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곳’ 없는 국제학생들, 학내 식당 개선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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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질라 국제학생 연합회장 제공 삽화 = 정현준 기자

프란시스코(생명,석사과정) 학생은 한국어로만 된 학내식당 메뉴판 앞에서 당황했다. 아직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글을 전혀 읽을 줄 모르던 때였다. 무엇을 시키는지도 모른 채 떠듬떠듬 손으로 메뉴를 가리켜가며 주문을 마쳤다. 겨우 받아든 음식은 빨간 국물의 찌개. 하지만 그의 입맛에 찌개는 너무 매웠고, 결국 남은 음식 전부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국제학생들이 외국인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학내 식당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질라 국제학생 연합회장이 원내 국제학생 34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현 학내 식당(1학생식당 또는 2학생식당) 시스템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학생이 94.1%에 달했다. 주요한 문제로는 ▲한국어로만 표기된 메뉴명 ▲메뉴 다양성 부족 ▲일괄적인 음식 제공 방식 등이 지적됐다.

아질라 국제학생 연합회장 제공 삽화 = 정현준 기자
아질라 국제학생 연합회장 제공
삽화 = 정현준 기자

국제학생들이 첫 번째로 겪는 문제는 한국어로만 쓰인 메뉴명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2학생회관 학생식당(이하 2학생식당)을 제외한 1학생회관 학생식당(이하 1학생식당), 락락, 르네상스에서는 영어로 된 메뉴가 제공되지 않는다. 프란시스코 학생은 “내 친구의 경우, 돈까스라는 음식을 몰라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닭고기를 이용한 요리라는 잘못된 설명이 나왔다. 이 사실을 몇 달이나 모르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임을 알고 깜짝 놀라 했다”며 영어로 된 메뉴 표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다른 문제는 제공되는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다. 설문조사 결과, 다수의 학생이 음식 종류가 한식에 치중돼 있으며, 채식 식단이나 할랄 친화적인(halal-friendly) 식단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채식주의자인 마라(물리,석․박통합과정) 학생은 “내가 학내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락락의) 비빔밥밖에 없다”며 “식사 시간엔 혼자 연구실에서 직접 싸 온 도시락을 먹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먹는 음식과 관계없이 일괄적인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있다. 무슬림인 아질라 회장은 “예를 들어 생선까스에 소고기 수프가 나온다고 하자. 생선까스는 먹을 수 있지만 소고기 수프는 아니다. 먹지 않는 것에 돈을 내야 하니 학내 식당엔 거의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수의 설문조사 응답자들이 선택한 반찬에 따라 다른 금액을 지불했던 이전 2학생식당(두메푸드)의 방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들은 단순히 식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학생이 학내 식당을 이용하지 못함에 따라, 식사 시간에 이뤄지는 한국인 구성원과의 소통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질라 회장은 “같은 연구실에서 있더라도, 일과 중 대부분은 각자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하기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적다. 그런데 함께 식사할 시간조차 없어지면서 국제학생과 한국 학생 간의 거리가 더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학생이 직접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기도 한다. GIST대학원을 졸업한 실파 씨는 “재료를 사오고, 음식을 만들고, 뒷정리까지 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 게다가 연구나 발표 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일 땐 요리까지 신경 쓰기 힘들다”고 말했다. 프란시스코 학생 역시 “학업이나 연구에 쓰여야 할 시간, 에너지가 요리라는 다른 일에 쓰이게 된다”며 현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했다.

국제학생들은 현 상황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영어로 된 메뉴/재료명 표기 ▲별도의 작은 코너 설치 ▲국제학생과 한국 학생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메뉴 제공 ▲주 1회 할랄/채식 식단 제공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아질라 회장은 “할랄 육류는 가격이 비싸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해산물이나 야채를 이용한 음식은 무슬림도 먹을 수 있다. 엄격한 할랄 푸드가 아니더라도, 할랄 친화적인 음식이 나온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파 씨는 “빵처럼 보편적으로 모든 학생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또 락락에서처럼 개인의 요구에 맞는 음식이 제공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식당 측, “즉각적 해결책 마련은 어려워”
타 대학 사례 참고해 학교 차원의 논의 필요

식당 측은 학생들의 사정은 이해하나, 현실적으로 당장 큰 변화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1학생식당의 변아름 영양 사는 “메뉴 표기의 경우 어렵더라도 학교 홈페이지 등에 영어 메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그러나 식단의 틀이 이미 고정되어 있고 외국인 학생 수도 적어 일일이 맞춤으로 제공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2학생식당의 김초롱 매니저는 “대다수 한국인 학생들의 선호도에 맞추다 보니 메뉴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실제로 예전에 생선 메뉴를 냈는데 식수가 크게 줄었던 일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월, 수, 목요일에는 새우나 견과류가 들어간 샐러드 팩이 판매된다. 11월 넷째 주부터는 카페에서 컵 과일도 판매할 예정이니 이러한 메뉴들은 이용 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KAIST, POSTECH, 한양대, 세종대, 경희대 등 몇몇 타 대학에서는 이미 무슬림 학생들을 위한 할랄 푸드를 내놓고 있다. 서울대는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으며, 할랄 식당 도입이 결정 돼 위치와 운영 방식 등이 논의 중이다. 국제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한 학교 차원에서의 논의와 지원이 시급한 시점이다.

김예인 기자
smu04018@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