서작성을 꼼꼼하게 잘해” 또는 “남학생들이 공간인지 능력이 좋아서 기하 분야에서 잘해” 처럼 말이다.
이어 조 교수는 “어쩌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몹시 어렵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라며 “외부에서 심어주는 편견을 제거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교수는 편견을 제거해서 전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 예를 들었다.
심리학회 정회원들에게 같은 이력서를 남성 이름과 여성 이름으로 보내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같은 이력서임에도 남성 이름일 경우 훨씬 점수가 좋았다고 한다. 남성의 이름이 편견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원래 논문심사 때 저자의 실명을 공개했었는데, 이를 익명심사 제도로 바꾸자 3년 만에 여성 저자의 논문이 33% 증가한 사례를 있다. 이름으로 가질 수 있었던 편견을 제거하니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조 교수는 “분자생물학회 초대 회장 박상대 교수는 여성과학자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는데, 그 결과 분자생물학회 고위직의 여성 비율이 다른 학회보다 훨씬 높아졌다. 결국, 누군가 나서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강연을 마쳤다.
젠더 개념 도입으로 더 나은 연구를
1부 두 번째 순서를 맡은 군산대학교 사회환경디자인 공학부 박성신 교수는 ‘공학연구에서의 젠더 문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각 공학 분야에서 젠더 개념을 도입하여 새로운 연구주제를 창출하는 활동들을 소개했다.
박 교수는 빅데이터 분야에 젠더 개념을 도입한 사례를 소개했다. 빅데이터는 어떻게 가공 분석하느냐에 따라 얻어지는 결과가 달라진다. 하지만 남성 공학자 비율이 훨씬 높아 해석 시 양성의 공평한 시각이 고려되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여성 정보공학자들을 양성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어 박 교수는 본인이 연구하고 있는 ‘여성친화도시’를 소개했다. 여성친화도시란 여성전용 주차장과 같이 여성들의 편의를 고려하는 도시계획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도시든 제품이든 계획자가 주로 남성이었기 때문에 남성의 편의에 맞추어졌다. 그래서 여자는 물리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 약자를 기준으로 계획한다면 모든 사람이 편해지겠죠.”라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이은경 교수와 오명숙 교수가 학생의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어 2부에서는 전북대학교 과학교육과 이은경 교수가 ‘과학기술에서 다양성의 문제와 젠더’를 과학기술에 적용된 여러 젠더혁신사례를 가지고 설명했다. 젠더혁신이란 스탠포드 대학의 론다 슈빙어 박사가 처음 만든 개념으로, 성․젠더 분석을 하나의 도구로 활용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혁신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이다.
자동차 충돌 실험에서 사용되는 실물형 인체모형(더미, Dummy)의 표준은 성인 남성이다. 과거에는 이 남성 더미만을 이용했기 때문에 충돌사고가 나면 목뼈 상처를 입을 확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2배가량 높았다. 최근에는 젠더혁신으로 여성, 임산부, 아이 모양의 더미들도 만들어지고 있다. 젠더 혁신을 통해 좀 더 현실적인 충돌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어 이 교수는 성․젠더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아 연구에 제약을 받았던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에서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시판되던 의약품 10종을 회수한 적이 있는데, 그중 8종은 남성보다 여성에 더 큰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동물 임상시험 과정에서 주로 수컷 쥐를 이용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은 2014년에 과학기술연구에 젠더 개념을 반드시 고려하는 <사이언스 포 올(Science for All)>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은경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화장실의 표지판을 예로 들어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젠더 혁신을 보여주고 있다>
2부의 두 번째 강연을 맡은 홍익대학교 화학공학과 오명숙 교수는 ‘남녀 학생 좋은 동료되기’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오 교수는 젠더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학생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동료 남학생, 교수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남녀학생이 팀워크를 할 경우 알게 모르게 성별로 역할분담이 정해져 여학생들의 활발한 팀 활동 참여 및 리더십 발휘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동등한 동료 관계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교수의 경우 팀워크 지도에 젠더를 좀 더 신경을 써 달라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약 4시간에 걸친 강연 및 질의·응답 시간이 끝난 뒤 이시연 교수는 “오늘 심포지엄에서 ‘젠더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았다!’가 아니라 ‘아, 이런 문제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되었구나, 관심을 가져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라며 심포지엄을 끝맺었다. 또한 이번이 제 1회 심포지엄이므로 앞으로의 젠더 혁신 심포지엄에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당부했다.
강연을 들은 백정원(15·기초교육)학우는 “작은 규모였지만 네 분의 교수님이 다양한 견해를 말씀해 주셔서 젠더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라며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에 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많은 사람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채정 기자 cjkim15@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