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여러 대학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러 다닐 때였다. 한 대학에서는 면접 문제로 수학 문제 두 문제와 연구윤리 관련 질문 하나를 내줬다. 답변 전에 답변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방식이었는데, 수학 문제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아 나머지 한 질문에 시간을 오래 투자했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봤던 유형의 질문이어서 모범 답안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느꼈는데도 답변하기가 꽤 까다로웠다.
그보다 3년 더 전인 고등학교 입시 때에도 지원자 6명이 함께 연구윤리에 관한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기존에는 토의 형식이었는데,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주제에 연구자로서의 능력과 윤리 의식으로 의견이 갈려 토론처럼 진행됐던 기억이 난다.
연구윤리는 과학이나 연구 분야가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 분야의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 있어서 학문적 능력만큼이나 연구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이 때문인 듯도 하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고 이후 이를 후회하여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세기의 인물로 평가받는 뉴턴이나 에디슨도 연구윤리 문제에서는 비판받기도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부적절한 R&D 예산 집행, 논문 대필이나 자녀를 논문 공동저자로 포함하는 등의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와셋(WASET), 오믹스(OMICS) 등 해적학술지나 허위 학회 문제가 크게 보도됐다. 돈만 내면 말도 안 되는 주제로 쓴 엉터리 논문도 학술지에 등재해주고, 또 학회의 최우수 발표자로 등록해주기도 하는 곳들이다. 이 문제를 처음 보도한 ‘뉴스타파’에 따르면 해적학술지와 허위 학술대회에 참여하는 한국인 학자는 매년 증가해왔는데, 대표적인 해적학술지 단체인 와셋을 이용한 한국인 학자의 수는 세계 5위다. 개인별로는 세계 2, 3, 4, 6위가 한국인이다. 대학으로는 서울대가 국내에서 1위였고, GIST도 9건이 있었다.
실제 연구 현장에는 분야별, 기관별로 다양한 차이가 있고, 직접 현장을 경험해보는 것이 아니라면 논문 제출이나 참석할 학회를 결정하는 일까지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학회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다양한 애로사항과 어려움이 있을 연구자들을 무작정 비난할 일은 아닐 수 있다. 실제로 와셋이나 오믹스 같은 단체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참여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과학산업 인터넷 언론사인 헬로디디의 ‘KAIST 석박사들 “와셋 몰랐다는 건 핑계, 도덕성 문제”’ 기사에서 KAIST의 한 박사과정생은 “와셋이 가짜저널인지 몰랐다는건 100% 핑계다. 학회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확인할 수 있다. 공금을 횡령해 해외로 놀러 가거나, 남아 있는 연구비를 빠르게 털어내려는 목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덕성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즉, 조금의 성의만 있었다면 그런 학회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정말로 공금이나 연구비를 횡령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특히 이러한 엉터리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고 참석하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라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설사 참석하기 전에는 학회에 대해 자세히 몰랐다고 해도 참석 후에는 문제에 대해 알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자연히 여러 번 와셋을 이용한 연구자들이 해외여행이나 공금 횡령 등 연구 이외의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좋은 학술지나 학회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싣는 것은 좋은 연구 결과를 얻어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더 인정받는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것은 그 자체로 연구의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다. 반대로 해적학술지 등에 논문을 게재하고 학회에 참석하는 것은 본인의 연구와 연구자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일 것이다. 한 언론사에서는 프로그램을 통해 임의로 작성된 ‘하늘을 나는 돼지의 바이오메커니즘’ 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와셋에 제출해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을 승인받았다. 그런 학술지에 제대로 된 연구로 작성한 논문이 실린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번 논란 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기초연구연합회 등 연구 단체들은 관련 정책을 보완하고 방지 대책 등을 세워 발표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책이나 구조적 문제보다 과학기술계의 전반적 연구윤리 의식이다. 연구윤리가 부족한 연구자들이 그대로라면 돈을 목적으로 하는 해적학술단체들은 정책이나 방지 대책 등은 우습게 피할 수 있게 변해 유지될 것이다.
박정기 전임 편집국장